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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의그녀 Sep 16. 2019

이별 없는 세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돌고 돌아 행복의 길에서 만나기를

최근 회사에서 가깝게 알고 지내던 분들이 퇴사했다. 그 중에는 1년을 함께한 내 직속 사수와 우리팀 디자이너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팀은 나 포함해서 4명이니 반절이 날아간 것이다. 회사 생활이라는 우주의 절반이 싹둑 날아갔다. 처음 퇴사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미뤄온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든 지레 짐작했을 때와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다르다. 숙제 마감 기한은 한달, 1년 동안 함께한 세월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동요하지 않기를 바랬고, 나는 슬픔과 동요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회사는 내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슬픔은 손 쓸 도리가 없는 영역이었다. 감정은 날씨같다. 내가 어떻게 막아보려 해도 비는 내리고, 눈은 쌓인다. 사수의 퇴사를 받아들이는 바람직한 부사수의 자세란 무얼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8월 무렵의 나도 역시 몰라서 마냥 슬퍼했다.


이들이 곧 퇴사한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사무실에서의 매일은 평범하고 얄밉게 지나갔다. 미지근한 대화를 주고받고 평범하게 웃고 떠들며 하루 하루가 지났다. 그러다 밤이 오면, 혼자가 되면 놀이공원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서러웠다. 이 서러움의 감정이 그들의 퇴사를 막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지낸 4계절의 시간이 반복되지 못함에서 오는 예견된 슬픔이었다. 당연하다고, 당연할거라고, 당연시 되던 보통 하루가 반복되지 못하는 게 서러웠다. 


이별은 보통 기별도 없이 찾아온다. 기별이 없음은 날짜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태도에 관한 말이다. 내 마음을 준비하는 일. 항상 사람들은 이별이 코 앞에 와있어도 이별없을 사람들 처럼 굴다가 영영 이별하고 만다. 다들 이렇게 살아 라고들 말하면 세련되지 못한 사람은 퍽 슬퍼진다. 마지막의 모서리는 언제나 뾰족하다.세상살이에 서툴어 떠날 때 조차 남은 사람처럼 울어댔다. 졸업식이 그랬고, 회사의 끝 역시도 그랬다. 바로 전날 까지도 평범한 하루의 모습을 하고는 바로 다음날부터 쏙 없어져 버린다니, 이렇게 야속할 때가 있나 싶다. 영상 편집의 디졸브 효과처럼 우리가 지낸 날들의 잔상이 아직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데 


그래도 한달의 준비 기간 동안 나름 덤덤해질정도로 실컷 슬퍼했다. (떠나는 사람 발목 잡을까 티내지 않으려 애썼고, 티내지 않으려 결심한 마음이 민망할정도로 낮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웃으면서 보내 줄 수 있을만큼의 준비를 해냈다. 오랜 슬픔도 그들과 지낸 세월이 행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과의 이별을 응원하며, 마음 깊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걱정을 빙자한 기성세대의 저주따위는 날려버리길, 

매일 매일이 빛나기를,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당당하게 앞날을 걸어가기를, 

부디 다정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을 하기를

나의 무력함과 부족함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구해준 사람들이 많이 웃고, 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또 새로운 이별을 맞이했다. 이별은 언제나 비슷하고 전혀 다른 슬픔을 안겨준다. 

웹툰 '마음의 숙제'에서 '그리움은 눈치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나의 그리움 역시 눈치 없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은경맴이 전해준 말처럼 우리는 돌고 돌아서 결국 행복의 길에서 만날거니까, 이별 없는 세대를 살아가며.

매거진의 이전글 1년차는 처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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