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공천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한 편, 선거연합과 관련한 논의로 인해 각 정당마다 복잡한 셈법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 활동가는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정의당 청년본부에서 부본부장을, 서울시당 학생위원회에서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성 씨(21)와 만나 지난 10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청년 정치와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선거연합, 공직선거법 개정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 덧. 인터뷰 전문입니다. 조금 다듬은 버전은 오마이뉴스에 실었습니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정의당 청년본부에서 부본부장, 서울시당 학생위원회에서 부위원장, 성공회대 학생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성이라고 한다. ‘서찬’이라는 활동명을 오래 써서 이쪽이 사람들에게는 더 익숙할 것 같다.
- 정의당에 청년본부가 있다고 하면 생소할 사람들이 많을 텐데, 조금 더 부연해달라.
정의당에 소위 말하는 ‘청년 의제’를 다루는 부문위원회급 기구는 크게 세 곳이 있다. 중앙 청년학생위원회, 청년본부,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세 곳인데, 미정특위는 심상정 대표가 기획하는 ‘청년정치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총괄하는 단위다. 다른 두 곳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고, 나는 청년본부 부본부장과 중청위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중청위가 운영기구라면 청년본부는 집행기구랄까? 당 안의 전반적인 청년의제에 관한 정치적 결정을 집행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권한과 독립된 예산을 가질 수 있는 ‘청년정의당’을 준비하는 기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 이번에 정의당은 처음으로 시민선거인단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의당 당원이 아니어도 비례후보 투표권이 주어진 것인데, 지난 5일 후보자 선출 선거가 종료된 상황에서 해당 시스템에 대해 평해본다면.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보다는 과정에 대한 고민을 먼저 말하고 싶다. 개방형 경선의 도입이 논의되던 시점부터 반복적으로 제기됐던 우려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기본적으로 진보정당은 진성당원제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평소에 성실히 당비를 납부하거나 활동에 기여함으로서 당에 기여하던 이들이, 당의 공직선거 후보자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외연 확장’과 일종의 ‘컨벤션 효과’를 이유로 진성당원제 원칙을 깨는 개방형경선이 합리화되고 관철되었지만, 글쎄다. 선거결과가 선거인단에 의해 좌우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정책이나 메시지를 다듬는 것보다는 선거인단을 모으는 데 여력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일각에서 나온 ‘천하제일 인싸대회’라는 평가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
한 가지 덧붙여서, 선거인단 시스템이나 청년 20% 할당보다 더욱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피선거권을 개방했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냉정하게 선거 직전에서야, 그러니까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데드라인 이후에야 영입된 분들이 당에 오랫동안 기여해온 분들과 경쟁하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다. 이 분들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당에서 역할을 맡고 당을 위해 일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보장은 선거 직전에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가면서 당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뱃지를 달기 위해서 거쳐가는 공간으로 인식될까봐 매우 우려스럽다. 특히나 이렇게 영입되어 오신 분들 중에는 당의 구조나 시민사회와 진보정당의 역할, 그리고 노동조합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거나 아예 이해를 할 생각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
-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 특히 ‘심상정을 넘어서겠다’, ‘심상정 이후를 고민하겠다’라면서 자신을 홍보하는 당 내 활동가들이 많이 보이더라. 김재성 본인에게 심상정은 어떤 존재고, ‘심상정 이후’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나.
먼저, 나에게는 정말 존경하는 대선배다. 일전에 청년본부가 주최한 청년캠프에 ‘당대표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넣었고, 평소에 잘 알기 어려운 인간으로서의 심상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자리가 있었다. 새벽 다섯시부터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고 지역구 관리와 운동까지 병행하면서 건강관리를 한단다. 그 정도의 뼈를 깎는 노력 없이 소수정당으로 지역구를 돌파하기란 불가능했을 테다. 이런 말을 스스로 하긴 낯뜨겁긴 한데, 나도 나름 주변으로부터 ‘워커홀릭’이라는 이야기를 듣거나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저렇게 살 자신은 도저히 없다. 정말 대단하고 존경하는 선배다.
한편으로 극복의 대상이다. ‘노회찬, 심상정 이후의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하는 분들이 계시고 ‘심상정 이후’를 말하는 정치인이 늘어났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고 이해하고 있다. 사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두 분 이후 진보정치에서 그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이후의 분들이 기울인 노력이 부족하거나 역량이 떨어져서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보정당이 쪼개지고 합쳐졌다 또 쪼개지는 아픈 역사가 있었고, 말하자면 안타까운 시대적 배경 속에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정말로 ‘심상정 이후’를 준비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심상정 대표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 인상평은 차치하고, 이것 참 무섭고 슬픈 이야기인데... 심 대표께서 진보정치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테다. 아직까지는 아득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결국 심 대표의 영향력이 쪼그라들고 작아지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막막하고 아찔하지만 반드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전제를 달고 싶다. 진보정당에 머무르면서 갖게 된 신념 중 가장 맨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정치는 결정과 책임이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결정과 책임을 영웅적인 개인이 혼자가 아닌 집단과 조직이 함께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심상정 이후를 준비한다는 것이 심상정을 이어받을 ‘진보정치의 메시아’를 찾자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상정 없는 정의당’이 아닌 ‘심상정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정의당’이 만들어져야 한다. 단호하고 확고하게 가진 생각이다.
- 청소년운동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해서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당 밖에서 무언가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청소년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냐’보다는 ‘진보정당 활동을 어떻게 시작했냐’가 더 적절한 질문 같다.
아마 초등학교 졸업식의 바로 전날이었을 테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했다’는 헤드라인이 나오더라. 왠지 호기심이 생겨 나름의 방법으로 검색도 하면서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봤다. 삼성 X파일, ‘떡검’, 통신보호법 위반... 굉장히 생소하고 낯설면서도 어려운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체감한 것이다. 생전에 노대표께서 직접 표현했듯 도둑질이 벌어졌는데 도둑이 아닌 “도둑이야!”를 외친 사람이 잡혀가는 이상한 일이었는데, 적어도 내가 교과서와 책과 학교에서 배운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됐다. 세상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 철도와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민중총궐기가 열렸고, 다음해 봄에는 배가 가라앉았다. 여름에 있던 재보궐선거에서는 내가 기억하던 ‘그 노회찬’과, 쌍용차 해고노동자였던 김득중 지부장이 출마했다. 그리고 두 분 다 선거에서 졌다. 나에게는 그 광경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어렴풋이 ‘정치로 삶을 바꿔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고 그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찾아낸 ‘해답’은, 정당에 가입해서 당원으로서 활동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정의당에는 예비당원제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고, 원외에 있는 노동당과 녹색당만이 청소년에게도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있었다. 노동당에 가입할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 때는 정말로 별 이유 없이 정의당에 이끌리는 비합리적인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해부터 노동당 안에서 결집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여러 과정을 거쳐 그 분들까지 참여하는 통합된 정의당이 만들어졌다. 그 때 예비당원제도 생겨났고, 그렇게 정의당에 가입했다. 2015년 10월이었다.
이를 어쩌나. 기껏 예비당원으로 가입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나를 포함한 청소년 예비당원들은 당비납부와 당권행사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활발하게 움직이시던 분들을 중심으로 ‘청소년 정의당’이 꾸려졌지만, 이건 또 공식 조직 사칭이라는 황당한 이유로 저지되었다. 왜 그랬을까? 실정법의 문제? 합법이냐 비합법이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고, 그 당시 중앙당이 느끼기에 청소년 의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아무 필요가 없으니까. 이에 실망하신 분들은 결국 정의당을 떠나는 선택을 했다. 그 때 청소년정의당이 와해되는 일만 없었더라면 내 삶도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뒤 광장이 촛불로 뒤덮이는 일이 벌어졌고, 거리로 나온 청소년들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동시에 선거권연령 인하를 위한 참정권운동도 탄력을 받으면서 오랫동안 꽤나 중요한 의제로 자리했다. 아마 중앙당에서는 굉장히 당황했을 것 같다.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고, 이를 선점해서 대응은 해야 하는데 불과 몇 주 전 자신들이 스스로 청소년 당원들을 그렇게 대접했으니까. 16년 초에 정의당 중앙당에서 전화가 왔는데 너무 화가 났다. 필요없을 때는 내치더니 필요해지니까 찾는다는 게. 이게 뭔가.
그래도 어쨌든 연락이 왔는데 손을 아주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언가를 만들긴 해야 했는데 전국에 남아있는 청소년 예비당원이 셋, 넷 남짓이었다. 내가 앞장서서 일을 맡기는 부담스러웠고, 나랑 함께할 수 있는 분이 더 필요했다. 당장 촛불을 통해 인연을 맺은 문준혁 동지를 설득해서 정의당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몇 달 간의 고민과 논의, 준비를 거쳐 4월 8일, ‘허들’이라는 이름으로 예비당원협의체를 출범시켰다. ‘허들’의 1기 부위원장으로 첫 직함을 달았고, 그래서 아직까지 나를 ‘성깔있는 허들 부위원장’으로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 이번이 첫 선거이자 첫 총선인데, 작년 공직선거법 개정 덕분에 드디어 선거연령이 하향됐다. 만감이 교차할 것 같은데.
참정권 운동의 측면에서,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를 따로 할 수 있겠다. 우선 매우 중요한 변화이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았으리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여러 차례 지적되었듯 선거권 연령이 고작 한 살 내려간 것 뿐이며, 충분하지 않은 변화라고 느낄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선거권 연령 이외에 피선거권 연령의 하향이나, 정당가입 연령제한의 폐지, 선거운동 연령제한의 폐지 등 더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로 개인적인 층위에서. 큰 이슈거리가 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선거권 연령이 하향되면서 정의당에서 만18세 당원들에게 일괄적으로 당권을 부여했다. 기존에는 예비당원으로 지낸 기간을 당원으로의 기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당권을 갖기 위해서는 세 달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만 하는 제한이 있었다. 예비당원으로 몇 년을 있었든 선거권을 가지는 연령이 되어도 기다렸던 당권을 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 기간 동안 재수없게 당내선거가 끼어있든가, 하면 투표를 하지 못하는 억울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작년 당직선거 기간에 내가 그런 이유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저저번 전국위원회를 통해서 이런 문제점이 개선되면서 나 같은 사람이 또다시 등장할 여지가 사라지게 되었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는데,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어쩐지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에 바랐던 당권이나 선거권 연령에 대한 문제들은 내가 당사자성에서 벗어나게 되면 금세 해결이 되는 중이다. 분명 축하할 만한 일들이고 값진 성과이나 정작 그 수혜를 하필이면 나는 간발의 차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아주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들 수밖에 없는 듯 하다. 내가 속이 좁아서 그렇다.
- 최근에 선거연합 제안이 뜬금없이 터져 나오면서 그야말로 ‘핫’한 주제가 되어 버렸다. 현재 심상정 대표는 해당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한 것 같은데, 본인이 보기에 이런 논란이 왜 반복되는 것 같나.
민주당은 그럴 수 있다. 이들이 벌인 행보나 움직임을 이해하고 납득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분들은 원래 이랬다. 보수정당이 활개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면서 진보정당을 협박하고 겁박했던 역사가 어디 한두번인가. 워낙 뻔한 레토릭이다.
나는 민주당과의 공조나 선거연대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사정이야 복잡하지만 수 년 간의 공조나 연합정치의 여파로 실제로 민주당과 정의당이 꽤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부정하기 어렵다. 가령 유치원3법에 있어 가장 크게 활약했던 박용진 의원은 진보정당에서 선거 출마도 여러 번 했던 분이고, 데이터3법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민생당의 채이배 의원은 그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진보신당의 당원이었다.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정의당은 민주당과 다른 지향을 갖고 있는 아주 별개의 정치세력이다. 반자유한국당, 반미래통합당은 정치적인 구호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정치의 지향이나 최우선의 가치가 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힘을 주어 강조할 필요도 없는 너무 당연한 원칙인데, 이를 잊고 계시거나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정의당은 진보정당이고, 진보정당이 진보정당다워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를 부정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정의당이 민주당의 종속적인 위성정당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을 테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이 ‘왜’ 진보정당다워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지난 수 년간 정의당은 스스로 진보 ‘정당’다워야 하는 이유를 망각하거나 외면해왔다. 그 결과 정의당은 스스로 집권을 꿈꾸고 수권정당으로 나아가는 길로 가고 있다기보다는 ‘범여권‘의 끝자락 어딘가에 있는 종속적인 정치세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 이번 비례선거 때 이현정 후보 선거본부에서 활동했다면서. 사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녹색, 환경 의제라고 하면 정의당을 바로 떠올리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어떤 점에서 환경 의제를 들고 나온 이현정 후보에게 감회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먼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나는 정말 최근에서야 녹색과 환경의제에 대한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아직 잘 모른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나 진보정당에서 ‘녹색파’의 파이가 더 커질 필요가 있다든가, 이런 생각 때문에 이현정을 지지하기로 했던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이현정을 지지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이현정이 ‘좋은 정치인’이기 때문도 아니고, 생태 전문가이기 때문도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현정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이후로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개인보다는 조직과 당을 우선시하는 그 마음에 있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이 배출해 왔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을 한분 한분 떠올려보자. ‘좋은 정치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대부분이 유능하고 좋은 정치인이었다는 데 이견을 달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정치인’의 총합이 ‘좋은 진보정당’을 만들지는 못했다. 앞선 질문에서 대답했던 것처럼 정의당이 범여권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어중간한 신세가 된 것은 지금까지의 국회의원 분들이 유능하지 않아서도, 좋은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도 아닌 것이다. 지금 정의당에 필요한 국회의원은 진보정당이 ‘왜’ 진보정당다워야 하는지 이해하며 당을 위해 자신을 내던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한 이런 기준에 이현정이라는 사람은 완벽히 들어맞는 정치인이었다.
21번이라는 순번이 바라던 것과 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숫자를 두고 함부로 ‘비당선권’이라거나 ‘가망 없는 숫자’로 잘라 말하고 싶지 않다. 영웅적인 개인이 되려는 것이 아닌, 결정과 책임을 함께 지는 정치의 미덕을 아는 이현정이라는 사람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후회가 없다.
- 여의도 정치권에서 언젠가부터 ‘청년’이 핫한 키워드가 됐다. 정의당도 예외가 아닌데, 청년정치/정책 관련해서 정의당이 잘 하고 있는 점과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먼저 양대정당이 ‘청년’을 다루는 태도에 대한 평가와 비판, 그리고 ‘청년정치’의 낭만화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양대정당이 청년 의제를 진지하게 다루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승자독식 경쟁을 부추기기만 할 뿐인 기계적 공정성을 가지고 프레임을 만들어 대중을 추수하는 미래통합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민주당도 별다를 바 없다. 가령 원종건 씨 사태를 보자. 이 분이 어딘가에 올렸던 게시글로도 한바탕 시끄러웠는데, 솔직히 그 정도 수준의 이해와 고민을 가지고 이 분이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생각한다. 민주당에 필요했던 건 그저 ‘어렵고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음에도 굳건한 의지와 성실한 노력으로 악조건들을 극복하고, 나아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의로운 일을 하는 청년’으로서의 이미지 뿐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의 고민이나 생각에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에도 당 안에서 중요한 여러 활동들을 해오며 성장해가고 있는 훌륭한 청년활동가가 많은데, 스토리와 이미지, ‘상품성’만을 보고 이들이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뒤로 미루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인데. 이들은 만 45세까지도 ‘청년’이라 인정한다. 만 45세가 청년이란다.
정의당은 ‘청년 정치인’의 상품화나 ‘청년 정치’에 대한 낭만화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청년 정치’가 ‘청년이 하는 정치’와 완전한 동의어가 아니며, 다양한 가능성과 세밀함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더욱이 이런 고민이 단순한 이슈파이팅에 머무르지 않고 관철될 수 있는 변화를 시도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요컨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순번을 선출하면서 IT업계 해고노동자 출신인 류호정 후보가 1번에, 영화감독이자 장애인운동에 당사자로서 동참해온 장혜영 후보가 2번에 배치받았다. 이렇게 청년 후보들을 비례대표 앞 순번으로 배치하는 것은 일단 부족했던 청년들의 대표성을 끌어 올리겠다는 의지로서 ‘청년전략명부’의 할당이 배정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자세히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단순히 초선 비례의원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구에서도 ‘생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되었고 계속 고민되고 있다. 적어도 정의당은 청년 정치인을 소모품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이다.
물론 아쉬움도 적지 않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당에서 성장하는 중인 청년 활동가들의 노고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나의 입장에서,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정의당의 이름으로 나간 논평을 프린트해 부착하거나 좋은 연사를 모셔와 강연을 열고, 나아가서 관심을 가져주는 학우들이 정의당에 가입하도록 하는 일은 내 시간과 사비를 쪼개서 하는 일들이다. 소중한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하는 일이니 떠받들어 달라는 말이 아니다. 기층에서의 활동가들이야말로 그 ‘대중’들을 누구보다 가까이 하면서 이들로부터 칭찬받거나 호된 질책을 당하고, 투표소로 이끄는 데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역할을 맡은 이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는 당에서 ‘고인물’이라거나 ‘기득권’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권력에서 멀어 있는 대학생과 청년들에게 이런 박평이 일반적이다. 안타깝다.
- 본인이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도 정의당 학생위원회(학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대학사회 내에서 ‘탈정치’의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강한데, 그런 상황에서 학위를 운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나.
‘20대 보수화’나 ‘청년세대의 탈정치화’는 참 난해하고 어려운 거대담론이다. 특히나 이러한 논의의 경우 정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서 너무 쉽고 편협하게 해석되는 경향이 크다. 가장 대표적으로 20대가 수구정권 아래에서 역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보수적이라는 이야기. 이런 말을 발화하곤 하는 소위 말하는 ‘586 세대’는 아예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지금보다 더 심한 획일화된 교육을 받았지 않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을텐데 그렇지 않아 정말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무너진 학생사회, 20대 보수화, 청년의 탈정치, 운동권의 몰락. 이 문제를 관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인터뷰용 정석적인 멘트가 아닐까 싶은데. 정치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장과 기층에서 정말로 열심히 활동해온 진보정당은 이런 평가에 조금 억울해할 수 있겠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냉정한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캠퍼스 학생위원회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각박하고 암담한 미래와, 학과통폐합이 난무하는 현재의 위기 속에서 정치가, 그리고 정의당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학생위원회를 만들고 운영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우리의 슬로건을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라고 정했다. 학우들의 삶에, 그리고 우리가 당면한 어렵고 힘든 문제들 속에서 정의당이 가까운 위치에서 손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물론 잘 하고 있는지는 나 스스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많은 활동가들이 지적해 왔지만 정의당이 조국 전 장관의 임명에 사실상의 찬성 입장을 내면서, 그렇잖아도 따뜻하지 않은 편이었던 캠퍼스에서의 눈초리가 더욱 차가워졌다. “이상주의에 경도된 무식한 좌파 놈들”이라는 악의적인 평가에는 아무 미동도 없지만 “그래서 너네들 조국 찬성했지 않냐”는 냉소 섞인 반응에는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사실이니까. 당 안에서 열심히 ‘아저씨’들이랑 싸웠다는 볼멘소리나 힘이 없어서 그렇다는 한탄은 당연히 이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책임이었다.
그럼에도, 어렵기 더욱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힘들지만 캠퍼스 학생위원회에서의 일만큼은 애정을 갖고 더 열심히 하려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냉소 섞인 비아냥과 악의적인 비난을 열 번 마주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며 어떻게 가입할 수 있냐고 묻거나 일상적인 활동들에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을 한 번이라도 볼 때마다 기운을 내고 각오를 다잡게 된다. ‘힘들다’는 이야기보단 ‘더 잘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혹시 앞으로 국회의원 출마 할 의향은 없나. 청년정치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없다(웃음). 이번 비례후보 선거를 겪으면서도 그랬고,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안 보이는 자리에서 돕는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당 내의 직책을 맡는 것은 언제든지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국회의원은 내가 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새 들어 틈틈이 읽은 책 중 하나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산문선인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다. 초장의에서부터 그람시는 프리드리히 헤벨의 ‘산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요새 들어 가장 ‘꽂힌’ 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음으로서 어느 한 쪽을 열렬히 편들며 살 작정이다. ‘활동가 김재성’이 앞으로 어느 한 편을 열렬히 편들며 살 수 있도록, 많은 질책과 응원 감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