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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준 Aug 11. 2021

애매함을 견딜 수 있는 힘에 대하여

[인터뷰] <연중무휴의 사랑> 임지은 작가를 만나다


* 위 인터뷰는 오마이뉴스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오마이 기사는 분량 상의 이유로 조금 덜어냈지만 그래도 많관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5981&PAGE_CD=N0002&CMPT_CD=M0112






어떤 글을 읽을 때 '사이다'라는 반응을 접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사이다를 마신 것 처럼 마음 속의 어떤 답답한 부분을 확 뚫어줬다는 비유인데, 그런 글들은 단정짓는 표현을 쓰거나 확실한 결론을 내주는 경우가 많다. 읽고 나면 덕분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명확해지는 것 같고 확실한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임지은 작가의 <연중무휴의 사랑>은 정확히 그 반대에 서 있다. 서문에서부터 "애매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덜 모르겠는 것 위주로 써내려간" 결과물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사이다'가 각광을 받는 세상에서, '이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보니까 결론은 이렇더라!'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하는 일을 주저하는 사람의 글쓰기란 무엇일까. 


지난 2월 출간된 이후 시간이 좀 지난 상황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푹푹 찌는 여름의 한 가운데인 7월 29일, 분당구의 모처에서 임지은 작가를 만났다.        



"체념하지 않고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연중무휴의 사랑"


사진 제공 임지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90년생 임지은이고, 3월에 <연중무휴의 사랑>을 내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냉장고 속에 반찬이 상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 표현은 작가 소개에 나와 있는 글귀 중 일부다.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 이유를 묻자 “요즘 여름이라 내가 상한 음식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라고.      


    

첫 책입니다어떻게 해서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건가요?     


“책을 내게 되는 건 많은 경우 책을 내자고 제안이 들어오기 때문인 거 같아요. SNS에 꾸준히 글을 써왔는데, 아마 거기 내 글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욕망이 묻어나지 않았나. (웃음) 그걸 읽어주신 편집자님께서 제안을 주셨고 그 덕분에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3쇄를 찍으셨다고요축하드립니다독자분들은 왜 이 책을 찾았을까요작가님이 생각하는 이 책의 매력은 

    

“우선은 표지인 정이지 작가님의 그림이 사람들을 끌어당긴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로 표지가 예쁘다는 후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내용적인 측면으로는, 점도가 느껴지는 에세이라 그런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최근 에세이들이 대체로 산뜻하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게 멋져보여서 많이 참고하고 그 과정 중 많이 좌절했어요. 산뜻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 먹히는 시대인 거 같은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인 거 같았거든요.  

    

왜, 힙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신디사이저 음이나 쿨한 영어 가사에 공감하고 싶은데, 아무리 들어도 거기에는 마음이 붙지 않는, 결국 질질 짜면서 낡은 발라드 열창하는 그런 타입 있잖아요. 어떻게 해도 좀 질척이고 끈적거리고 기름진 인간이라 에세이도 결국 좀 그런 부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의외로 저 같은 사람들도 아직 많이 있었던 거 같아요.”   


  

산뜻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의 글쓰기란 뭘까.     


“아직 제게 글쓰기는 태도의 문제인 거 같아요. 내가 어떤 작가여야 할까를 고민했고, 최대한 척은 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안 되는 걸 하려 들거나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자. 내가 산뜻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가 제일 잘 아는 걸 이야기하자 마음먹은 거죠.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지점이 있는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의 목소리도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페미니즘 에세이라고 알려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서문이 인상적이에요.     


“어쨌든 저는 이 사회에 사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엔 페미니스트적 측면이 분명 있죠. 다만 나를 설명하는 여러 단어가 있고 그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다, 라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그 단어 중 다른 단어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제 삶에 관해 쓰다 보니 페미니즘이 묻어나왔달까요.      


또 ‘이런 목소리가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다’라고 경계를 딱 지어서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는 페미니즘을 규정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제 책이 페미니즘 에세이다 아니다 식으로 논쟁적이면 좋겠어요. 그런 게 지속되어서 점점 페미니즘의 영역이 확장되어가길 바라요.”  


         

독자분들한테 DM을 많이 받으셨다고요.     


“책이 출간된 초반 따뜻한 내용의 DM이 많이 왔고 지금도 종종 와요. 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보내주신 건데, 그분들도 저와 비슷한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저처럼 자주 망설이고, 선뜻 무언가를 하지 못하는, 마음속에 걸리는 게 있으면 지나가질 못하고 그걸 어떻게든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분들이요. 그런 분들이 제 책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제일 뭉클했던 건 ‘저도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DM이었어요. 제 글을 읽고 어떤 여성이 자기의 언어로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는 게 진짜 기쁘더라구요.” 


    

지은님에게 페미니즘 에세이란 무엇일까요?   

  

“최근 한 칼럼에서 ‘여성주의는 원칙이 없다’(“여성주의는 ‘원칙’이 없다. 고도의 맥락적 사유다. (중략) 늘 새로운 원칙을 만들고 적용해야 한다”, 경향신문 칼럼 ‘세 남성은 여성가족부 전문가’ 중)는 문장을 읽었는데,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어떤 원칙과 공식에 따라서 누구는 페미니스트고, 또 누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여자가 썼다고 무조건 페미니즘 에세이가 되지는 않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이런 것들에 대해 논해볼 마음이 있는 사람들, 원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규정하고 싶은 사람들이 쓰는 글이 곧 ‘페미니즘 에세이’가 되는 게 아닐까요? 또 페미니즘과 관련된 사안을 두고 윤리적으로 보이는 하나의 답을 제출할 수 있는 글뿐 아니라, 자기 논리를 가지고 또 다른 답을 논하고자 하는 글이 있다면 그 역시도 충분히 페미니즘적이라고 생각해요.”   


<연중무휴의 사랑>(2021, 사이드웨이)



책에는 여성 혹은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그냥 일상 얘기도 있어요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제목 그대로 ‘연중무휴의 사랑’이 아닐까요. 작가와 활동가의 영역은 각기 다른 부분이 있어요. 어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마다, 그런 에너지가 내가 되고자 하는 업이나 삶과 부딪힐 때마다 그 다름이 늘 부끄러워요. 하지만 거기서 체념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역시도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중무휴라는 말은 연중무휴로 불타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제 전부를 다 바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태도로 글을 썼어요.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 태도일 거 같아요.”  


        

‘90년생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지은 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사실 이 말은 친절해지려고 그냥 써놓은 거예요. 제가 90년대 생이라서 어떤 딜레마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없다? 그런 게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9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라는 설명은 읽는 사람들이 글의 내용을 좀 더 디테일하게 상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 같아요. 90년생 지인을 떠올릴 수도 있고, 가족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저에게 반박하기도 좋고. 이래저래 그런 정보를 주면 독자가 조금 더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임지은의 애매한 마음들이 거기 있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지금의 세상은 제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자꾸 착각하게 만들어요. 잘 알고 싶어 하는 부분들만 편식해서 보여주고.(웃음) 그러면 어떤 사안에 대해 잘 안다고 섣불리 말하거나 명명해버리기 쉬워요. 물론 그럼에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틀렸을 때 정정할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칫 오래 들여다봐야 알게 되는 것조차 빨리 단정 짓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고 저는 그 경향에 저항하고 싶어요. 그래서 살아가며 갖게 되는 애매한 마음들이나 해결되지 않고 거기 남아있는 마음들에 집중하게 되는 거 같아요.      


명쾌한 건 명쾌하게, 애매한 건 애매하게 다루는 것이 더욱 정확한 방식이라고 믿어요. 후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명쾌하지도 않아요. 다만 내가 명명하기 어려운 게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어떤 경향에 의심을 하게 만들어주죠. 저는 그럴 때 전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살고 있는 거 같다고 느껴요.”          



33개의 글 중 평론가와 아티스트 간에 있었던 갈등을 이야기한 글에 유독 긴 각주가 달려 있어요. “조금 더 해명이 필요하다”(p.91)고 느껴서 단 각주인데이 해명은 왜 필요했고어떤 함의가 있을까요?     


“해당 평론가분은 열심히 목소리를 내오신 분이고, 제가 못하는 방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이에요. 여전히 저는 그분을 응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일은 논의해볼 여지가 있는 지점이라고 봤어요. 아직은 제 생각에 변화가 없고요. 그렇다 해도 분명 이런 비판은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 글을 책에 넣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편집자님 설득으로 넣게 되면서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말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문제를 바라보는 제 전제를 조금 더 설명하고도 싶었어요. 해당 글은 원래 SNS에 썼던 글을 가져와 출판에 맞게 수정을 거친 글인데, SNS 게시 당시 그 글로 인해 DM과 댓글을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최근에도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이 사람이 이 지경이다, 이런 말을 했는데 아직도 똑같이 생각하냐. 매번 열심히 댓글을 달면 지우고 사라지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거기에 응답해온 내용과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각주로 달았어요.”     


사실 이 질문은 꼭 하고 싶은 질문인데 임 작가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오마이에는 분량상의 문제로 더 담기 힘든 이야기인데, 더 들어보자.      


“함부로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문제에 대해 제가 글을 보탤 때는. 대부분 ‘이 얘기를 왜 아무도 안 하지’ 싶었을 때인 것 같아요. 보통은 오래 머뭇거려요. 그런 얘기들이란 으레 다루기 민감하고 어렵고 욕먹기 쉬운 문제일 때가 많거든요. 그래도 에라 모르겠다 썼어요. 쓰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어요.” 


         

이 책에서 가장 애정이 담긴 글이 있다면.     


“‘전 연인의 결혼 소식’을 좋아해요. 사랑 얘기를 제일 좋아하거든요(웃음). 마지막 문단에도 나오지만 “서로를 소멸시키며 과거의 상상력을 넘어섰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 굉장히 유의미했던 게 시간이 지나 변질은 된다 해도 무의미해지지는 않는 일들, 그러면서 개인의 어딘가가 미세하게 달라지는 과정들에 관심이 많아요. 실제로 이 글은 엄청 금방 썼어요.”          



사진 제공 임지은



"애매한 마음이나 경계에 머무르는 순간들이 글쓰기의 원동력"


무해함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은데, “모두가 이토록 자신이 무해한 사람이길 바라지만 개인의 기본값이란 타인을 상처 주는 데 있다고 가정해야 맞는 게 아닐까”(p.184)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닿은 결론인 것 같아요무해함은 지은 님에게 어떤 문제로 다가오는 걸까요?     


“언젠가부터 무해함이 윤리를 담보하는 긍정적인 가치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많이 다치는 사회니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라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게 기본값인 삶은 너무 생기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누군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겠다고 엄청 친절하게만 굴면 오히려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지 않나요. 무해하고 아무런 상처도 안 주는 관계는 둘 사이 거리가 멀 때만 가능하잖아요.   

   

중요한 건 내가 상처를 줬을 때 사과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자세이지, 아예 상처를 주지 않는 무해한 관계를 처음부터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관계는 서로를 엮어주는 게 하나도 없는 관계 아닐까요?”     



지은 님에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해요.    

 

“글쓰기에 처음부터 어떤 거창한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누군가 제 글을 칭찬을 해줬던 기억들이 저로 하여금 ‘글을 잘 쓰고 싶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생각은 해요. 타인들이 나를 인정해 주는 수단이 글쓰기였고,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자라오다 보니 지금은 글을 쓰면서 살고 있지 않나… 제가 글쓰기를 각별하게 여긴다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어쩌다가 글쓰기랑 각별해진 사이가 된 거죠.”     



그렇다면 지은 님에게 글쓰기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애매한 마음이나 경계에 머무르는 순간들이요. 하다못해 카페 가서도 뭘 시킬지 한참 고민하는 사람이다보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순간들이 무척 많아요. 그런 순간들로 고민하고 생각하던 시간들이 쌓이고 모여 결국 글이 되는 거 같아요.”   


        

다음 책 계획이 있나요.     


“임지은 시인님과 공저로 쓴 책이 8월 말에서 9월 초쯤에 나올 거 같아요. 같은 이름을 가진 시인과 작가가 만나 비슷한 주제를 두고 써나간 에세이입니다.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미리 읽어본 시인님 글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다른 산문집들을 계약하게 되어 함께 내용을 구상 중이에요.”  

        


이제 전업 작가가 되시는 거군요.     


“책은 계속 내야죠. 뭘 하고 살겠어요(웃음). 인세만으로는 빠듯해서 아르바이트는 계속 병행 할 거 같아요. 묘하게 전보다 많은 분들이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열심히 하다보면 더 많은 분들이 글을 봐주시겠고, 그때는 글쓰기만으로도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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