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랑쉬 특별전> 연출 박예슬, 배우 정희원, 한주연을 만나다
1992년,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굴에서 제주 4.3 희생자의 유해가 11구 발굴되었다. 당시 알려진 바로는 학살 희생자들이 4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한다. 2022년 4월, 제주 출신의 박예슬, 박찬우 남매는 제주KBS의 다랑쉬 발굴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인 ‘다랑쉬 비망록’을 보고 두 달 전 4.3평화박물관에서 봤던 유골 하나가 증조할아버지 ‘박봉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알아보고자 자료를 찾던 중에는 다랑쉬굴 발굴 10주년 기념을 기록한 오마이뉴스 기사를 찾게 되는데, 그곳에 박봉관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
연극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다뤄왔던 박예슬 씨는 이번엔 이번엔 다랑쉬굴 발굴 30주년을 맞아 가족과 대화하고 성찰하며 이를 기록하려고 했던 시도를 연극으로 다뤄보기로 하면서 동생 찬우 씨와 함께 봄부터 가을까지 준비했고, 12월 15일부터 18일까지 <다랑쉬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올렸다.
지난 17일 공연을 관람한 뒤, 24일 서울 모처에서 연출 박예슬과 배우 정희원(찬우 역), 한주연(예슬 역)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희원 : 극단 드림플레이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 정희원입니다. 작년에 군대를 전역해서 올해 본격적으로 연극인의 길을 걷고 있어요. 예슬 연출과는 세 번째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전업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 위에 있기도 합니다.
예슬 : 드림플레이 소속의 연출 박예슬입니다. 극단에 소속은 되어 있지만 저의 연극 세계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단계에 있어요. <이상 소견이 있습니다>(2021)와 <빠, 쁘리카>(2022)를 지나 올해 <다랑쉬 특별전>까지 세 작품을 만들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나의 팀’을 만들어 가는 중이에요. 내가 연극을 통해 뭘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이제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주연 : 저는 여러 팀과 함께 작업을 같이하는 프리랜서 연극인입니다. 원래는 울산에서 연극을 계속하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작업한 지는 6년 정도 됐어요. 최근에는 배우뿐만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 고민 중입니다.
- 창작자와 배우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주연 : 제 나름대로 개념화한 건데요, 연기를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출가가 원하는 방향을 잘 알아채는 게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면서 활동을 했어요. 연출이나 대본을 어떻게 하면 잘 해석할지를 고민하는 단계인 것이죠. 그러다가 최근에는 작품 안에서 내 생각을 잘 녹여내고 대본 그 너머의 의도까지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창작자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다랑쉬 특별전 초연이 끝낸 소감이 듣고 싶습니다.
희원 :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커요. 사실 소극장 의자도 불편하셨을 텐데(웃음). 관객과의 대화에도 열심히 참여해주셔서 너무 좋았습니다. 재연하게 되면 어떻게 더 발전시켜야 할지를 공연 끝나자마자 바로 고민을 하게 됐는데, 그럴만한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주연 : 저는 이 작품이 배우나 창작자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 한복판에 있어서 그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할 수 있게 해줬어요. 그 구체성이 저에 관한 이야기까지 도달한 덕분에 제 관점들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서 후련하지 않으면서도 후련한 느낌입니다.
예슬 : 이 작품을 준비하고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짧은 시간에 엄청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특히 운이 많이 작용했다고 느껴요. 영상 공모전에서 대상도 탔고, 그 덕분에 뉴스 출연도 했거든요. 아직 저라는 사람이 이 작품을 소화할 만큼의 확신이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에서 들어오는 운들이 이 작업을 잘 해낼 수 있게끔 해줬다고 생각해요.
또, 아빠가 연극을 보고 나서는 생각보다 괜찮으셨나 봐요. 그래서 재밌었다고 엄마한테 얘기했대요. 전에는 4.3 자체가 워낙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다보니 ‘너네 공부 많이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우리는 ‘이거 공부 많이 하려고 하다 보면 시작 못 한다. 우리가 아는 수준에서라도 계속 얘기하는 게 의미있는 것 같다’ 이렇게 밀어붙였거든요. 그래서 ‘4.3 공부 안 하고 연극 만들기’ 이런 프로젝트였던 것 같은데(웃음). 그게 먹힌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내가 공부한 만큼만, 공부할 수 있는 만큼만 작품을 만들고 또 그만큼으로 평가받고 싶거든요.
- 확신이 없이 시작했다고 했는데, 이제는 확신이 생겼나요?
예슬 : 4.3이 젊은 세대에게는 평화와 인권 그런 관점보다는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사, 그때 어쩔 수 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4.3을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정도의 공연으로는 괜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찬우의 친구 중에는 4.3을 무겁지 않게 전달하는 정도의 공연으로는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 4.3을 주제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를 계몽하려는 의지로 사상을 전달하려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데 공연을 보고 나니, 딱 중도의 입장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라는 의도는 잘 전달된 것 같아요.
- 그런데 4.3은 충분히 정치적인 사건이니, 거기서 정치적인 입장이 드러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을까요?
예슬 :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나의 동료 시민 중에는 분명 저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제가 한 공연이 그들의 마음을 닫는 게 아니라 여는 공연이 되길 바랐어요. 연극을 보러 온 희원 배우의 친구가 ‘무거운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라는 피드백을 남겼는데, 저는 이게 제일 좋은 피드백이었다고 생각해요.
희원 : 예슬 연출의 전반적인 태도가 그런 식이에요. 어떤 당위를 일방적으로 설파하는 방식보다는 ‘이런 주제가 있는데 이걸로 대화하고 싶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이런 거야’라는 식으로. 마음을 열게 만들어서 다양한 질문을 더 할 수 있게끔 하는거죠.
- 제주 4.3은 이 사안에 양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기획의도부터 작품 내용까지 4.3 ‘사건’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고 ‘4.3’이라고만 표현되며,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한 “이름 짓지 못한 역사”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의도한 부분인걸까요?
예슬 : 제주 평화박물관에 가면 4.3에 대해 백비(白碑)와 함께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역사’라는 맥락으로 이야기를 해요. 이 사안을 연극으로 만들고자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관점에서 계속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4.3이라는 단어 뒤에 뭘 붙이지 않고 4.3 그 자체로 계속 얘기하는 게 여기에 접근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진상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는 ‘사건’이라는 표현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입장인 거잖아요? 주연 배우와 ‘4.3은 왜 4.3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1947년 3월부터 시작하는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4.3이라는 이름을 사후적으로 부여한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사건’이라는 단어를 쉽게 써주고 싶지 않았어요. 4.3 뒤에 어떤 표현을 붙일 것인지는 결국 해석의 영역이니 그 해석의 비어있는 공간을 관객들한테 넘겨주고자 했습니다.
- 희원, 주연 배우 모두 실존 인물(?)인 예슬과 찬우를 연기해야 했어요. 이미 현실의 예슬과 찬우가 가족사에 관해 대화하거나 개별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한 것들이 있을텐데, 그것을 이해하고 따라잡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들을 이해하고 해석해내기 위해 각자 어떤 노력을 했나요?
희원 : 사실 ‘가족의 역사다’, ‘제주 4.3이다’ 이러면 엄청 크고 무거운 주제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내 가족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하면 나는 어땠을까’ 혼자 엄청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예슬 연출이랑 대화를 나누면서 이 주제를 가볍게 가져가더라도 좀 더 잘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실의 예슬과 찬우는 진짜 남매니까, 두 사람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많이 질문하면서 그림을 그려 나갔죠.
주연 : 이게 가족사고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연극 작품이기도 하잖아요? 저도 많이 물어보고 대화도 많이 했지만, 결국에는 나의 해석을 통해 ‘내가 표현하는 예슬’이 됐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뚜렷하게 가져갔던 것 같아요. 저는 결국 장면으로 보여주는 거니까, 예슬 연출에게 또 코멘트를 받으면서 생각을 맞춰가는 과정을 거쳤고요.
- 앞 질문과 연결해서, 두 배우는 예슬 연출과 많이 대화해야 했을 것 같아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나요?
희원 : 왜 이 주제를 무겁게 다루면 안 되는지부터 시작해서 중요하고 무거운 문장 대하듯 꼭꼭 씹어먹지 말고 툭툭 내뱉듯이, 그 문장이 관객의 머릿속에만 들어갈 수 있게끔 말해주면 된다, 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물론 무겁지 않게 툭툭 잘 던지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웃음). 그래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주연 : 저에게 이 연극을 준비하는 시간은 예슬 연출과 서로 해석하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는데요, 사실 연출이 이렇게 의도를 했더라도 그걸 구현해내는 건 배우잖아요. 예슬 연출이 ‘아무 감정 없이 덤덤하게 표현해주세요’라고 말을 해도 ‘덤덤하다는 것도 감정의 한 상태인건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웃음).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를 가지고도 깊은 대화를 하게 됐어요.
- 다랑쉬 특별전을 같이 준비하면서 느꼈던 예슬 연출의 강점이 있다면.
희원 : 예슬 연출은 엄청 직설적으로 피드백을 해요. 뭔가를 했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가거나 더 좋은 방향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 그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그러면 보여주는 배우한테도 다음에는 이런 식으로 보여줘야겠다는 판단이 바로 서거든요. 그걸 기분 나쁘지 않게 직설적으로 잘 얘기해주셔서 저는 정말 좋았어요.
주연 : 예슬 연출의 작품이 가진 특성일 수도 있는데, 이게 동시대 연극이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최근 관객들이 호감을 느끼는 작품들의 특징들이 대체로 뭔갈 엄청나게 설명하거나 답을 내리려고 하거나 심각해지는 것보다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게 하는, 여백이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억지로 심각해지려고 하지 않고 본인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가볍게 다루려는 성향이 강한 예슬 연출의 태도가 이 작품에 잘 녹아 있는 것 같아요.
- 그런데 사실, 누군가에게 가볍게 전달을 하려면 보통 본인은 무겁게 고민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예슬님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슬 : 내 얘기를 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면 고민이 많이 되고 힘들 것 같긴 한데, 감사하게도 저는 저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게 익숙하고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그저 제가 생각하는 바를 표현한 것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어떤 문제를 여기까지밖에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가 부족함을 드러낼 때 그 부족함을 탓하기보다는 부족함을 인정하고 같이 해내려고 노력하는 게 제가 겪은 세계에서 경험한 인간에 대한 태도였기 때문이죠.
희원 : 그래서 예슬 연출은 모르는 것에 대해 인정이 엄청 빠릅니다(웃음). 본인의 부족함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사과를 한 다음에 다시 시작해요. ‘나 솔직히 여기까지밖에 생각을 안 했어. 이제부터라도 더 고민해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인거죠.
예슬 : 사람들은 제가 이걸로 작품을 한다고 하면, 이 주제로 한 100시간은 고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항상 말했어요, ‘나는 3시간밖에 고민을 안 했다. 그런데 3시간 동안 이것까지밖에 생각을 못 했으니까 나머지 부분은 여러분이 채워달라’고. 더 오래 생각한 사람이 필요하면 그 사람 찾아가면 되는 거고, 나랑은 이만큼 생각한 것까지 만들자고(웃음).
주연 : 연출이 이런 걸 가감 없이 드러내는 성격이다 보니까 같이 일하는 배우도 약간 가감 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주연 배우는 울산 출신이지만 부모님이 모두 제주가 고향이에요. 예슬 연출과 겹치는 역사가 있는 셈인데요, 이 연극에 참여하기 전에 가족 내에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있는지, 그리고 이 연극을 참여하면서 또 다르게 제주 4.3사건을 인식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주연 : 이 연극 이전에는 저에게 제주 4.3은 그저 역사적인 이야기였어요. 부모님한테 따로 물어본 적도 없고요. 그냥 역사의 한 맥락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연극을 만들면서 아빠한테 전화해서는 우리는 뭐 관련 없냐고 물어봤는데, 할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할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증조할아버지가 경찰이셨는데 토벌대에 의해 돌아가셨대요. 그래서 할머니가 국가 유공자세요.
- 그러면 할아버지께서 경찰, 그러니까 국가기관에 속해 있으셨으니까 또 생각이 복잡해지셨겠어요.
주연 : 아빠는 늘 저에게 ‘모두가 시대의 희생자다’라고 하면서 역사에 관한 얘기를 해주셨는데, 저는 그때마다 ‘그러면 구체적인 희생자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며 반발을 했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역사란 이전까지는 타인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쉽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우리 증조할아버지를 가해자라고 얘기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어요. 답을 찾았느냐 하면,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게 제 답이에요. 연극 대사 중에 “그러면 피해자와 가해자 두 분이 연극을 만드는데 어렵지 않으세요?”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제가 증조할아버지를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고 규정하고 이 대사를 해석하려고 하는 순간 그분이나 할머니의 입장을 제가 먼저 정해버리는 것 같았거든요.
- 예슬 연출이 경험한 것처럼 희원 배우도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 본 경험이 있을까요?
희원 : 제 가족은 모이면 가족의 역사에 대해 가볍게 잘 얘기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제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가 북한 출신이셨는데 6·25 때 국군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시고 이후에 북한으로 못 돌아가신 거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확인을 해보니까 전쟁 때문에 남한으로 오신 게 아니라 남한으로 와서 일하다가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국군에 들어가서 군 복무를 하셨고, 이후에 남으신 거였더라고요. 그때 강원도 산골짜기에 남으면서 글을 읽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글을 가르쳐주시고 쌀을 나눠주기도 했대요. 당신께서도 별로 가진 게 없었음에도 말이죠.
- 예슬 연출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까”를 고민하셨다고 했는데, 그 마음가짐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나요.
예슬 : 솔직하게 기억하고 기록하자. 이게 핵심이에요. 사실 인터뷰하는 동안 이게 당연하다는 듯이 쉬운 것처럼 얘기를 계속했는데(웃음), 그렇지는 않거든요. 모른다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는 건 어려운 태도인데,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끔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제가 충격을 받았던게, 아빠랑 4.3에 대해 대화를 하면서 아빠가 ‘나도 잘 몰랐어’라는 말을 했어요. 당황스러우면서도 그렇게 몰랐다는 걸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아빠가 멋지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4.3 유가족이기 때문에 이걸 잘 알아야 한다는 시선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는 것도 사실이니, 누군가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개의치 않으려고 해요.
- 극 중 세월호 등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비극’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각자 사회적 비극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있다면, 특히 무엇에 대해 고민해보았나요?
희원 : 세월호는 제가 연출님한테 얘기했던 건데, 4.3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서 8주기가 된 세월호랑 70년이 넘은 4.3이 닮은 부분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모르고 저렇게 먼 과거의 사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그러면 우리는 미래에도 일어나게 될 사건 사고를 보면서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이전에 세월호 유가족분과 함께 세월호에 대한 연극을 하면서 어떻게 이 주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더 잘 전달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노란 리본이나 팔찌를 차는 게 뭔 의미가 있는 걸까 생각을 했는데, 유가족 어머님께서 그렇게 하나를 더 달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한 번 더 보여주는 게 큰 힘이 된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이게 4.3이랑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서 관객분이 ‘4.3과 관련해 더 나아가서 무엇을 더 해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했는데, 물론 모두가 뭔가 행동을 더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면서 고민을 하겠지만 저는 <다랑쉬 특별전>을 했다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더 알리고, 그렇게 더 알게 되는 것까지가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요.
예슬 : 저는 늘 말하는 거지만, 우리가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되게 잘 알아야지만 말을 꺼낼 수 있다는 부담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그거 자체를 그냥 언급하고 말하는 것 자체도 분명히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번 연극을 통해 답을 찾아서 던져주는 게 아니라 같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냈다고 봐요. 그런 식으로 사회적 비극을 다루면 부담감이나 책임감이 좀 덜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비극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이 기획을 가지고 지원사업 인터뷰를 했는데 면접관이 ‘되게 아픈 가족사 얘기를 하시네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픈 가족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4.3 자체를 다룬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4.3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서 이걸 아픈 가족사라고 생각하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게 아픈 가족사가 되는 순간 진짜로 아파야 할 것 같고 울어야 할 것 같잖아요. 저는 4.3 이야기를 하려고 형식적으로 가족사를 가져온 거지, 가족 이야기를 하려고 4.3을 가져온 게 아니거든요.
주연 : 오히려 저는 비극이라는 단어에 많이 꽂혀 있는 경우였는데(웃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엄청 강해서 이전까지는 집회 시위도 많이 나가면서 그게 내가 행동으로 옮기는 방식이라고 나름의 책임감을 스스로한테 많이 부여했어요. 그래야 해결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런데 이게 쉽게 해결되지 않으니까 비극인 거잖아요? 그래서 무력함, 좌절감도 많이 느꼈는데, 제 직업이 연극이다 보니 작업을 하면서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기록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이 점차 바뀌었어요. 예슬 연출이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쉽게 꺼내고 그것을 언어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저도 제 나름의 방법이 생길 것 같아요.
- 이번 연극을 기반으로 다음 작업으로 확장해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다음 계획이 궁금해요.
희원 : 장면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마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재연을 하게 되면 더 많은 관객이 보러 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제주도가 우리를 원한다면 제주도에 가서 공연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도 있습니다(웃음).
예슬 : 이전에는 독립 출판물(<이상 소견이 있습니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이젠 거꾸로 연극을 독립출판물로 만드는 과정을 겪어보고 싶어요. 형식은 에세이가 될 수도 있고 배우들하고 고민했던 지점들을 리서치 형식으로 써볼 수도 있겠죠? 그리고 희원 님 말처럼 제주도에서 공연하고 싶은데, 어떤 루트를 뚫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주연 : 제주도 공연은 어차피 할 거니까(웃음). 저는 이번 모든 과정을 개인적으로 기록해서 남기고 싶어요. 이번에 좋았던 게 예슬 연출이랑 태도도 다르고 관점이 다양해서 재밌었거든요. 그 부딪힘의 과정을 좀 더 담아내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가서 이번에는 저의 친척들도 만나면 또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