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현익 스튜디오 하프-보틀 디자이너 겸 발행인을 만나다
* <더 넓은 광장을 그리는 사람들> 두 번째 연재입니다. 분량상의 문제로 다듬은 버전은 오마이뉴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31568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할 정도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그만큼 우리를 대변할 누군가를 뽑는다는 건 민주공화국의 아주 핵심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기준으로 누구를 뽑아야 할까? 그리고 그 기준은 무엇을 참고해야 알 수 있을까?
조현익은 자칭 '정치덕후'다.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그의 직업이기도 한 시각디자인이 자리하고 있다. 유권자가 표심을 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시각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던 그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전국투표전도>를 펀딩 플랫폼을 통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마이뉴스와 했던 인터뷰에서 취업을 고민 중이라던 그는 '정기적으로 (투표전도 제작을) 해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여건상 힘들 것 같다'고 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 다섯 번째 투표전도가 탄생했다.
다섯 번째 투표전도가 나오기까지, 다이나믹한 한국정치를 다루는 시각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지난 5월,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작업 중인 조현익 발행인을 만났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유권자의 마음에 주목하는 시각디자이너
▲<2024 전국투표전도>와 <조현익의 액션>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중인 현익씨. ⓒ 김민준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스튜디오 하프-보틀이라는 디자인 스튜디오 겸 독립출판사 운영하는 디자이너이자 발행인인 조현익입니다. 정의당(현 민주노동당)의 대의원이자 마포구 지역위원회의 운영위원이기도 합니다."
- 다섯 번째 전국투표전도(이하 투표전도)를 제작하셨어요. 제일 처음 <전국투표전도 2018 : 나의 선택을 돕는 지방선거 가이드>를 만들었던 때가 기억 나시는지. 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었는지를 떠올려 본다면.
"처음부터 이걸 시리즈로 계속 이어 나갈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마침 당시 선거가 다가오는데, 내가 투표를 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정보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유권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츠가 거의 없으니까 만들면 반응이 좋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그리고 실제로 많은 동네 서점에서 이 책을 입고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는 식으로 큰 호응을 받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유권자들의 수요와 제가 만들고 싶었던 내용이 맞닿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 7년이 지났습니다. 처음 투표전도를 만들었을 당시에 한국 정치가 이렇게 다이내믹해질지는 아무도 몰랐을텐데, 독자들에게 투표전도의 기획 취지가 잘 전달됐다고 느끼시나요?
"그렇죠. 당시에는 지방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지역 이슈나 지역 정보, 주목할 정치인을 알려주는 콘텐츠가 없었기도 했고, 무엇보다 정치적 상황이 보수정당의 약세가 유력한 점도 한몫했어요. 선거 결과가 명백해 보이니 '반드시 누구만은 막아야 한다'는 식으로 선거를 바라보는 게 지금보다 덜했다고 느껴요. 지금 우리가 직면한 선거가 가진 의미나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이슈를 탐구할 여유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20년 총선과 2021년 서울, 부산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바뀌어 가는 걸 느껴요. 그 당시에도 투표전도를 냈는데, 이 책이 누군가를 떨어뜨리거나 누군가를 뽑게 만들려고 유도한다는 지레짐작식 비난이 꽤 많았어요(웃음). 그때 '아, 서울, 부산의 시정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어디에 주목해야 하는지 전달하는 게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시작했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유권자들이 선거를 이런 식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굳이 이 책은 필요가 없겠다 싶었고, 그래서 2022년 대선과 지선에는 내지 않았어요."
- 투표에 대한 정보를 시각적으로 잘 전달하는 콘텐츠인데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고 비난을 한다는 게 이해가 잘 되질 않네요. 뭐라고 지적을 받으신 거예요?
"21년 재보궐 당시에 서울과 부산, 제일 큰 두 도시의 사정을 깊게 다루기에는 제 개인의 역량이 떨어지니까, 그 도시를 잘 아는 정당과 시민단체 활동가를 필진으로 모셨어요. 시민사회와 정당정치의 영역에서 어떤 관점을 중요시해야 하는지 잘 짚어낼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런데 그들의 이력을 문제 삼으면서 '저런 사람은 자기 당, 자기 단체에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라는 식으로 비판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전국 단위 선거의 경우도, 전통적으로 정치 관련 통계를 오랫동안 생산하는 단체들의 자료를 인용해도 시비가 걸려요. '뭐? 참여연대 통계를 인용해?' 이런 식으로요(웃음)."
- 이번 펀딩에는 "당신만의 중심을 잡으면서 표심의 기준을 정하는"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죠. 사실 여러 반응을 겪으면서 나의 콘텐츠가 절대 유권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셨으면서도 나만의 중심과 표심의 기준을 잡는다는 말을 쓴다는 게 인상에 남네요. 과연 그 말을 나조차도 그걸 믿고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 것 같단 말이죠.
"쉽지 않은 일이 맞죠. 2023년 북페어에 나가서 제 책의 독자들을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날 수 있었는데요,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는 '내년 총선 때 투표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데 그래도 새 투표전도가 나오면 읽어는 볼게요'라는 게 있었어요(웃음). 그 말에는 '세상이 이미 망했는데 투표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2024 투표전도를 만들 때 그 마음에 주목해보고 싶었어요. '나는 왜 세상이 망했다고 느끼는가?', '왜 투표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나?'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관점이 바뀌었어요. 그 이유를 과거의 이슈들에서 찾아보면서 앞으로의 표심을 어떻게 정할지 기준을 찾아보자고 대화를 걸어 보는거죠."
- 지난 호는 '눈 떠보니 세상이 망했다'는 것이 컨셉이었고, 그 이후 불법 계엄이 발생해서 더 세상이 망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냉소하기에 좋은 시절인 것 같아요. 냉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냉소에 빠지지 않게끔 돕는 투표전도만의 전략이 있다면.
"사실 저도 지금의 선거 흐름이나 정치판에서 냉소적이긴 한데요(웃음), 역시 '어떤 상황을 마주했길래 우리는 냉소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계엄 당일부터 파면 당일까지 123일 동안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우울하거나 화나거나 기뻐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첫 번째 장이고요, 두 번째 장에서는 2024년 투표전도에서 짚었던 세상이 망했다고 느꼈던 주제 43가지를 다시 올해로 가지고 와서 1년 사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바라보려고 해요.
다음에는 이번 선거에서 이야기해야 할 주제를 제시하면서 '윤석열들'과 '알맹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왔어요. 윤석열 개인이 가지고 있었던 나쁜 속성들이 한국 사회의 다른 부분에서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건데요, 예를 들어 헌법을 자기 유리한대로 해석했던 윤석열처럼 사회의 규칙을 자꾸 침해하는 사안들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전세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이번 대선은 새롭게 알맹이를 채워서 논의할 주제를 추려내자는 거죠."
예측과 전망은 유권자의 몫으로, 나는 그저 큐레이션할 뿐
▲<2025 전국투표전도> 세부 페이지. ⓒ 스튜디오 하프 보틀 제공
- 이번 투표전도는 언제부터 준비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정국이 이렇게 흘러갈 거로 생각하긴 어려웠잖아요.
"계엄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진 못했죠. 다만 저는 12월 3일 당일에 들었던 생각은 '당장 국회로 달려가서 막아야겠어'보다는 '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걸 보면 탄핵이 되겠는데? 그럼 60일 안에 내가 책을 만들어야 하네?'였어요(웃음). 사실 투표전도 시리즈 자체가 단행본을 만드는 입장에선 굉장히 어려운 게, 내용을 쓸 때는 가장 최신의 내용을 반영해야 하는데 이 책이 팔리는 건 선거일까지라는 콘셉트 상의 분명한 제약이 있단 말이에요? 그걸 네 차례 기획을 해보면서 어느 정도 시점을 재는 일에 익숙해진 저에게도 이번 조기 대선은 고민이 많았죠. 기획을 두 번 정도 갈아엎었던 거로 기억해요."
- 어떤 부분이 고민되셨던 걸까요?
"탄핵이 수월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던 부분도 그렇고, 불복할 것 같이 분위기를 띄우다가 파면이 되자마자 다 사라졌잖아요? 소위 '텐션'이 달라지면서 내용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또한, 이 책이 팔릴 수 있는 기간이 실제로는 짧을 것이기 때문에 서점에서도 마케팅을 열심히 해줄 만한 명분이 좀 약하죠. 만약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이해하고 싶고 그의 다음 행보를 생각해보고 싶을 때, 정치 사회 코너에 투표전도와 이재명 관련 책이 있다면, 저라도 후자를 고르겠습니다(웃음)."
- 결국, 다섯 차례의 투표전도 기획 자체는 과거의 결과들을 살펴보고 지금의 선거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이슈를 정리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 같은데, 선거 이후에 대한 전망이나 예측을 잘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두 가지 고민이 있는데요, 일단 예측이 틀리면 어떡하냐는 제 개인적인 고민이 있고요, 두 번째는 그런 예측이 독자 내지는 유권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은 선거 이후에 유권자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요. 이 판이 이렇게 짜여 있으니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굴러갈 것이다, 라고 말하는 건 저의 몫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유권자가 고민할 몫으로 남겨두려고 해요.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건 과거의 사건들을 추려내서 독자들에게 큐레이션하는 일이거든요."
- 현익님이 가장 많이 찾아보는 정치 콘텐츠가 있을까요? 신뢰할만한 정치 콘텐츠는 어떤 기준으로 가려낼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뉴스를 제외하면 챙겨보는 게 사라졌어요. 예전에는 팟캐스트나 라디오를 많이 들었는데, 보통 그런 콘텐츠들이 정치 구도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 따져보고 이번 주에는 이런 일이 있었고 조만간 이렇게 나아갈 것 같다는 내용이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내용이 제 정치적 판단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대표적인 예시로 헌법재판소가 몇 대 몇으로 탄핵을 인용 혹은 기각할 것이다, 라는 예측이 난무했는데 다 틀렸잖아요?
최근의 정치 콘텐츠들이 대체로 전시 작전 계획을 짜듯 특정 상황을 가정하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침처럼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는 분들한테 '정치부 기사를 멀리하고 사회부 기사를 가까이하라'라고 말씀드려요. 여의도 중앙정치에만 주목하면 그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결국에는 여의도 정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입장을 드러내는 시각디자인으로 설득하기
▲<전국투표전도 2025 : 윤석열들은 가라, 알맹이만 남아라> 표지. ⓒ 스튜디오 하프 보틀 제공
- 현재 마포구를 기반으로 하여 진보정당 활동을 하고 계시죠. 마포구라는 지역을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마포는 한국 사회의 집약체 같아요. 과거에 흔히 논의됐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마포를 중심으로 많이 발생했고, 소위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으로 묶이는, 주택 가격이 폭등하니 주목해야 한다는 식으로 논의되는 공간이기도 하죠. 자산을 획득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에 저항하는 모습들이 마포에서 축약적으로 드러난다는 셈이죠. 또, 성소수자, 문화예술인, 여성 커뮤니티처럼 전국에는 퍼져 있는데 실제로는 잘 조직되어 있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이들이 마포에는 많이 모여 있어요."
-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튜디오 하프 보틀'이 있습니다. 단순한 외주 디자인 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입장을 드러내는 그래픽디자인"으로 확장시키고 있는데요, 적극적으로 현실에 개입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다면.
"'특정한 입장을 처음 접한 사람들도 그걸 잘 이해하고 잘 흡수되게끔 설득력이 있게 하는 디자인', 그게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제 디자인의 영역을 정치사회적 이슈에 국한시키고 싶진 않지만 그럼에도 의제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성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정당 활동을 하는 것도 일부러 숨기지 않고요, 차라리 이런 성향을 드러냈을 때 작업을 맡기고 싶어 하는 클라이언트를 더 받아들이자는 게 저의 방식이에요."
- 투표전도뿐만 아니라 <멘탈 응급상자>, <우리 회사 헌법 만들기>,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잠잘 땅이 필요한가> 등의 콘텐츠도 제작하셨어요. 이 프로젝트들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직접적인 정치 콘텐츠 외에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스튜디오 하프 보틀과 클라이언트의 관점을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는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모든 종류의 작업을 저는 환영하고요(웃음). 당장 내 마음이 불안할 때 어떤 식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를 다양한 굿즈로 묶어서 기획했던 게 <멘탈 응급상자>고요, 조직의 규칙을 권리와 의무를 어떻게 정하는지 질문을 쌓아두고 헌법 제정하듯이 만들어 보는 가이드북이 <우리 회사 헌법 만들기> 프로젝트에요.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의 경우 우리가 잠을 잘 때가 제일 취약한 상태가 될 텐데 그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상태인 공간을 스무 가지 형태로 보여주는 작업이었어요."
- '디자이너인데, 정치합니다만?'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인 책 <조현익의 액션>은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책의 편집자분이 속해있는 '출판공동체 편않'과는 과거에 출판사업자들을 육성하는 입주공간이었던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를 없애려는 마포구에 맞서서 함께 투쟁하면서 알게 됐어요. 편집자님이 제가 투쟁 활동과 디자이너 활동을 어떻게 같이 하고 있는지가 궁금하셨나봐요. 그런데 저는 두 개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결합시켜 활동하고 있지는 않아서, 책으로 연결하는 게 꽤 어려웠어요. 그래서 정당활동가로서의 경험과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을 연결시키면서 정당정치와 그래픽 디자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지, 또한 사회는 그래픽 디자인을 바꿀 수 있을지를 질문을 던지고자 했어요."
- 이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던 게 느껴져요. 특히 집중해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
"디자인이건 정당정치건 그 '업계'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결과물 위주로 볼 수밖에 없잖아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는 알기가 어렵다 보니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일하면서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를 중심으로 얘기하면서 외부에서 이렇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관점에서 소상하고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 시각디자이너 입장에서 이번 탄핵 광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순간이 있었나요?
"직접 만들어서 나온 수없이 많은 깃발들이 가장 놀라웠어요. 이른바 '말벌 시민'들이 이 광장에 이런 사람이 있고 그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 깃발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거잖아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표현을 정말 잘 한 디자인이 많았다고 느껴요. 심지어 그분들이 모두 전문 디자이너가 아닐 텐데도 꼭 필요한 부분을 잘 짚은 깃발을 디자인했던 거잖아요. 대표적으로 내향인 깃발이 있어요. '(내향인)'이라고 크게 적어놓고 구석에 '입니다'라고 소심하게 적은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내가 내향인임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디자인적 요소가 미적으로 굉장했다고 생각해요(웃음)"
- 탄핵 이후, 사람들이 관심을 좀 더 가져줬으면 하는 투쟁 현장이 있으신가요.
"광장이라는 공간에 애정이 있으신 분들과는 입장이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사실 광장 그 자체에 주목하기 보다는 광장에서의 요구가 확산되는 방식을 좀 더 관심이 있긴 해요. 제도권 정치나 레거시 미디어라고 불리는 곳들에서 광장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받아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고공농성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기사를 내는 것 역시 그 기자가 언론사 안에서 자기만의 광장을 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의 업계 안에서 투쟁 현장을 주목하는 광장을 열어서 연결시키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으면 해요."
- 디자이너이자 정치덕후이자 활동가인 조현익의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저는 중장기적인 계획 같은 건 잘 없고요(웃음). 시간이 한참 지나서 돌아봤을 때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이 스튜디오 하프-보틀이라는 공간에 모여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적 공동체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자기 만의 광장을 더 많이 열 수 있도록 협업하고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