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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Feb 28. 2022

[아-하 모먼트] 3. 오늘도 한 걸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내가 했던 것들


1화. 40km 자전거 여행


    마음이 답답할 땐 자전거를 탄다. 어릴 때부터 워낙 자전거와 친해왔기에 자전거를 타기로 마음먹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답답했던 집에서 나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을 때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고민과 걱정들이 한달음에 달아난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은 남양주였다. 어릴 땐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왔다는 게 참 싫었는데, 다 크고 나니 주말만큼은 현실에서 동떨어질 수 있어 좋기도 했다. 출퇴근은 지옥이었지만, 자전거를 탈 땐 이만큼 좋은 곳도 없다.


    집 근처에는 구리시 왕숙천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있다. 40분정도만 달리면 바로 서울이다. 처음엔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을 오르는 것도, 긴 길을 달리는 것도 버거웠지만 어느 날은 엄마와, 어느 날은 동생과 함께 달리다보니 그것도 금세 익숙해졌다. 엄마와는 평소보다 천천히, 동생이랑 갈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가곤 한다. 혼자 달릴 때면 어디에서 쉬어갈지, 어디까지 달려갈지 모든 것이 다 내 마음대로라 그마저도 힐링의 순간이 된다. 아 시원해!


    가끔은 서울 반대편으로 달려 팔당댐까지 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꼭 팔당 스타벅스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는데, 집에서 하릴없는 백수처럼 늘어져 있다가 시원한 커피가 몸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부지런한 갓생러마냥 뿌듯함이 몰려온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 주말이면 자전거에 올랐고 그때마다 아무 생각없이 멍 때릴 수 있어 행복했다. 패달을 밟는 나, 빠르게 발을 굴리는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서울로 이사 온 지금은 자전거를 한 번 타러 나가기도 어려워졌다. 자전거 도로와 언제든지 빌릴 수 있는 따릉이가 있지만, 탁 트인 풍경과 익숙한 내 자전거를 대신할 만한 것이 없어 더욱 그렇다. 이럴 때면 서울에 사는게 썩 좋지만도 않다.


 2화. 한줄기 빛, 요가


    때는 2019년, 한창 회사 때문에 힘이 들었다. 매일같이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회사에 갈 채비를 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밤 8시. 일이 많던 시즌에는 새벽 2~3시를 넘어 겨우 퇴근할 때도 있었다. 그건 퇴근도 아니고 그냥 집가서 세수하고 옷만 갈아입고 오는 개념이다. 일주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나 정신이 없었을까?


    그즈음 난 회사 가는 게 정말 싫었다. 맘 같아선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었던 사회 초년생은 당장 그만두는 방법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당장의 탈출구가 필요했다. 머릿속에 너무나 생각이 많아서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와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삭히고 덜어내고 싶었다. 그러다 회사 앞 요가원을 발견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던 요가원은 빠르게 퇴근하고 7시 수업을 듣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체험 수업부터 받아볼 수 있나요?"

    처음 갔던 요가원은, 말 그대로 평화로웠다. 나는 지금 막 전쟁통에서 탈출했는데 요가원 사람들은 고요한 하루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초원의 초식동물들 같았달까. 수업을 받는 한 시간 반 동안은 핸드폰과도 멀어져 온전히 요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한 동작, 한 동작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90분이 훌쩍이다. 나는 퇴근 후에 오는 업무 연락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는데, 억지로나마 떨어져 있던 덕에 '퇴근 후 연락' 스트레스에서 조금씩 멀어질 수 있었다. 김하나 작가의 '힘 빼기의 기술'이란 책을 참 좋아하는데, 무언가 잘하기 위해서는 힘을 빼고 한 걸음 물러서 호흡부터 가다듬어 보라는 그 책의 교훈을 요가를 통해 실천해 볼 수 있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즐거운 내일을 위해 오늘 업무는 여기서 끝! 뭐 그런 마음으로다가.


    이후 정말로 퇴사를 해버리기까지 1년 남짓을 요가와 함께했다. 만약 요가가 없었다면 난 1년도 채 버티지 못했을 거다. 마음이 혼란한 날에는 동네의 요가원을 찾아보시라. 혼란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3화. 무작정 걸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요즘에도 마음이 답답할 땐 무작정 걷는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한번 쭉 걸어보는 것이다. 무작정 걷는 것만큼 멍하니 내려놓을 수 있는 일도 없다. 그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걷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지도에 점찍어두고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걸어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흐르는 땀과 더위에도 불구하고 정해둔 코스를 '완주'하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건강한 다리와 눈을 가졌음에 감사해야할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세 시간을 걷고 나서 기껏 한다는 것은 집에서 1~2시간 떨어진 카페에 가서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오는 것이 전부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완주한 이 길이 하루의 유일한 성취가 되는 날이면, 오늘도 걷기를 참 잘 했단 생각이 든다.

    
     나는 걷는 게 좋다. 길을 걷다보면 모르는 세상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친다. 아침 일찍 일어나 10km 남짓을 조깅하는 부지런한 사람, 새벽부터 출근하는 직장인들, 어슬렁 어슬렁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 사람들, 멋진 옷을 차려입고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버스 정류장을 서성이며 목적지를 짚어보는 사람들까지. 길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는 세상이 너무나 넓게 느껴져 나 따위는 길가에 치이는 돌덩이 마냥 사소하고 보잘 것 없이 생각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머릿속을 꽉 채우던 그 어떤 고민까지도 함께 사소해진다. 언제 그게 고민이었냐는 듯, 심플 이즈 더 베스트. 그냥 그러고 말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을 헤집던 고민들의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때가 많다. 지구의 종말이나 앞으로 내 인생에 닥칠 엄청난 시련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고민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고, 없어지고, 방향이 바뀌고, 또는 나의 생각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해결되기도 한다. 그러니 고민이 많다면 일단 무작정 걸어보자. 한 템포 물러나보면 대부분의 고민은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증발될 것이다.

    

4화. 필라테스를 추천합니다.


    건강을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는 날씬하고 예쁜 사람만 하는 운동이란 편견이 있어서 선뜻 시작하지 못했었는데, 갈수록 허약해지는 코어가 걱정되어 용기를 내 보았다. 요가도 했는데, 필라테스도 당연히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자신감.

   

    필라테스 학원의 첫 인상은 정겨웠다. 1대 1 수업은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4대 1 수업을 선택해 받았었는데, 수업을 함께 듣는 사람들과 필라테스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왜인지 정겨웠다.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필라테스 수업을 들을 때 만큼은 우리 모두 ‘아, 선생님 힘들어요'를 달고 사는 필린이일뿐이다.


    첫 수업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무자비한 동작들을 제법 잘 따라할 수 있었고, 어깨며 허리가 조금씩 덜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코어에 힘이 벌써 붙은건지 묘한 자신감도 생기고 말이다. (당연히 아니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못해도 세번은 필라테스 수업에 갔다. 잘 한다는 생각이 드니 재미있었고, ‘퇴근하면 필라테스'란 새로운 루틴이 자리잡자 제 시간에 퇴근해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잘하든 못하든 할 수 있는 것이 생긴 것이다.


    결론은, 필라테스도 '일단 해보자'의 연장선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주말에도 필라테스 수업에 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곤 하니 말이다. 내가 다니던 필라테스는 미리 수업을 예약해두고 하루 전날까지만 취소가 가능했는데, (그 이후에 안가면 바로 결석처리된다.) 운동이라는 것은 보통 가기 직전에 가기 싫어지는 게 국룰 아니던가. 야속한 수업 취소 방식 덕분에 아무리 가기 싫어도 '돈이 아까워 간다!' 마인드로 억지로 몸을 일으킨 적도 많다. 그래도 수업에 다녀오고 나서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오늘도 오길 잘 했다는 생각 덕분에 필라테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더해졌던 것 같다. 일단 해보는게 어렵다면 약간의 강제성을 더해 '억지로 하게끔' 만드는 것도 꾸준함의 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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