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사원 Feb 06. 2022

[아-하 모먼트] 2. 비움의 미학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내가 했던 것들


    1. 중고책 판매하기


    나는 실평수 10평 오피스텔 자취인이다. 침대 한 개에 붙박이 옷장과 옷걸이, 그리고 부엌까지 몇 가지 살림살이만으로도 방이 가득 찬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 내 방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에서 혼자 살기란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다. 작년엔 책을 사며 스트레스를 풀었더니 쓰지도 않는 책상 위에 책이 한가득 쌓였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서 아예 읽지 않을 책, 다 읽었으나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책은 중고 서점에 판매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여섯 권을 챙기고 나니 장바구니가 무겁다.


    집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도착했다. 점원은 익숙한 듯 중고 책들의 값을 매긴다. 다행히 집에서만 읽은 덕에 대부분의 책이 최상 등급을 받아 가장 높은 매입가를 책정받았다. 뭐 잘한 것도 아닌데 괜스레 뿌듯했다. 책 몇 권을 팔고 나니 현금 이만여 원이 주어진다. 잘 읽은 (그리고 안 읽을) 책을 팔았을 뿐인데 대가 없이 받은 보너스 같았다!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분기에 한 번 책상 위가 더러워진다 싶으면 나는 읽은 책들을 모아 중고 서점으로 향한다. 몇몇 책은 판매가 불가한 것도 있고, 이미 재고가 너무 많거나 재판매 가능성이 낮은 책은 최상 품질이더라도 균일가로만 판매할 수 있다. 그러니 방문 전에 웹사이트에 들러 중고 판매 가격을 검색 후 가는 것을 추천한다. 어쨌든 균일가로 판매하더라도 최대 2천 원의 수익을 낼 수 있으니, 그냥 버리거나 방치하는 것보단 이득인 셈! 어지러운 책상과 마음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비움이다.


2. 옷 기부하기

    
     얼마 전 처음으로 옷을 기부했다. 나는 작은 집 자취인이라 조금이라도 공간이 차면 금세 답답해진다. (그러고 보니 모든 비움이 작은 자취방에서 시작되는 느낌이다.) 올 겨울엔 두꺼운 겨울 외투들을 걸어놓으려 새로 행거를 구입했는데, 겨울 외투를 깨끗하게 보관하는 동시에 집안이 한껏 답답해지게 되었다. 또르륵. 조금이라도 답답함을 덜고자 한 계절 동안 한 번도 안 입은 옷가지를 추려보니 양이 꽤 많았다. 이걸 그냥 헌 옷 수거함에 놓긴 또 아쉬워서 옷 기부에 대해 검색해보니, 이미 많은 분들이 옷 기부를 통해 비움의 미덕을 실천하고 계셨다. 유레카!


    안 입는 옷, 한 번 신었던 신발, 안 쓴 공책, 다이어리, 그리고 인형까지 삼삼오오 모아보니, 우체국 박스 5호 기준으로 세 박스나 채우게 되었다. 이 많은 것들이 우리 집에 숨어 있었다니? 그리고 약 2주 뒤, 기부 단체에서 내가 보낸 옷들의 판매가로 기부 금액을 책정해 주셨다. 무려 십만 원이나,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가 또 생겼다. 이렇게 받은 기부 영수증을 연말 정산에 제출하면 소득 공제도 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옷을 된통 기부하고 난 뒤로는 무언가 사기 전에 한 번, 두 번 더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지, 진짜 입으려고 사는 건지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니 기분에 따라 결제했던 시발 소비가 많이 줄었다. 벌이는 늘어날지언정 소비까지 따라 늘지는 말자며 절제하는 습관을 길러보는 요즘이다.


3. 혹시, 당근이세요?


    첫 당근을 했다. 집에 있던 무드등을 만원에 내놓았는데 어떤 분께서 구매하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동네에 있는 뫄뫄 초등학교 앞에서 만나요. 하고선 시간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구매자는 약속된 시간을 조금 넘겨 등장했는데, 구매자가 오지 않던 그 몇 분 동안 얼마나 뻘쭘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 앞에서 밤 9시에 혼자 서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저 멀리서 어떤 학생이 뛰어와서는 '당근이시죠?' 하고 물었다. 나는 '아 네네' 하고 대답했고, 학생은 익숙한 듯 나의 핸드폰 번호를 묻더니 카카오 뱅크로 만원을 송금해주었다. 나는 현금으로 만원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인지 살짝 놀랐다.


    그날 이후로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당근 마켓에 한 번 검색해본다. 명품백부터 아버지가 농사 지으셨다는 고구마까지 생각지도 못하게 다양한 것들이 당근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가끔 매너 온도 99도인 슈퍼 당근러를 보게 되는데, 마치 작은 가게의 사장님인 것 마냥 체계적으로 관리된 그들의 피드를 보자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귀찮을 법도 한데 어쩜 이렇게 당근에 진심이신지! 학생들을 상대로 사기나 치는 이상한 사람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좋은 사람들도 많음을 당근을 통해 느낀다. 어쩌면 가장 빠른 비움을 실천할 수 있는 플랫폼 당근에서 비움의 미학을 배워본다. 모두들 당근하세요! (광고아님)




매거진의 이전글 [아-하 모먼트] 1. 게으른 완벽주의를 응원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