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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 가난뱅이 Mar 13. 2020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

레이는 이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걸 확실히 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들이 있다. 잠자는 곳, 휴식을 취하는 곳, 더울 때 가는 곳, 구경하는 곳, 햇빛을 덮고 자는 곳 등이 정해져 있다. 이런 기분일 때, 저런 기분일 때 가는 곳들이 모두 다르다.  

레이는 우리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안다. 눈 앞에서 손으로 눈을 건드려도 움츠러들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갈 때는 두려워서가 아니라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고 싶어서이다. 귀 안쪽을 소독해도, 얼굴을 닦아도, *고를 닦아도, 약을 발라도 가만히 있는다. 다만 자기가 나 잡아봐라를 하고 싶어 뛰어다닐 뿐이다. 뛰어다니다가 내가 안 잡고 가만히 있으면 또 금방 나에게 온다.

레이는 자기가 말하면 그가 놀아준다는 걸 확실히 안다. 얼마나 당당한 표정으로 놀자고 말하는지 놀라울 정도다. 눈 앞에서 빤히 그만을 바라보며 말을 한다. 자주 그가 레이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얼굴을 돌리면 레이가 다시 자리를 옮겨 눈 앞에서 소리 지른다. 그래도 안되면 그의 옆에 올라와 두 발을 올리고 그만을 바라보며 소리친다.

레이는 우리 둘 사이에서 잘 때 가장 편안하게 이완하며 잔다. 팔다리를 쭉 뻗고, 배를 보이고, 나를 꼭 안고, 무아지경으로 잔다.

레이는 우리 셋이 같이 잔다는 걸 안다. 언제나 함께 잔다. 그에게 기대든, 나에게 기대든, 그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든,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든, 우리와 함께 잔다.

레이는 늘 쥐돌이를 잡는데 쥐돌이가 우리 손이라는 걸 안다. 사냥 놀이를 엄청 좋아하는데 늘 쥐돌이는 솜방망이 손으로 살짝만 건드린다. 그리고 그 별 볼 일 없는 쥐돌이를 잡으러 언제나 와준다.

레이는 우리가 저녁밥을 다 먹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는 방해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놀거나 자다가도 우리가 다 먹으면 딱 그 순간 우리에게 온다. 언제나 정확하다. 요즘은 레이의 말을 거의 다 이해하므로 레이가 말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레이 어릴 땐 이런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하지만 밥을 다 먹은 걸 어떻게 아는지는 정말 물어보고 싶다. 여러 가지 가설이 있었고, 변인통제해가며 실험을 해봐도 레이는 어김없이 밥을 다 먹기만 하면 온다.

밥 먹기를 방해 안 하고 기다려 준 후 이제 놀자고 한다. 우리는 밥 해 먹고 치우고 좀 쉬고 싶지만 레이는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이제 놀자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랑 같이 놀 거라는 걸 확신한다.

아주 작은 레이가 와서 우리가 레이의 모든 것이 된 후 나는 두렵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한정 좋기도 하다.  

조건 없이 사랑을 준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작고 약한 존재에게 전부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 손을 꼭 안고 자는 아기 레이. 한참을 이러고 자서 내 주먹은 땀 투성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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