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보여주는 <위로의 그림책>
<위로의 그림책>, 조카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고르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입니다.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에요. 제목에서 보듯 노골적으로 ‘위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 사실 그다지 저의 흥미를 돋우진 않았어요. 잠깐 살펴볼까 싶어 무심히 책장을 넘겼는데 어느새 마지막 장에 이르렀어요. 여백이 많은 그림도 인상적이었지만, 짧은 글귀 안에 뭔가 가슴을 두드리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구절을 소개해 볼게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인생은
단거리도
장거리도
마라톤도 아닌
산책이란 걸
(20쪽)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하잖아요. 끝을 알 수 없는 장기 레이스. 오늘을 견뎌야 내일로 나아갈 수 있는, 계속되는 질주인 거죠. 그런데 누구나 다 끈기 있게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릴 수는 없잖아요. 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숨이 차 중간에 멈춰 서기도 하고, 달려온 이 길에 확신이 서지 않아 다른 길을 갈까 두리번거리기도 하죠. 그런데 자꾸만 저만치 앞서 달리는 사람이 신경 쓰여요. 나의 속도가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싶고, 좀 더 빨리 달려야 그나마 앞선 사람을 따라 잡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달려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라요. ‘내가 뭣 하러 이렇게 기를 쓰고 달리고 있지?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한가?’ 애초에 우리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말한 건 누구일까요? 쉼 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계속해서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안 되는 것도 되게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 건 누구일까요? 결국 그 또한 우리와 같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아침에 간혹 산책삼아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가는데요. 이른 아침,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서서히 몸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어요. 몽롱했던 머리도 맑아지고, 선선한 바람에 한껏 기분이 좋아지죠. 하루 중에 가장 뿌듯한 시간이에요.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할 수 있거든요. 은은하게 퍼지는 풀과 나무 냄새를 맡으며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내일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이 순간에 존재하는 거예요. 글쓴이가 ‘인생’을 ‘산책’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마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요?
저에게 이 그림책은 단순히 삶에 대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주었어요.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뭔가 새로운 의미를 던져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인상적인 구절 몇 개 덧붙일게요.
그에 대한 판단은
그의 외모나 말투보다
그가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다 (18쪽)
지나간 사랑에 대한 집착은
지나간 풍경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 (25쪽)
즐겁지 않은 일을 계속 하는 것은
잘못 들어선 도로를 계속 달리는 것과 같다 (37쪽)
패션의 완성은
손에 책 (92쪽)
두 번째의 성장은
남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때
시작되는 것 (137쪽)
*책 정보 - <위로의 그림책> (박재규 글, 조성민 그림/ 지콜론북/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