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사회적 차별을 성찰하게 하는 김민아의 <아픈 몸 더 아픈 차별>
"차이가 없으면 소통의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말’과 ‘행위’도 필요 없게 된다. 만일 우리 모두가 똑같다면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차이’가 없다면 결국 인간의 복수성(復水性)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개념이 될 것이다. 흔히 불편하게 생각하는 서로의 ‘차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 한나 아렌트
‘차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차이’란 ‘서로 같지 않고 다름’을 말한다. 인간에겐 저마다 고유한 맥락이라는 게 있어 설령 쌍둥이로 태어났다 할지라도 겉모습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성향과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 그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차이를 두고 차별하는 경우가 있다. 장애를 가졌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혹은 나이든 노인들과 동성애자들에게 말이다. 이들을 흔히 ‘사회적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라고 명명한다. ‘소수’와 ‘약자’라는 용어 안에 이미 차별적인 인식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에서 우리의 몸은 질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질병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 언제든 우리 몸은 질병이 발현되어 아플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자만한 나머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노화나 죽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성장이 끝난 후엔 매순간 노화가 진행되고, 또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순리(順理)인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늙고, 질병이 있고,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차별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일까? 마치 우리는 그들과 전혀 다르다는 듯이 말이다.
타인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편견과 폭력성
이 책 <아픈 몸 더 아픈 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 바이러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한민국에서 질병과 장애는 어떻게 죄가 되는가’라는 책의 부제를 통해 질병과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물론 사회적 책임과 복지 의무를 등한시한 국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담겨 있다. 저자가 책을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와 질병과 장애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뚱뚱한 사람을 보면 혹시 그 사람의 건강이 염려되거나 걱정스러울까? 아니면 너무 많이 먹어서 뚱뚱해진 거라며 아마도 게으를 거라는 편견과 다이어트가 시급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을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저자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에서 아이들이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간주한 경험을 예로 든다. 선생님이 날씬하고 예쁜 아이들을 좋아하니 아이들도 날씬하고 예쁜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뚱뚱한 사람은 ‘무능하고, 둔하고, 혐오스러운’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몸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수된 예이다.
책에 소개된 전자기기 부품 생산업체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던 경호 씨(가명, 남)의 사례도 다르지 않다. 경호 씨는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이유는 회사가 경호 씨에게 과도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키 173㎝, 몸무게 100㎏인 경호 씨와 과체중인 직원들을 관리 대상자로 삼아 체중 감량을 요구하며, 미달성시엔 사직서를 준비하라고 채근했다. 과체중인 직원들은 의지가 약한 것이라고 단정 짓고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이들의 몸을 관리하려 든 것이다. 명백한 인권침해였다. 타인의 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깃든 편견과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떨까? 지난 7월 17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출현한 강원래는 어린 아들을 번쩍 들어 안아줄 수도 없고, 예기치 않은 위험한 상황에서 빨리 대처할 수도 없는 불편한 몸이지만, 아빠도 뭔가 멋진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찍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찍는 영화에 직접 출연하고 길을 지나다 만난 팬들에게 출연을 부탁하기도 하는 그의 모습은 열정적이고 자신에 차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안쓰럽게 혹은 불쌍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견디기 어렵다고 말이다.
장애인에게 힘든 건 신체적⋅정신적 장애 그 자체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 같은 차별적인 시선이 아닐까? 오카자키 아이코의 <캐치- 그래, 살았으니까 다시 살아야지>에서 저자인 오카자키는 열차 사고로 척추가 손상되어 목 아래의 신체가 마비되는 장애를 입었다. 그런 그녀에게 직장 상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시력이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듯이 오카자키 씨의 장애도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굴레
지난 8월 25일, 육군 3사관학교의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여학생들에게 과거 산부인과 수술 기록을 제출하라는 것이 과도한 인권침해의 논란이 있다는 YTN 보도가 있었다. ([단독] 女 사관 생도 선발에 산부인과 수술 기록 요구 YTN | 강정규 | 입력 2016.08.25. 16:40) 일반 질병이나 수술기록도 아니고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산부인과 수술 기록을 요구한 것에 대해 성차별적이며, 과도한 개인 정보 요구라는 것이었다. 수술 기록을 제출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된다는 것과 육군 규정에는 산부인과 수술 기록을 제출하라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취재 이후 군 당국은 내년부터 수술 기록을 받지 않겠다고 했으나 뭔가 석연치가 않다. 내년부터 받지 않겠다고 한 수술 기록을 왜 지금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해 온 걸까? 더구나 채용시 신체검사 결과나 과거 수술 기록을 제출하게 하는 것이 합격을 시키기 위함인지 떨어뜨리기 위함인지 의문이 든다. 혹시 병력이 있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한 차별적 행위는 아닐까?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외국의 입법례를 더 살펴보면, 병력이나 장애를 확인하려고 실시하는 사전 의학검사나 질문지 조사는 차별이라 여겨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지원자의 직무 수행능력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면 업무상 필요성이 없는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신체검사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신체의 능력을 판단하고, 지원자가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직무적합성)를 평가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본인과 동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만 검사하면 됩니다. - 본문 119쪽
물론 현재 건강 상태가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차별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완치되었는데도 과거에 질병을 앓았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권을 제한당한다면, ‘현재의 질병으로 인해 근로하기 어렵거나 타인에게 전염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로만 한정하고 있는 법률상의 취업 제한 요건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현재 질병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적절한 치료를 통해 잘 관리하고 있고 질병의 속성상 신체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역시 제한할 이유가 없습니다. - 119-120쪽
직무 수행능력 평가 이외의 목적으로 행해지는 의학검사는 명백한 차별이며, 과거 질병 경력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하거나 근로를 제한하는 것은 위법한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간 질환자나 HIV바이러스 보유자들은 채용 신체검사를 통과하기가 어렵다. 엄마를 통해 수직감염된 은미 씨(가명, 20세)는 신체검사를 통해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판정을 받고 입사가 취소됐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으나 B형간염 바이러스나 HIV바이러스는 일상생활에서 접촉만으로 감염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성접촉이나 수혈을 통해 감염되거나 산모를 통해 태아에게 수직감염되므로 사회생활에는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부친의 조현병 병력이 문제가 되어 공군의 학사 조종 장학생 선발에서 불합격한 사례도 있었다. 지원자의 병력이 아닌 가족력조차 채용시 차별의 근거가 된 것이다. 향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배제시키는 행위가 과연 정당한 걸까? 병력을 근거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차별은 엄연한 사회적 낙인이다. 채용시 이루어지는 신체검사가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작동한다면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떨까? 동성애자들만 걸리는 질병이라는 편견이 에이즈 환자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동성애자들에 의해 처음 보고 되어 에이즈는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질병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이성애자도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라고 한다. 보통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를 구분하지 않고 에이즈 환자로 통칭하지만 저자는 에이즈 환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HIV 감염인은 ‘HIV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체내에 HIV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에이즈 환자는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HIV 감염인 중 질병이 진행되는 가운데 면역결핍이 심해져 기회감염 혹은 합병증이 생긴 상태’를 일컫는다. 엄밀히 말해 에이즈는 질병 자체를 의미하는 게 아닌 것이다.
우리가 이처럼 에이즈에 대해 무지한 이유는 국가가 질병을 다루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HIV 감염인과 에이즈 환자가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와 달리 우리나라는 그 수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가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만 구축했을 뿐 환자에 대한 질병 교육과 생활 지원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탓이라는 거다. 국가가 나서서 질병을 확인하고 낙인을 찍는 게 전부였던 셈이다. 그러니 질병을 가진 개인은 사회에 방치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에이즈 환자 발병률이 높았던 태국이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통한 지속적인 노력으로 발병률을 줄여온 반면, 우리나라는 예방사업에만 힘을 쏟고 보여 주기식 홍보에 치중했을 뿐 정작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환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10년 전과 다름이 없고, 환자의 치료 지원체계 역시 미흡한 상황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도 안전하게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검사를 익명으로 실시’하고, 예방도 중요하지만 ‘현재 투병 중인 이들에 대한 상담과 노후까지의 전반적인 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 이상 아픈 환자를 질병으로 낙인찍고 방치하거나 고립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감염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뿐만 아니라 환자가 질병을 관리하고 치료하며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절실해 보인다.
인권 정신에 따르면, ‘누구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앞서 한나 아렌트는 ‘차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라고 했다. 차이를 차별이 아닌, 차이 그 자체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장애와 질병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아니라 편견과 차별이 배제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외바퀴/ 휠체어 탄 사람이 주차되어 있다// 그 위로/ 장애인 스티커 붙인 차가 진입한다// 사각 보호선에 갇혀 비명도 없이 차에 깔리는 휠체어 타고 있는 사람// 멈춘 차에서 휠체어가 먼저 내리고/ 운전자의 상체가 휠체어로 떨어진다// 섬뜩하지 않았을까,/ 마치 자신을 치는 것 같아/ 일반인들에게는 보호를 받으나/ 장애인들 차에 반복하여 깔리는 휠체어 탄 사람// 장애를 각인시켜 주자는 것인가/ 국제적으로도 통한다는 저 잔인한 상징은 - 함빈복, <외바퀴 휠체어>
* 책 정보 - <아픈 몸 더 아픈 차별>(김민아 지음/ 뜨인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