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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마 Oct 09. 2019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나의 속사정

아래 글은 유기농 생리대 판매 업체인 '해피문데이'에서 진행한 독자 기고 이벤트에 '질염'을 주제로 기고한 글로 2019년 2월 작성하였습니다. 

해피문데이 홈페이지에 가면 제 글 외에 다른 분들의 기고문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나의 속사정

by 강마

내가 ‘질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건 23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였다. 겁에 질려있는 나에게 의사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로 ‘질염’과의 사투를 예고했다. '스물셋'에 처음 산부인과를 찾았을 만큼 그때의 나는 내 몸에 참 무지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당당하게 들락거리는 곳이지만 여전히 산부인과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다. 감기처럼 쉽게, 자주 걸리는 게 질염이라지만 ‘나 질염 걸렸어!’라고 주위에 내 속 사정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불쾌한 손님이다. 사람들은 감기보다 ‘질염’이란 단어에 불순한 생각들을 많이 섞는 것 같다. 


 질염에 걸리면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얼른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해야 하지만 겁부터 나는 게 사실이다. 감기처럼 진료받고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며칠 고생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불미스러운(?) 원인을 의심해 '균 검사’를 하고 거기에 이것저것 어렵고 걱정스러운 용어들이 더해 다른 검사들까지 권유받는다. 자궁경부암, 초음파 검사 등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자면 ‘그래도 전 검사가 필요 없습니다!’고 외칠 사람 많지 않을 것이다. 부담스러운 검사비에 잠시 망설이다가도 곧 ‘나에게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검사에 응하게 되는 것이다. 항상 ‘이상이 없다’는 반가운 답변으로 돌아오지만 10만 원이 넘는 검사료에 항상 찝찝함이 뒤따른다. 지갑은 가벼워졌어도 몸에 문제가 없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지 싶어 마음을 달래본다. 


하지만 마인트 컨트롤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질염을 확진 받으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굴욕 의자에 무방비로 누워있는 나에게 갑자기 질정이 들이닥칠 때 그 기분이 절정에 달한다. 놀란 마음 다독이며 속옷도 입지 않고 앞뒤가 뻥 뚫린 보자기만 허리에 두른 채 의자에서 내려오면 간호사가 무심히 건네주는 일회용 팬티라이너를 받아들고 와르르 무너진다.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드러온 아이가 며칠간 쏳아져 내릴(?) 흰색의 약들을 또 참아내야 하다니... 커튼으로 가려진 한쪽 구석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며 애써 밝은 얼굴을 찾아야 한다.


 굴욕을 견디며 치료를 받으면서도 참 답답한 건 정확한 발병 원인도, 예방책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질염의 원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아무리 조심해도 청결, 면역, 균 발렌스, 컨디션 중 하나라도 놓치면 금방 다시 찾아오니, 도대체 이 친구를 피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기는 한지 궁금하다. 하다못해 나의 자유분방한 Y존의 털들조차 그 원인이 될 수 있다니… 이제는 공중 화장실에 걸려있는 휴지를 쓸 때조차 ‘혹시나’하는 걱정이 앞서곤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어렵고 번거로운 일 투성이니 이제는 질염이 찾아와도 '잘 쉬고, 잘 관리하면 다시 낮겠지..’ 싶은 생각에 병원을 가는 것을 망설이곤 한다. 요즘 주위에 과잉진료 없이 믿고 다닐만한 산부인과를 찾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1시간 이상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설명도 없이 쥐여주는 항생제를 삼킬 때면 자괴감마저 든다. 정말 감기처럼 마스크를 쓰고 찜질을 해주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면 피해 갈 수 있는 확실한 예방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년간의 질염 극복을 위한 노력으로 예전보다 발병 횟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유산균도 빠짐없이 챙겨 먹는 일, 적당한 기간을 두고, 안전한 성분을 꼼꼼히 확인한 청결제로 잘 관리해주는 일, 성관계 전 상대방의 청결을 체크하는 일까지. 차마 Y존 왁싱까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의 질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다. 참으로 피곤하지만 그보다 더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언젠가 찾아올 이너피스를 위해 오늘도 나는 유산균 한 봉지를 입속에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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