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챗 후기
커피챗 가입 n달 만에 처음 해봤다! 프로필 써도 아무도 신청을 안하길래 홍보 겸 브런치 글도 옮겨보고 그래서 인기 노트(커피챗에 '노트'라는 걸 쓰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인기 노트'로 조명되는 듯)에도 올라갔었는데! 여전히 신청자가 없었다.
그렇게 커피챗의 존재를 잊고 살던 중에 신청 알림이 왔다. 첫 이직을 준비하시는 시니어분이었는데, 막상 신청받으니 과연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가 한참 고민되더라. 그리고 익명이 아닌 게 갑자기 마음에 걸렸다. 원래 커피챗은 서로를 알 수 없는 익명 서비스인데 왜 익명이 아니게 됐냐면! 처음에 별생각 없이 닉네임을 캐씨(cassie)로 하고 늘 쓰는 프로필 사진도 등록했기 때문이다.. 브런치 페북 링크드인 슬랙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닉네임과 사진을. 어차피 회사 이름이랑 직무 공개하면 다 알 것 같아서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익명이고 나는 너무나 익명이 아닌 1:1 대화는 예상 외로 망설여졌다. ^_ㅠ
망설임 끝에 호기심90 자신감10의 마음으로 수락했고 30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대답해 드렸다. 다행히 도움이 됐다는 후기를 남겨주셨고, 심지어 한 번 더 신청해주셨는데 그때 일이 너무 정신없었어서 24시간의 수락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흑흑. 좋은 결과 있으셨기를(기도 이모지)(브런치 이모지 입력 좀 되게 해주세요,,)
아무튼 이 글은 나의 첫 번째 커피챗 후기이자 이직을 처음 시도하는 경력직 분들이 보면 어느 정도 참고할만한 내용쯤 되겠다.
직종 특성상 주니어 때부터 거의 3년 단위로 회사를 옮겨 그런지 이제 이직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처음 이직하던 때의 마음도 가물가물. 이번 커피챗을 하면서 이직을 처음 시도할 때의 궁금증과 고민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 '이직은 뭘까요'라는 느낌의 질문을 받고(기억에 의존하고 있어 질문 워딩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약간 당황하다 바로 떠올린 건 취업은 운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정말 그냥 운이 좋으면 붙고 안 좋으면 떨어진다는 뜻인가 했었는데, 채용도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취업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는 의미구나 싶다. 채용하는 사람 앞에 조건이 비슷한 두 지원자가 있다면 결국 조금이라도 더 결이 맞아 보이는 사람을 뽑게 되니까. 결이라는 건 기업 문화가 될 수도 있고, 팀의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의 성향이 될 수도 있다. 경력직을 채용할 때는 이 고민이 더 까다롭고 깊어진다. 지원자가 이직할 기업을 찾을 때 고려할 조건이 늘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면에서 첫 취업보다 이직이 더 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티오가 더 한정적이기도 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인연이 아니었구나' 생각하고 넘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많을수록 뭐부터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말할 게 많은 경력직이 기존에 일하던 분야와 약간 다른 분야로 이직하려고 한다면 공통으로 적용되는 경험, 특히 JD에서 요구하는 직무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어필하는 게 좋겠다.
예를 들어 A라는 업종의 마케팅 리더가 A1업종의 마케팅 리더 자리에 지원한다면 팀을 어떤 식으로 매니징했는지, 타 부서와의 협업은 어떻게 해왔는지, 그 경험들이 여기서 앞으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먼저 설명하는 식이다. A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A와 A1의 연관성은 얼마나 있는지도 같이 얘기해주고. 'JD에 쓰인 그 일들 내가 지금 바로 투입돼 할 수 있다, 너희 회사가 찾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생각하면서 내용을 구성하면 되겠다.
업직종은 비슷한데 분위기가 다른 회사로 이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가거나, 에이전시에서 인하우스로 가거나. 각각의 기업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는 기회가 된다면(...) 써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그렇게 옮기기로 마음먹었다면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을 써보겠다.
옮겨 가려는 기업의 업무 환경이나 분위기가 지금 회사와 대충 봐도 달라 보인다면 자세히 알아보자. 뭐가 어떻게 다른지 본인이 먼저 알아야 한다. 막연히 '수평적인 분위기겠지', '일이 덜 많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이직하자마자 퇴사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인맥을 동원하든 커피챗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든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서 본인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업무 내용이 잘 변하지 않고 큰 틀이 짜여 있는 곳에서만 일했다면 업무 내용이 빠르게 변하고 늘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하는 곳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일정 연차나 직급이 되면 실무와 자연스레 멀어지는 곳에서 일했다면 실무와 매니징을 모두 해내야 하는 곳이 힘들 수 있다. 팀장이 되어도 실무를 계속해야 하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 일단 내가 다녔던 회사는 다 그랬다.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조직들의 특성인가 싶다. 실무와 플래닝, 매니징의 경계가 없어 일을 어떻게 계획하고 나눠주고 실행할지 잘 짜야 한다.
충분히 알아보고도 도전해보고 싶다면 달라질 환경에 어떤 식으로 적응할지 계획을 그려두자. 면접에서도 이 질문을 받게 될 테니 계획을 잘 이해시키고 설득할 말도 생각해두고.
커피챗을 해보니 30분이 생각보다 금방 끝나버리더라. 커피챗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대화창이 사라져 대화를 이어갈 수 없게 되니, 신청할 때 질문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면 대답하는 사람도 그에 맞는 답변을 생각하고 대화를 시작해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팅 전에 아젠다 미리 공유하고 서로 생각해서 만나야 회의가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거랑 비슷하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하는' 우리에게 좋은 회사와 좋은 동료를 만나는 행운이 있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