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6주기
나는 아직도 잊히는 게 두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것, 한 때는 소중했던 것들을 망각해 둔해지는 것, 자연스레 소멸돼버리고 마는 것.
나는 한 때 이 모든 것을 부정했다. 인정해버리는 순간 나조차 그렇게 사라지게 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저릿하여 삼켜지지 않는 침을 한참 두고 굴리다 뱉었다. 도로 토해낼 수 없어 명치를 한 움큼 풀었다. 내 오랜 그들을 링에 걸어 곁에 두면서도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는 것이 나조차도 원망하게 했다. 숨이 막히게 했다. 손, 발 하나씩을 지워간다는 걸 보면 내가 그들을 다시 한번 죽이는 것 같았다. 며칠간을 산다는 게 미안했다. 처음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한번 죽어갔다. 살아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97년생으로 나이가 같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육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나는 아직도 그 장면들이 선하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며칠 전, 우리도 그들처럼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고 우리가 돌아오고 며칠 뒤 후배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우리에겐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란다.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단다. 남아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단다. 더러운 우물에 물을 퍼먹으면서도 괴로운 티를 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육 년간 뱉어내기만 했던 물에 처음으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익숙지 않은 표정이기도 했다. 그들은 너무 무고한 죽음을 맞았다. 그 큰 바다에 배가 침몰하고 뉴스에서는 어설픈 수색작업과 뒤늦은 침몰 원인이 더럽게 뱉어지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걸 보며 불편한 표정을 짓고, 국민청원을 하는 등 작은 움직임 밖에는 없다는 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육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일뿐이다. 내 표정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얄밉고 가식적이다. 십 년이 지나도 이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는 것, 한 때는 소중했던 것들이 망각되어 둔해지는 것, 자연스레 소멸돼버리고 마는 것. 기억이란 그런 거지만, 그럼에도 지켜낼 거다. 내가 부정하는 것들.
나는 여전히 잊히는 게 두렵다. 누군가를 지워내야 하며 자연스레 잊어야만 하는 게 무섭다. 옅어지는 부분들을 다시 짙게 그린다. 떠올릴수록 더 떠오르는 게 내내 가라앉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 시간을 바닷속 가라앉아있던 그들이 더 이상 깊이 가라앉지 않기를. 기억 속에서는 오랜 시간 떠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