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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Feb 18. 2021

나는 내일이 싫습니다.

내 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위하여

1.


내 일이 있어야 한다. 




"네 일이 있어야 해."

"젊은 사람들은 다 내 일이 있어야지."


아빠가 말하는 '젊은 사람'이 되고서부터 유독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사람은 나이마다 자신의 본분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학생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행동들과 생각들, 젊음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의미와 직분, 또 그 나이에 맞는 행실과 태도들이 각각 나뉘어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걸 정확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다.'라고 확정 짓진 않았지만 사회에서 보는 시선들과 각각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선입견 같은 거랄까. 이런 눈초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몹시 답답하다. 답답함을 소리 내지 못해 나도 같은 사람으로 안주하며 살 때마다 이런 나 자신이 싫었다. 세상은 많이 바뀌고 모두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자기 PR시대'라고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기에 눌려 자신의 개성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명백하게 구분 짓고는 결코 같은 무리 안에 집어넣지 못했다.


내가 퇴사를 하고 일 년 가까이 쉬다가 이직한 직장으로 첫 출근 한 날 아빠는 몹시 좋아하시며 말씀하셨다.

"젊은 사람들은 다 내 일이 있어야지."


없던 일을 만들어 낸 것 같아 헛헛한 마음이 들었지만 결론은 '없다'가 아니라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니까 그 마지막 말에 초점을 맞추면 그만이었다. 퇴사를 하고 쉴 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미뤄뒀던 일, 생각만 했던 일. 물론 생각만 했던 일을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만 하는 일도 분명 있긴 하지만. 눈을 뜨면 글을 쓰고 글을 다듬고 글을 읽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던 '구독자 메일링'도 작년에 처음으로 시작했다. 구독하신 분들께 매일 평일마다 글 한편씩을 메일로 보내드리는 서비스였는데 2월호 20편, 3월호 20편씩 총 40편 가까이 되는 글을 매일 쓰고 전송했다. '매일'이라는 말에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책임이 필요했다. 보통 때였으면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아예 쓰질 않는데 이 순간만큼은 매일 한편씩 좋은 양질의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공연히 애를 먹었다. 다만 그런 고생마저도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었던 일, 그토록 간절했던 일이었기에 나는 그 귀한 일이 내 일이 될 수 있음에 참 감사했다. 매일매일이 기다려지는 내일이었다.




2.


지금 이 순간에 얼마나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답을 하라면 나는 단박에 '아니오'라고 했을 거다.

그토록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쓰지도 못하고, 퇴근해서 돌아오면 밥 먹고 잠들기 바쁜.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드니 글을 쓰는 일 조차 '일'이 되고 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원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맞지 않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만족이라는 단어는 완벽한 사치 같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한 지 어느덧 4개월 차. 적응을 했다 싶으면 탈이 나는 일이 태반이다. 막내는 나 하나뿐이라 모든 잡일도 도맡아 한다. 모든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인 양 떠넘길 때마다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참아야지 별 수 있나.'


반나절을 꼬박 몸에 힘을 주고 산다. 퇴근을 하면 자연스레 늘어지는 몸과 마음, 그 덕에 내 시간은 없다. 다만 순간순간에 감사할 일들을 많이 찾게 된 것도 같다. 일을 하지 않으면 나태해지기도 하고, 매일이 같은 하루라 감사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이 전쟁이고 나 혼자서 이겨내야 하기에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나는 매일 내 몸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총과 방패를 거머쥐고 그 속을 뛰어든다. 크게 바라는 건 없다.


그저,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만 있기를.




3.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내 일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오늘은 또 오늘을 버티겠지만 내일을 기대하는 마음은 내게 없다. 무장을 하고 가도 상처를 입는 게 전쟁터인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도 결국 여기저기 상처가 남는다. 보통은 마음의 상처가 가장 깊다. 어디 가서 푸념을 늘어놓지도, 내편이 되어달라고 하소연하지도 못하는 그곳은 내가 나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다.


'출근을 하지도 않았는데 퇴근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이 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도 퇴근을 하고 싶다. 이제 막 출근을 하면서도 어서 이 순간이 지나갔으면 한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는 일을 하고 그것을 본업으로 삼으면서도 '일'이 있다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내일이 기다려지는 내 일을 하는 돈이 없던 그 순간이 좋은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섣불리 말하지는 못하겠다. 전자는 몸과 마음이 힘들고 후자는 심리적으로 힘들다.

일이 없으면 부담감과 압박감이 크다. 남들은 다 이만큼 성장해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함께. 세상일은 다 좋을 수 없다. 어떤 일을 해도 고민과 걱정이 뒤따르고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 나는 지금도 내 일을 갖지만 내일이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두통에 자주 먹던 타이레놀을 이제는 더 이상 먹지 않지만 줄곧 생각한다.




언제쯤 나는 내 일에 편해지는 순간이 올까.

언제까지 불안한 나로 살아야 할까.

번듯하게 자리 잡은 내가 내일을 그리워하는 날이 올까.

언제쯤 내가 사랑하는 일에 떳떳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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