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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쪽지 May 29. 2021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

각박한 세상 속에서 감정적인 사람이 살아가는 법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의 감정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 

'각박'의 기준이 누구에게 맞춰졌고 맞춰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본인에게 모질고 남에게 삭막해지게 된 게 분명하다. 자신의 삶에 아등바등거리느라, 흘러가는 시간에 이끌려 사느라 남을 돌볼 여유는커녕 나를 돌볼 여유조차 없어졌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지 뭐.'

'다 힘든데 내가 힘들다고 말한다고 뭐가 달라져?'



언젠가부터 내 마음의 '상실'에 대해, 내가 가진 '슬픔'에 대해 일일이 나열하지 않는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어색해도, 조금 낯설어도 꾹꾹 눌러 담다가 혼자 삭히는 일이 잦아졌다. 





어제는 같이 일을 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모처럼만에 만나 얘기를 했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지만 병원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의 모습은 또 다르다. 그 사람들 중에 가장 다른 모습은 내 모습.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애가 왜 병원 안에서는 그렇게 자신이 없는지 묻는다. 이렇게 말을 잘하면서, 에서 한번 더 멈칫한다.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사회생활이 힘들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정에 지치고 곪을 대로 곪아버렸다. 윗사람을 대하는 일이 힘들고, 일을 일적으로, 감정을 감정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약하다.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경계를 허물어도 되는지 나는 매 순간이 숙제다. 모든 게 좋을 수도 없지만,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좋을 수도 없다. 어떤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만큼 나와는 다르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와 다르게 극도로 이성적이다. 사적인 집단이 아닌 만큼 감정에 대한 공감과 이해보다는 체계적이고 확실하고 구체적인 공적인 관계. 일로 만난 모든 관계가 거의 대부분 그렇겠지만, 나는 그런 체계들이 너무나도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어쩌면 이 일이 주는 환경이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생각을 조율하고 감정을 나누는 일. 조금은 내 의견을 내세우고 아이디어나 생각을 낼 수 있는. 내가 일하는 환경은 그와 정반대라는 게 내 삶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치과 일은 업무 이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엄청나게 많고, 환자 한 명의 진료를 보기 위해 전과 후에 따르는 상황들이 많다. 내 선택과 주장은 부정이 될 때가 많고


"너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 "

"네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건 위험한 일이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내가 일을 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행동하는 데 내가 판단하고 행동하면 안 된다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그래서 언젠가부터 일을 할 때는 공적인 대화 이외의 사적인 대화를 잘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없을뿐더러 감정과 이성을 따로따로 나누는데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선배들에게 살가운 후배도 아니고 가끔 그런 점들이 오해를 몰고 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서운함이 되기도 했다. 밖에선 누구보다 밝고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었는데 일을 하는 집단 속에만 들어가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었다.





그래도 이날은 꽤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몰랐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그들은 나를 신경 쓰고 있었구나. 나보다 내 감정에 더 관심을 두고 있었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 알지 못했지만, 알아주기 위해 한 일들은 아니지만 그들이 내게 한 말은 마음에 박혀 꽤 오래 머물렀다.


"네 감정이 지칠 만큼 무리해서 일하지 않아도 돼."

"너도 네 감정을 보살피는데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해."

"일을 하다 보면 마찰이 생길 수도 있잖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뭔가를 잘못할 수도 있고. 그럴 때일수록 머리로 받아들여야지 마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돼. 그걸 구별하는 힘이 필요해."


되돌아봤다. 그동안 일에 치여 숨 막히게 뛰어다닌 나를. 마음이 다치는 줄도 모르고 '열심'이라는 열정 하나만으로 모든 걸 이길 수 있다고 자부했던 나를. 누가 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나를 굴렸고, 한번 실수라도 할 때면 스스로를 자책하고 채찍질했다. 살아오면서 늘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긍정적이었던 내가, 일하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나를 학대하고 있었던 거다. 상처가 곪아 터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정확히 어디를 향한 건지도 모르면서. 


사람의 한마디는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또 사람의 한마디는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내가 힘든 이유가 혹시 나 때문은 아닌지.


돌아오는 길이 꽤나 멀었지만,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을 하고 야간을 끝낸 금요일 저녁에 지칠 만도 한데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짧게 느껴졌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열었다면, 일에 쏟는 열정만큼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관대했다면. 두렵다고 무섭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조금 더 일찍 받아들였다면, 무리한 부탁도 다 끄덕이기보다 가끔은 "저도 정말 힘들어요." 한마디만 할 수 있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들이 많지만 나는 가장 먼저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못한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이 필요할 것 같다.




엉켜버린 지난날들을 되돌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내 진심을 오롯이 진심으로 전할 수 있으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까.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 그날도 나는, 감사하다는 말 하나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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