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카페베네에서...
모처럼 카페에 와서 앉았다. 혼자 카페 오는 건 아직은 용기가 좀 필요한 일이다보니 잘 안하게 되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기분전환이 필요한 것 같아 작장하고 집을 나선 참이다. 커피를 많이 마시진 못해도 좋아하다보니 커피향이 배어 있는 카페라는 공간이 참 정겹다.
새로운 마음으로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보고 싶은데 어쩐 일인지 발걸음은 늘 가던 곳으로 향한다. 낯선 곳에 대한 면역력이 더 필요한가보다.
책 한권과 노트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선 카페는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들 사이를 뚫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더해져 경박한 분위기를 낳고 있다. 포근한 나무 테이블과 책장으로 둘러싸인 인테리어, 맛깔스럽게 비치되어 있는 책들과 소품들이 주는 아늑한 분위기와는 사뭇 대조되는 풍경이다.
혼자서 의기양양하게 들어가 주문을 했다, 혼자라서 당연히 테이크아웃이라 짐작한 점원의 실수로 내 녹차 프라프치노는 유리잔이 아닌 경박하기 그지없는 일회용 컵에 담겨져 나왔고, 그래서 인지 그 맛 또한 밍밍하니 녹차의 쌉싸름한 맛도, 생크림의 달콤한 맛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순간 나의 로망은 상처를 받았다. 얼마나 기대하던 순간인데……. 여러 날을 고심하고, 어디로 갈까 상상하던 일이 이렇게 무참히 어그러지는가 싶으니 억울함이 솟구쳐 올랐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그 한을 풀지 못하여 구천을 떠도는 원혼처럼 서러움이 한이 되어 폭발하려하고 있었으나 분출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결국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냥 마셔도 전혀 상관없는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구지 머그컵에 옮겨 담아 달라고 부탁할 뿐이었다.
하고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다.
기분이 완전히 풀렸거나 지금 앉아 있는 의자가 편해서 독서하기 좋다거나, 분위기에 영감을 받아서 글이 술술 써진다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컵에 음료가 담겨 나오는 순간 녹색 음료는 제 빛깔을 찾았고, 쌉싸름하고 달콤한 원래의 맛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정된 나의 호르몬은 다시 글쓰기 모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잠시 내가 느꼈던 서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상처받은 로망? 혼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자격지심?
예전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남동생과 놀러가지고 약속되어 있었는데 아버지의 지병 악화로 약속이 취소되었고, 난 다른 볼일을 대신 보러 갔었다. 그 후에 남동생은 엄마와 잠시 드라이브를 다녀온 사실을 알았을 때 갑자기 몰려든 먹구름이 내 몸을 덮어버리고, 그 속에 갇혀 숨쉬기도 힘들어 헐떡거리는데 눈물은 끝임 없이 가슴을 타고 흐르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온몸 구석구석 세포하나까지도 다 눈물에 잠겨버린 것 같은 상태. 그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더욱 당황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 후 그 기분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덮어버렸는지, 흘려버렸는지……. 그냥 그냥 시간이 흘러서 배가 고프고, 밥을 먹고, 아기를 돌보다보니 내 기분 따위는 잊혀 갔다.
뭔가 행동을 취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의미 없는 컵 바꾸기 일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그땐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