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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여공작소 Feb 07. 2017

낭만

음악은 흐르고 멈춘다. 흐르고 멈춘다.

2017.02.06.




음악이 흐른다. 경쾌한 리듬과 감미로운 곡조가 귓가를 휘돈다. 곧 음악이 만들어내는 멜로디가 신체 리듬과 교차하며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노래 가사는 음악적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고, 현실은 그 분위기 위에서 너울거린다. 음률의 파장과 하나된 현실은 낭만이다. 음악은 현실을 감성으로 덧칠한다. 그 세계에서, 현실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음악이 멈춘다. 시공간을 가득 메웠던 운율과 박자가 사라진다. 뒤이어 인지되는 것은 정적 뿐이다. 귓가에서 멤돌던 세계는 이미 가고 없다. 현실의 무(無)운율은 꽤나 낯설다. 사라진 낭만의 흔적이 조금은 차갑기 때문일까. 음악의 갑작스런 소멸은 그리움을 넘어 허탈한 느낌마저 준다. 음악의 사라짐은 낭만의 사라짐이다.


요컨대 음악 있이 꽃을 보는 것과 음악 없이 꽃을 보는 것은 뭔가 다르다.


한동안 음악을 멀리 했었다. 음악이 영원하지 않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흐르던 음악이 별안간 멈춰버렸을 때 느껴지는 고요함이 싫었다. 그 순간 흐르다가 멈춘 것은 음악 뿐이 아니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 느껴졌던 웬지모를 서글픔과 용기, 자신감, 즐거움, 벅참도 같이 흐르다가 멈췄다. 그것들은 음악과 함께 떠나버렸기에, 영원하지 못했다. 음악을 일부러 피했던 가장 큰 이유는 -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 바로 이 때문이었다.



<라라랜드>가 서사를 풀어내는 주요 소재로 음악을 쓴 건 매우 영리했다. 삶과 낭만, 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왜 굳이 음악을 활용해야 했는가. 음악이 멈추고 흐를 때마다 미아와 세반스찬이 넘나들던 꿈과 현실의 구분도 생겼다가 허물어지고 허물어졌다가 생기고는 했다. 음악과 현실의 영원회귀는 <라라랜드> 그 자체였다.


<라라랜드>를 보고 한동안 멀리했던 음악을 다시 가까이하게 되었다. 물론 미아와 세반스찬이 종종 그랬듯, 흐르던 음악이 멈춘 후 불쑥불쑥 엄습하는 정적이 불편하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나.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기도 하다." 그래. 음악은 멈추는 것 뿐이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낭만도 영원히 흐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멈춰있는 것도 아니니까. 음악과 낭만이 아예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제부턴 음악이 멈췄다면 다시 틀면 될 것 같다. 음악과 낭만을 틀고 싶다.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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