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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잉여공작소 Feb 15. 2017

영화 "컨택트" 후기

Arrival

스포일러 있습니다.


# 언어는 존재의 집


사유는 언어의 저편을 넘어갈 수 없다. 인지심리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이론을 통해 언어와 사고(Thinking)의 관계를 탐색하며 '말'이 우리의 '생각'과 '도덕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레이코프뿐이 아니다. 일찍이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 규정했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며 언어와 사고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언급했다. 요약하자면 많은 부분 우리는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상상하고, 언어로 존재한다.

<컨택트>는 언어에 대한 영화다. 언어 결정론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 그 이상임에 주목한다. 영화 속 내용도 그러하거니와 영화를 보는 우리도 그 언어 구조가 선형적인 탓에,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고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영화 중후반까지) 나는 한나(Hannah)가 과거에 속한 아이이지 미래에 속한 아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우리의 언어는 논리적이어서 앞에서 뒤로,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언어란 이미 일어난 '사실'이 아닌 '예측'과 '약속'을 말한다. "우리는 시간에 얽매여 있어. 특히 그 순서에……" 라는 루이스(에이미 아담스 役)의 영화 초반 대사는 이를 잘 드러내준다. 선형적인 언어는 오늘과 어제에 우리를 가둔다.



# 시간으로부터의 해방


<컨택트>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헵타포드(7개의 발)의 비선형적인 언어를 학습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헵타포드의 언어는 로고그램 형태여서 방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 방향이 없으니 전(前)과 후(後)가 없고 그래서 이 언어는 공간적이고 입체적이며 비선형적이다. 선형적인 우리의 언어 구조가 존재를 현재라는 감옥에 가두어 놓았다면, 비선형적인 헵타포드의 언어 구조는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능케 한다.

3차원의 공간에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저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햅타포드의 언어는 시간 차원에서도 우리가 공간에서 이동하듯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있게 돕는다. "무기를 준다(Offer weapon)" 는 외계인의 말은 시간의 공간화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는 파국으로 치닫던 전쟁 직전의 상황을 루이스가 막을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다.


# 소통, 그리고 삶


그렇다면 <컨택트>는 왜 언어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먼저 언어는 필연적으로 대화와 소통의 문제를 수반한다. 영화 속 다양한 소통의 층위들은 '언어와 소통과, 대화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곱씹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루이스는 햅타포드와 어린 한나라는 미지의 존재와 소통하기 위해 언어를 수단으로 끊임없이 감정과 사고를 나누려 애썼다. 그러나 때로 그 소통은 위태롭기도 했고 이해 불가하기도 했으며 불편하기도 했다. 특히 비슷한 언어 구조를 공유하는 같은 종(種)끼리의 의사소통에서조차 "무기를 제공한다(Offer weapon)" 는 최초의 메시지가 "Use weapon(무기를 사용한다)" 라고 왜곡되는 상황은 소통이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님을 새삼 깨닫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단어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후맥락에 따라, 호흡과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전달되고 인지되는가. 그럼에도 루이스가 대화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지점은, 깨지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소통의 과정이 결국은 고통스런 의무이자 필요임을 명백히 증명한다. 만일 대화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남겠는가?



한편 시간은 우리의 삶과 연결된다. 만일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집 앞 슈퍼마켓에 가는 것처럼 내일 오후의 어느 때쯤으로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오늘 나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오늘의 선택으로 인한 내일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미래를 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루이스는 한나의 죽음을 예지했다. 만약 이안(제레미 래너 役)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녀의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루이스는 서슴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지금 이 순간이 앞으로 무한히 반복되어도 그 순간을 똑같이 맞이하고 기꺼이 견뎌내겠다는, 서늘하고도 무서운 니체의 영원회귀였다. 어쩌면 미래를 아는 것이 마냥 축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시간으로부터 해방되어 미래를 걷게 된다 해도, 결국 선택은 오늘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공간과 상관없이 삶이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인 셈이다. 나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미래는 시간 속에 있지 않고 선택 속에 있다."

<컨택트>는 여러모로 지적인 영화다. 언어와 시간을 씨줄과 날줄 삼아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다.


*네이버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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