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는 바다
아주 끈질기게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마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십 대의 끝자락에 선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마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막 친분을 쌓아가던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넌 벽이 있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순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얼굴이 금세 뜨거워진다. 화들짝 놀란 눈동자는 갈 길을 잃고 황망한 표정은 할 말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렸겠지. 그러고 나서 정작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웃음으로 무마하며 화제를 전환하려 애쓰는 것뿐이었을 테고. 그건 들키고 싶지 않은 일기처럼 너무나도 진실이었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오래도록 사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만큼 불가해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믿는 것만큼 미련한 짓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단순히 타인에 대한 불신은 아니었다. 나는 내 마음조차도 믿지 않았다. 이를테면 외로움을 기피하면서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마음 같은 것들.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이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별의별 순간에 그 말이 떠올랐다. 온갖 감정이 교차하며 혼란했지만, 끝에는 늘 이런 질문이 뒤따랐다.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숨기고 싶어 하며 벽을 세웠던 걸까? 그건 정말 숨겨야만 하는 마음이었을까? 대체 어떤 이유로 나는 마음을 숨기기 시작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을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렇게 닫힌 마음이 수많은 관계의 수명을 다하게 만들었으리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관계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전에 저물어버린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지금도 떠나가고 있는 인연이 있을지도 모른다. 험난한 세상에서 꿋꿋이 버티어가며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고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선 서른이 되기 전, 내 마음과 독대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사라지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마음. 그런 마음을 홀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때고 속수무책으로 울컥해진다. 인간이란 어떻게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바다를 떠올린다. 늘 우리를 겸허하게 만드는 망망한 바다. 제 아무리 내로라하는 지식인이나 재력가라 한들, 온전히 통달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바다. 마음이 바다처럼, 바다가 마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는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수면만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저 먼 심해 아래는 대체 어떤 세상일까. 인간의 작은 손때 하나 닿지 않은, 빛자락 하나 들지 않아 칠흑 같이 깜깜한 미지의 세계. 그곳엔 몹시도 낯선 모양과 빛깔과 소리를 지닌 생물이 살지도 모른다. 그것을 보면 당신의 얼굴엔 어떤 감정이 번질까. 놀라움일까, 공포일까. 아니면 어떤 감정이 깃들기도 전에 도망치듯 멀어지고 싶어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손을 뻗을 것이다. 가벼운 호기심 혹은 경외감으로. 그 손길로 말미암아 넓어진 세상은 또 얼마나 큰 놀라움으로 가득할까.
한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심오할 수도, 깊은 심해일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의 밑바닥에는 생각지 못한 마음들이 살고 있다. 바다의 주인조차도 모르게 한껏 숨죽인 채로, 하지만 분명히 숨 쉬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닥으로 손을 뻗는 건 두려운 일이지만, 마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내야만 거머쥘 수 있는 가능성을 나는 믿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 용기를 내려 하는 만큼 당신도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의 물길을 열어 주고 싶다. 당신이 이 물길을 따라 마음껏 유영했으면 좋겠다. 물길과 물길이 만나 더 큰 바다를 만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202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