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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Jun 30. 2022

최선의 집

220629

집 청소는 손님이 올 때 제대로 한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기숙사를 시작으로 고시원, 원룸을 거쳐 지금의 빌라에 살기까지 10년 걸렸다. 옛날 열악한 곳에서 지낼 땐 손님 오는 게 그렇게 싫었다. 대접할 만한 공간도 없었을뿐더러 옷더미와 많은 짐 속에서 텁텁하게 지내는 나를 혹시 불쌍히 여길까 봐 눈치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손님이 내 집에 와야 하는 상황이면 그 당시의 최선으로 대접했다. 나름의 편한 환경 속에서 내 거처의 흠들을 찾지 않길 바랐다. 그러곤 으레 말했다. 

“이 가격에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야”, “상황은 이래도 나는 잘살고 있어”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어떠한 사연이 있다. 7년 전 서울로 들어가기 위한 자금을 바짝 모을 때였다. 목적이 있던 만큼 환경은 열악했다. 보증금 100에 월세 25인 원룸이었는데, 부분 부분 곰팡이가 스민 벽지와 가끔씩 오래 보는 벌레들과 2년간 함께했다. 그렇게 도인처럼 살던 때에 친형이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형을 위해 그 동네 최고의 피자를 시켰을 거다. 맥주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을 거고… 형은 별일 없이 하루를 지내고 갔다. 그런데 형에겐 그 하루가 별일이었나 보다. 형은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와 통화하면서 ‘남호가 그지같이 산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엄청 속상했다고 나중에 말해줬다. ‘거지같이’ 사는 건 진짜 거지라는 건데, ‘그지같이’ 산다고 했으니 내가 지내는 환경이 별로였다는 말이었겠지. 힘들게 살긴 했어도 그때 내가 진짜 거지는 아니었기에 이렇게 미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여튼 그때부터 내 집을 찾는 사람들에겐 잘 사는 것처럼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야기인데 그 집에서는 인류의 진화를 살짝 경험하기도 했다. 따로 옷장이 없었던 그 집에는 벽 한 면 전체에 행거를 세워두었다. 잠자리는 바로 아래였다. 베개를 벴을 때 내 시선은 걸려있는 옷들과 마주했다. 그렇게 옷에 파묻혀 지냈던 그 집에 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건조하다고 했다. 집은 옷 먼지로 가득했겠고 건조했을 게다. 그래서 진화했다. 안타깝게도 난 집이 건조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 먼지 덕분에 속눈썹도 길어졌다. 대학생 때까지 속눈썹 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집에 살고 나서부터 종종 듣는다. 기린이 살기 위해 목이 길어진 것처럼 나도 환경에 적응하고자 건조함에 내성이 생겼고, 속눈썹이 길어졌다.


다시 돌아와서, 손님이 온다고 하면 물걸레질은 물론 빨래까지 해치운다. 지저분해 보이는 곳은 가려놓는 습성도 생겼다. 지금 집에는 옷방의 행거, 화장실의 씻는 공간, 짐을 쌓아둔 베란다를 가려놨다. 그것 만으로도 깔끔해 보인다(갑자기 곤도 마리에 느낌). 어메니티(?)도 다 있다. 수십 개의 컵과 배달 음식으로 모은 무수한 나무젓가락, 양말까지 걸어도 남을 옷걸이들, 손소독제, 충전 케이블(C타입도), 일회용 칫솔, 심지어 뼈 음식 뜯어먹을 때 쓸 비닐장갑까지 있다. 그래도 몸만 오라고는 말 안 한다. 달라고 말해야 물티슈 주는 음식점 사장님 마음을 이해하니까.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더없이 최선의 집이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얼마 전, 엄마와 형이 집에 왔다. 불쌍하게 사는 아들과 동생이 또 되긴 싫어서 박박 청소했다. 옷장도 열어볼까 다시 정리하고 침구류까지 세탁해놨다. 회사에 있던 나보다 먼저 내 집 문을 연 두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예전처럼 그지같이 살진 않지? 깨끗하지?”

“그래 보이려고 한 게 티 난다 야”

“서울에 잘 데 있으니 편하고 좋네”

이런 말이 그렇게 듣고 싶었나 보다. 엄마와 형은 나름은 편하게 하루를 지내고 간듯하다. 내 최선의 집은 확실히 10년 전보다는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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