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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Jul 28. 2023

글 쓸 이유 없음

1 글 쓰지 않는 삶 (1)

- 변명: 왜 안 쓰는가


    일단 이제는 글을 써도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에디터 시절엔 결과물이 있었기에 긍지가 있었고, 명예도 있었다. 그 직업을 그만두고서는 브런치에 글을 써왔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써야 했던 건데, 평범한 직장인이 된 지금 그 이유만으로 움직이기에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다.


    이왕 다른 변명도 해보자면 제대로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서다. 가벼운 글을 쓸 바에는 아예 쓰지 말자는 고약한 마음이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웬만큼 다 마쳐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타입이다. 에디터 때는 칼럼 하나 쓰느라 밤을 꼬박 새우고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다시 출근하곤 했다. 돈을 벌고자 글을 써야 하는 일은 나를 너무 옥좼다. 편하게 글을 쓰고 싶어서 에디터를 포기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으로서는 애초에 난 글 자체를 편하게 쓸 수 없는 사람인 듯하다.


     하나 더. ‘인문학 마초’로 보이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인문학 마초란 아내 친구한테 처음 들었던 말인데, 재미있어서 나도 종종 사용한다.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해보면 넓은 의미로는 책과 영화, 예술 등 자신만의 취향을 고집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이나 사진 따위로 본인을 표현하는 사람들이다.

인문학 마초 :
문제는 위 설명에서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SNS와 같은 특정 플랫폼에서 자신이 설정한 자아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연애까지 한다. 이제 DM으로 관계를 쌓는 일은 흔하긴 해도 그들은 훨씬 이전부터 그래왔다(적어도 나와 내 지인들이 정의하는 인문학 마초들은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형성한 관계는 대개 실패되지만, 그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들의 문제는 자신의 '플랫폼 자아' 가꾸기에 치중한 나머지, 그것 말고는 보여줄 게 별로 없단 거다(인간미, 사회성, 가치관 등). 나와 아내의 주위엔 인문학 마초를 겪은 사람이 꽤 있다. 각각 사회과학, 인문학 전공이라 그런지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두루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인문학 마초의 레이더에 걸리기 쉽고, 잘 엮이기 마련이다(이건 모두 사견이다. 인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려는 의도는 없다).


     나도 에디터를 계속했다면, 인문학 마초가 됐을지도 모른다. 에디터여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에디터였기에 그럴듯하게 피드를 채워나가야 했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때였다. 인스타그램의 나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도 했다. 그게 이어졌으면, 아마 나도 흔한 인문학 마초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은 과거에 썼던 낯부끄러워지는 글들은 다 숨겼다. 어쨌거나 그때를 추억하며 다시 찾아볼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변명이다. 이제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글 쓰는 일을 한다. IT 기업의 홍보실에 5년째 속해 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언론'홍보 담당자. 기업의 이슈가 생기면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기획기사를 작성하는 게 기본적인 업무다. 글 쓰는 게 싫어서 에디터를 포기했지만, 결국 또 그런 일을 하는 중이다. 다행인 건 정해진 주제(기업)에 한해서 소주제(이슈)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과 결과물들이 늘 새로운 형식의 창작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잡지사에 있을 때보다 부담은 덜하다.

    입사 초기에는 이런 정해진 글을 쓰는 환경에서 일하면, 퇴근 후에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만들어내는 삶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현실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만성피로'였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우습게 봤다. 다소 자유롭지 못한 업무 환경과 상사,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어디에서나 보이는 비상식적인 업무 처리 방식 등, 이러한 일들을 매일 겪으니 만성피로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됐고, 누워만 있고 싶었다. 여타 직장인들과 똑같은 환경에 처해지니 '업무에서라도 글 쓰는 게 어디야?', '글쓰기 역량은 그런대로 유지되지 않겠어?' 따위의 자기 합리화가 생겼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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