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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l Apr 03. 2020

나는 편집하며 글을 쓴다

사실 나만 이렇게 글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나처럼 쓸 수도 있다.

나는 편집(edit)하며 글을 쓴다. 어디에서든 이미 쓰인 글에서 단어나 구절을 일일이 찾고 그것들에서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낸다. 글쓴이의 ‘표현’이라기보다 글쓴이가 ‘선택했던 글자’들을 가져온다는 게 맞겠다.


종이에 이렇다 할 감흥이 없던 잡지 에디터에게 종이란 겨울 동안 집 앞에 쌓이는 눈과도 같았다. 쌓인 눈을 계속해서 치워내듯 흰 종이에 원고를 채워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와 종이는 애증이랄 것도 없는 텁텁한 관계를 맺어가고 있었다.


윗글은 ‘텁텁하다’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만들어졌다. 종이와 나의 관계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텁텁하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텁텁하다는 ‘눈이 흐릿하고 깨끗하지 못하다’라는 뜻이 있다. (내리는) 눈을 뜻하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서 비유를 생각해냈다.


주제넘게 글쓰기 선생님이 된 것 같지만 이런 식이다(글 쓰는 법 연재하는 거 아니다…). 에디터(편집자) 명함을 건네던 시절부터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잡지 에디터일 때는 말마따나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편집’이라는 소명을 다했었다. 요청했던 기고 글을 받아 다듬었고, 녹취를 푼 인터뷰이의 말을 정리하며 기사로 만들었다. 거기에 화보 컷을 고르고, 칼럼의 순서를 조정하고… 기어이 공간(서점)까지도 편집해가며 운영했다.


내 생각을 담아야 하는 칼럼을 쓸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랬기에 언제부턴가 내 글도 편집해서 만드는 나를 보며 이따금 비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한때는 글 쓰는 것에 떳떳하지 못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난감했다. 결과물들은 곧 내 것이 아니라는 기분에 쉬이 책임감을 떨쳐버린 적도 많았다(잡지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글로 쓰려 한다).


남이 읽을 글이었기에 더 그렇게 느꼈을 거다. 종종 에디터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글을 써야 할 때면 메스꺼운 기분이 나를 둘러 감았다. 지금도 그러할까? 아니, 다행히도 잡지사를 그만둔 뒤로는 한결 편해졌다. 입맛을 맞춰야 할 글을 쓸 일은 이제 없어져서다.


정기적인 글쓰기(일로서의 글은 제외하고)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겐 내가 글 쓰는 방식이 괜찮을 것도 같다. 수십 개 히트곡의 한 마디씩, 아니 한 마디도 아니고 반의반 마디씩 가져와서 새 노래 하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가져온 것들에 대한 발전과 짜깁기는 본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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