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1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떠났어서 부산을 잘 알진 못한다. 성인이 돼서야 부산엔 해운대, 광안리 말고도 다양한 면모의 바다가 있다는 걸 알았고, 롯데 자이언츠 팬도 아닐뿐더러 사직구장 근처도 안 가봤다. 그래서 부산을 떠올리면 아쉽고 그립다. 지냈던 19년 동안 부산을 사랑한다는 마음이 없었다. 첫사랑 같다.
그래도 명절을 구실로 1년에 두 번은 부산을 찾는다. 흘러간 첫사랑치곤 자주 보는 편. 그런데 실제 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마냥 반갑진 않을 듯하다. 그래서 부산을 떠올리면 그립고 아쉬운 것들이 수두룩하다. 강아지들과 부산 거리 한 번 산책해보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고갈비를 처음 먹어본 경험이 서울이었다는 것, 차멀미가 심해 스스로 좁힌 행동반경, 관심 있던 여학생에게 티도 못 냈던 사춘기 시절까지, 부산에는 새로 덮어씌울 수 없는 설익은 기억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데 방금 마음이 변했다. 위 문단을 쓰면서 없던 미련이 생겼다. 부산이 흘러간 첫사랑 같다고 했지만, 다시 사랑해보고 싶어졌다.
좋은 기억도 살피고 싶다. 엄마가 팥빙수와 단팥죽을 팔았던 광복동 골목은 그대로인지, 당신의 시가 신문에 실렸다고 자랑하던 고3 담임선생님은 요즘도 시를 쓰시는지, 범일동 구름다리 옆 뒷고기 집은 여전히 고등학생들에게 술을 파는지, 송도 송림공원에 반 친구들과 묻었던 타임캡슐은 23년이 지난 지금도 묻혀 있는지 궁금하다.
2000년에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 이전까지 부산의 영문 표기는 ‘PUSAN’이었다. ‘BUSAN’이 대중화되고, Pusan Bank(부산은행)가 Busan Bank로 새로 단장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약칭이 PIFF에서 BIFF로 바뀐 시점은 내가 부산을 떠났을 때였다. 2010년 전후쯤이다. 어쩌면 난 BUSAN이 아닌 PUSAN을 기억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8월 당분간은 부산에 내려갈 계획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 5일 이상 부산에 있던 적이 없다. 부모님 집에 가는 난 이제 손님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 커져서다. 머무는 동안 알고 싶었던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찾아 바지런히 다닐 작정이다. 내겐 오래 머물수록 빨리 떠나고 싶은 도시에 불과했던 부산이 이번 여름이 지나면 BUSAN으로 바뀔지, 똑같이 PUSAN일지 궁금하다. 그대로 PUSAN으로 남아 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좋을 것 같다. 어떻든 다시 사랑할 도시가 부산인 것은 변함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