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20
“태껴줘?”
비 오는 아침, 아빠는 매번 물었다. 표준어도 사투리도 아닌 이 세 글자 의문문은 ‘비 오니까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겠다’라는 뜻이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굣길은 걸어서 15분 거리였지만, 계단이 많은 오르막길이어서 비가 오면 바지며 신발이며 다 젖었다. 그 눅진한 느낌이 싫었던 형과 나는 그때마다 아빠 차를 탔고, 학교에 보송보송 무혈입성하곤 했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부잣집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장면은 아니었다. 아빠 차는 다부진 고급 세단이 아닌 호리호리한 검은색 다마스였다. 우리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여는 부잣집 아이들이 아니라 차 타고 등교하는 것 자체가 멋쩍어서 문을 열어젖히기 바쁜 투박스러운 아이들이었다.
은연중엔 아빠 차를 부끄러워했던 것 같다. 아빠의 다마스는 연식 13년, 누수로 비가 오면 회색 천장이 진하게 번졌다. 그래도 그건 차에 타지 않으면 모를 일.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일명 ‘다마스 등교’ 중 아빠는 지나는 길에 우리 친구들이 보이면 다 태워주려 하셨다.
“친구야? 태껴줄까?”
“아뇨, 쟤는 별로 안 친해요.”
“쟤는?”
“네, 쟤는 태울게요.”
차에선 잇따라 이런 대화가 오갔다. 가끔 7인승 다마스가 꽉 차기도 했다. 때문에 차로 10분이면 끝날 다마스 등굣길이 30분 가까이 걸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친구들이 진회색 차 천장을 눈치 못 채길 바랐다. 남호네 아빠 차가 낡았다는 걸 알아차린 친구도 있었겠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낸 무례한 치는 없었다.
사춘기쯤부터 다마스 등교 빈도는 점점 줄었다. 그땐 폭우가 내려도 걸어서 등교하는 게 조금 더 멋져 보였다. 그사이 아빠 차는 세피아, 에스페로 같은 세단으로 바뀌어서 수용 인원이 줄기도 했다.
가끔 비가 오면 다마스 등굣길이 생각난다. 쭈뼛거리며 차에 오르던 친구들, 별말 없이 운전만 하시던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아, 아빠는 요즘 은퇴 후 소일거리 삼아 동네 스포츠 센터의 운전기사로 일하신다. 쏠라티를 모시는데, 소위 좋은 차를 탄다는 듯 자랑하신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면 아빠는 비가 오지 않아도 버스터미널이며 기차역, 공항까지 ‘태껴’주신다. 아빠와 나의 작별 인사는 언제나 싱거운 악수. 지금 아빠 차는 검은색 레이다. 천장이 젖을 리 없는 2012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