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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que H Sep 11. 2024

너희 마음속 나비에게

높은 탑을 오르려는 당신들에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들 한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에 맞춰 성장한다는 뜻이라 한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지,

그 사람을 어떻게 만든다고는 정하지 않았다.


높은 곳일수록 떨어질 곳이 많다.

떨어질 때 낙차도 크다.

그렇기에 필히 높은 자리에 있다면,

이 자리에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자리"는,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만든다.




추락의 공포는 근원적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품을 수 있고,

그런 공포를 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때론 이런 공포가 너무 강력한 나머지,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공포에 휩싸인 높으신 분은,

그 자리의 책임은 망각한 채로,

공포에 휘둘리는 숙주가 되어버리고 만다.




본분을 잊은 관리자를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면,

그런 자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트리나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는,

높은기둥을 오르는 애벌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숱한 위험을 무릅쓰고 기둥을 오르며,

마침내 기둥 위에 도달하였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꼭대기였을 뿐이다.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처럼,

어쩌면 우리는 남들을 따라 높은 "자리"를 향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마침대 올라간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 채 올라,

텅 빈 권좌에 앉고 나면,

끝내는 그 텅 빈 권좌 자체를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는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비라면,

날개가 달린 나비라면,

그 권자에서 떨어지는 것 또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리라.

내게 달린 날개로,

언제든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니.




우리가 애벌레라면,

만약 그 텅 빈 권자로 끊임없이 향하는 애벌레라면,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나 자신의 나비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길고 두려운 고치의 시간을 지나,

죽음을 극복해야만 깨어낼 수 있을 뿐.


그런 나비가 되어 기둥에 오른다면,

우리는 더 이상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그 창공을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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