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ivia
완전한 새벽을 달리는 2층 버스 안은 정말이지 춥디추웠다. 좌석을 반쯤 눕힐 수 있다던 까마(Cama)버스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겠지? 했더니 웬걸. 계획 해놓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선 낮에 도착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택했건만 싸늘한 밤의 기운이 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처음이야 어떻게든 눈을 붙였지만 추위에 한번 깨고 나니 달아난 잠은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급한 대로 배낭에 있던 옷가지 몇 장으로 꽁꽁 덮어보았지만 역부족이다. 그나마 수족냉증 중 왕 수족냉증인 내가 챙겨온 수면양말을 발에, 그리고 손에 장갑처럼 꼈더니 그제야 조금 나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살짝 창피하긴 했어도 자고 있는 사람들 틈에선 당당할 수 있다. 추운 걸 어떡해!
추위는 가셨으나, 잠도 아주 가셨는지 뜬 눈을 억지로 감아보아도 주변 사람의 코 고는 소리만 더욱 선명히 들려올 뿐.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이어폰을 끼고, 둘. 일기를 쓰는 것. 후자는 멀미가 오기 전까지라는 시간제한이 있지만…. 다시 한번 배낭을 뒤적여 나의 일기장과 볼펜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사실 말이 일기장이지 여태껏 내가 얼마나 돈을 썼는지 계산하고 있는 장부가 있고, 뭘 그리려 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꼬불꼬불한 선들, 그리고 어딘가의 입장권이 책갈피처럼 꽂혀있기도 했기에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책인 것 같기도 했다.
이번에도 두서없이 써 내려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내가 왜 남미로 떠나오게 되었더라. 이 여행이 시작된 첫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그 끝에는 볼리비아가 있고, 우유니 소금사막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SNS를 통해 타인의 여행을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이자 일상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 스크롤을 내리다 멈칫한 사진이 있었으니, 지프차 한 대가 한낮의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로지르는 풍경이었다. 마치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져 하늘을 달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칭한다는 걸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
관심의 물꼬를 튼 것이 낮의 풍경이었다면, 이후 내 맘을 확실하게 사로잡은 것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쏟아지는 은하수를 볼 수 있다던 밤의 풍경이었다. 낮과 밤의 모습이 정반대의 매력을 띄고 있는 곳. 내가 만약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이곳에 가리라고 다짐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현실과 타협해 본격적인 뿌리를 내리기 전, 가장 자유로운 지금이 아니면 안되겠다 싶은 때에 찾아왔다.
제일 먼저 알바를 늘렸다. 여행경비는 둘째치고 한 달을 꼬박 쉬는 날 없이 아침저녁으로 두 탕을 뛰어야만 살 수 있던, 별이 기가 막히게 찍힌다는 카메라를 손에 넣고 나서야 일단 준비물은 다 챙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다음날 망설임 없이 비행기 표까지 끊을 수 있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사소한 계기로 스쳐본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뺏겨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다. 비록 지금은 등이 베기다 못해 저릿한 2층 버스 안이지만, 이 모든 것이 우유니의 풍경 속으로 스며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이 순간조차 기꺼이 즐겨보리라 마음먹게 한다.
다시금 떠올린 여행의 시작을 나는 아주 귀하게 여기고 싶다. 생각을 정리하니 조금은 몽롱한 기운이 몰려온다. 윤택해진 마음을 껴안고 다시 한번 잠을 청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