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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배 Jul 12. 2018

나의 이야기, Storytelling Wheel

Drawing on the metal

Storytelling Wheel, 12 x 14 x 1/4 inch, cooper, 1,900 g,  2018


돌고 돈다는 뜻의 윤회라는 단어는 나에게 의미심장했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종류의 종교적인 언어 중에 이 단어만큼은 특별했다. 했는 만큼 결과가 되어 다음 세상에서 태어난다.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인과응보이고 업이다. 윤회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면서 다분히 권선징악을 유도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쁜 언행보다 선한 언행을 한다. 종교적이고 선도적이다. 그러나 현세에서만 국한하면 종교적 선도성과 관계없이 당연한 진실의 말이 된다. 


몇 만 년 전 인류가 생기자마자 오늘까지 인간은 산아래 있었다. 중세에는 신이 인류를 다스리고 규제를 해왔다. 절대 진리요 절대자였던 것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했을 때가 1543년이었다. 그렇게 긴 인류의 역사에서 겨우 모래알 하나 던진 때가 지금부터 5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과학과 인본이 이렇게도 발달하였는데도 아직까지 신의 세계이고 신의 문화이다. 약하디 약한 인간이기에 참으로 거부하기 힘든 것이 이것, 바로 신의 부정이다. 

 

그래도 나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러하니 당연 내가 다시 무엇이 되어 태어난다 것은 나에게 의미가 없다. 죽으면 그냥 무(없음)이다. 그러나 윤회를 인정한다. 현세와 내세의 연결이 아닌 현세에서의 윤회를 말하는 것이다. 현세에서 윤회는 내가 한 만큼 내가 받는 것이고, 남으면 내 자식이 받는 것이고, 그리고 내 자식이 나를 닮아 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나는 한평생 계속 욕망에 종속되고 의존하며 살 수는 없다. 욕망으로만 산다는 것은 사실 동물과 다름 없어 보인다. 내세를 믿어 어려운 것은 다음으로 넘겨 버리고 욕망에 의존하여 현세를 망각하는 나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라도 진정 주체적인 나이고 싶다.

 

인도 불교영화 Samsara (2001년, Pan Nalm 감독, Shawn Ku, Christy Chung 주연)를 보았다. 젊은 나이에 열반을 찾았으나 욕망에 이끌려 속계 생활을 하게 되었고 결국 다시 열반을 찾기 위하여 속계를 떠나는 인생 여정이었다. 이 영화에서 나는 현세계와 다음세계로 이어지는 윤회라고 보기보다 현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윤회로 보았다. 제대로 공부하고 의사와 같은 전문가, 혹은 정치가가 되었는데 돈을 벌기 위하여 자신을 던졌다. 결국 다시 순수 자신으로 혹은 본업으로 돌아오는 경우이다. 부모덕에 자기 길을 잊었다가 나중에 자기 길을 찾는 사람들이고, 위로 위로만 향하다 갑자기 아래로 추락했고 바닥에서 진정 자기 자신을 찾는 경우이다. 잘 가고 있었는데 욕망으로 샛길로 가게 되었고 결국 본래 자기 길로 돌아오는 유형이다. 서로 잘 맞는 한쌍이었는데 한 사람이 한 눈 팔았고 결국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정말로 자기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것이 진정 행복인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진정 이것이 우리 자신이다.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머리로 알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고 인생도 같은 실수로 반복되는 것이다. 정말로 처음으로 찾은 자신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애초부터 찾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자꾸만 가고 있는 인생도 많다. 인생 끝에서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도 많고, 눈을 감을 때까지 자기 길을 찾으려고 시도하지 못하거나 아니 한 사람도 많다. 숨을 거두면서 그때 바로 후회하는 인생도 많다. 다행히 많은 우리는 욕망으로 다른 길을 들어섰음을 알고 난 뒤 고민하고 다시 자신의 길로 가고자 한다. 인생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것을 내세에 넘기면 당장 편하고 안심이 되지만 현세에서는 나 자신은 없게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었는데 욕망과 욕심에 눈이 멀어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갔어야 하는 길을 늦은 이제 탐하고 있다. 영화 Samsara는 나의 이야기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뜸 한뜸 수만 번을 금속 표면에 정으로 새기고 새겼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했다. 힘든 시간과 노고였다. 수만 번 금속표면을 정으로 때리고 때렸다. 그때마다 내 심장의 고동은 울령거렸다. 그러나 많은 순간에서 조금씩 힘듬이 희열로 바뀌었다. 지금 겪는 고통은 내 과거 삶의 업이라. 그냥 돌아올 수 없지 않은가? 영화에서 주인공 Lama Tashi는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빈 손으로 자기 길을 다시 갔다. 버리고 잃어야 다시 찾을 수 있다. 욕망의 과거를 이제 공짜로 물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나의 이야기였다. 또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Drawings on the front side of wheel
 1 birth, 
 2 remain at the temple, 
 3 becoming monk. 
 4 meditation for 3 years, 
 5 being great monk, 
 6 wondering and desire
 7 leaving the temple
 8 married


Drawings on the backside of wheel

 1 having baby

 2 working for family
 3 enjoying with family
 4 community
 5 conflict with people
 6 wondering
 7 going to the temple
 8 enlightening through meditation again


It has eight engraving drawings on the each side. Each sixteen drawings are connected and make one story of cycle of life. It is like a reincarnation (sams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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