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치킨
외국에서 만난 우리는
3년의 연애 중 1년 6개월가량을 해외 롱디 커플로 보냈다.
남자 친구는 해외 취업이 되어 한국을 떠났었고
나도 남자 친구가 있는 곳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제3의 나라로 재취업이 되어 고민하던 중
떨어져 있는 것보다 어찌 됐든 붙어사는 게 더 행복하겠지 싶어 내 일을 접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 12월에 결혼을 하고
올 1월 이제는 나의 남편이 된 남자를 따라 이 곳, 멕시코에 왔다.
한국과 시차 14시간.
낮과 밤 그리고 요일이 바뀐다.
따라서 시댁이나 친정에 전화 한 번 하려면 시간 계산 잘 해서 해야 한다.
지금은 일어나셨을까, 주무시는 시간 일까, 여기가 금요일이니까 거기는 토요일이지, 주말에 어디 가신다 했었나.. 등등
거의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하는 것 같다.
사실 생신 때도, 명절 때도, 집안 행사 때도 직접 찾아가 뵙질 못하니 전화라도 잘 해야지 싶어서.
이런 것 외에는 해외에서 우리가 눈치 볼 일이 전혀 없다.
한국에서 명절이라면 친척 어르신들이 애는 언제 가질 거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낳아야지, 전세는 언제 끝나냐 등등 이것저것 물어보시겠지만 여기선 일절 그런 이야기를 들을 곳이 없다.
솔직히 말해 우리 시댁은 너네 일은 너네 일. 너네가 알아서 해라. 자유방임주의라 시댁에서 물어볼 것 같진 않다.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친정 어르신들이 그럴 듯.
덧붙여 좋은 건
우리 둘만의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
주말엔 충분히 늦잠을 자고, 외식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고, 가끔 근교도 놀러 간다.
이처럼 토, 일요일을 오롯이 둘이서 보낸다. 근 9개월을 그렇게 하고 나니 결혼했다는 느낌보다 연애하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가끔 너무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할 땐 있어도
해외에 있기 때문에 가족 행사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거나 혹은 못 가게 되었을 때 괜히 상대방 섭섭하게 만드는 일이 없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존재하는 법.
친정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시부모님이랑 맛있는 단팥빵 먹으면서 수다 떨 수도 없다.
가족 여행은 꿈도 꾸기 어렵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놀 수도 없다.
게다가 생신 때 찾아뵈면서 인사도 못 드리는 기분.
우리만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싶은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산다면 우리 부부가 백프로 만족할 것 같진 않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모든 일에는 때가 있으니 조바심 내지 마라
고 어머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언젠가 한국에서 다같이 좋은 시간이 있을 것이고, 지금은 둘이서 더욱 좋은 시간을 보낼 때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편이 오늘은 치킨을 사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