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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섬 Oct 08. 2016

#11. 겉모습이 나를 결정할까?

사람은 겉모습보다 진실한 내면이 중요한 거야,

라고 많은 이들이 얘기하곤 한다. 식상하긴 하지만, 딱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가 의무 교육을 통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적 가치를 제대로 배웠다면 말이다. 아무리 유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내면, 즉 인성이 별로라면, 그 사람을 알아갈수록 매력은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다(사실 그렇다고 하는데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뭐, 한때 드라마에서 나쁜 남자 신드롬이 일기도 했지만, 그때 나쁘다는 주인공은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알고 보면 마음이 따뜻한 남자이다. 거기다 외모는 항상 출중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나쁜 남자 판타지를 키우는 나쁜 놈.

현실에서 인성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렇다. 능력도 없이 정치 플레이에만 능하고, 항상 뒷담화의 중심에 있고, 부모님께 막대하고, 바람을 피우고, 돈을 위해서는 법질서도 어기고, 허풍은 기본에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기분에 따라 온갖 짜증과 성질을 부리면서도 자기 잘난 맛에 살면서 타인을 깎아내리는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주위에도 한 명쯤은 있을 그런 유형의 인간이다. 이렇게 본다면, 겉모습보다 내면이 중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내면이 훌륭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려면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적어도 그런 판단이 가능할 만큼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지내봐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궁예가 아니니까. 그러니 내면이 중요하단 말은 처음 본 사람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첫 만남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단지 그 사람의 겉모습뿐이니까.   


우리는 앞선 말을 이렇게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의 진실한 내면은 중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첫 만남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겉모습이다.’ 라고.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이 있어야 그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내면을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겉모습은 대인관계에서 그런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외양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오감 중에서도 시각이 가장 많은 감각 자료를 전달해준다고 하지 않는가. 유명한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장면을 떠올려본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주인공 셜록이 타인이나 피해자와 접촉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겉모습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가 입고 있는 옷, 장신구, 신발, 헤어스타일, 피부의 상태, 자세 등등. 그리고 그는 그렇게 얻을 정보를 통해 합리적인 추론을 시도한다.  


처음 수영강습을 받던 날, 나 역시 한 사람의 탐정에 의해 많은 정보를 간파당했다. 당시 신규 회원은 나를 포함해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이었다. 강사님은 신입들을 모아놓고 다른 남자 신입 회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영 배워보신 적 있으시죠? 수영모자가 흰색이시네요. 다른 두 분은 검은색이시고.” 응? 이건 무슨 소리인가. 태권도 도복의 띠 색깔에 따라 실력이 가늠되는 것처럼, 수영모에 따라 수영 실력이 가늠되는 건가? 이상했다. 인터넷은 그런 정보를 안 가르쳐줬으니까... 현역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고급 정보였던 건가.


마치 셜록이 정보를 추리를 하는 것처럼, 강사님의 요지는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초급자들은 으레 수영복을 올블랙으로 맞춘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들 그렇다고, 조금 화사하거나 화려한 수영복 입기를 꺼려하고, 그래서 수영복만 봐도 그 사람이 초보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흰색 모자를 쓴 남성 회원님은 그래서 초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랬다, 실제로 나와 신입 여성분은 모자부터 수경, 수영복까지 모두 무늬도 없는 검정색이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급반에서도 올블랙은 찾기 힘들었다. 아니, 없었다. 그리고 강사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다음에는 적어도 모자라도 흰색으로 사세요. 조금 화사하게.”   


실력도 없는데 튀면 안 되겠다는 나의 소심함과 선택권이 없는 최저가 세트를 구매한 알뜰함이 만들어낸 콜라보레이션, 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일주일 만에 귀찮아서 안 갈 것 같다는 자신에 대한 작은 확신도 수영복 선택에 한몫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쁘면 비싸니까, 그러다 안 나가면 그 비용이 아까우니까. 수영복을 선택하는 센스가 없었던 건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강사님의 합리적인 추측이 모두 맞았던 건 아니다. 흰색 모자를 썼던 신입 회원도 초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분은 패션 감각이 조금 있거나, 자신감이 있게 색깔을 고르는 사람이었기에 흰색 모자를 선택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대략 한 달이 조금 더 지난 지금, 강사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탄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번 달에 들어온 신입도 올블랙이었으니까.    




수영복의 예시처럼 겉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더구나 항상 정답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겉모습은 분명 한 사람을 판단하는 데 많은 정보를 준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여러 정보들 외에도 겉모습은 인간의 매력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 즉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누군가를 처음 대면했을 때,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분위기가 겉모습을 통해 우선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강렬하다거나, 첫인상이 참 좋다거나, 조상님이 은덕을 많이 쌓으신 것 같다거나, 하는... 그렇기에 분위기가 주는 매력은 이후의 관계를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최초에 좋은 인상을 주었다면,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겉모습이 주는 매력이 어마어마하다면, 한순간에 사람을 매혹시켜 자신만 바라보도록 만들 수도 있다. 원빈 정도가 된다면 한번 시도해보자.


물론 겉모습이 예쁘거나 잘생겨야 한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얼굴이 겉모습의 전부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헤어스타일, 옷차림, 장신구에 모든 돈을 쏟아부으라는 말도 아니다.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려는 외모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니까. 물론 적당한 치장은 필요하다. 그 '적당히'가  얼마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다만, '적당히'에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깔끔하게만 입어라,  것 같다. 옷도 몸도 청결하게.




첫인상의 포인트는 자신만의 느낌을 풍기는 일인 것 같다. 

밝은 인상이나 사랑스러운 인상, 믿음직스럽고 다부진 인상, 성실하거나 명철한 인상, 유쾌하다거나 재밌다는 인상, 다시 말해 타인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 그런데 쉽지 않다.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분위기는 겉모습을 통해 오면서도, 보이지는 않는 무엇인 것 같다. 시각에서부터 오지만 온몸이 느끼는 무엇.


여기서 온몸이 느끼는 '무엇'은 무엇일까? 외모와 옷차림과 여타의 모든 겉모습으로부터 오지만, 그것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 무엇. 우리는 여기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다시 뒤집거나, 조금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지금까지 강조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양과는 조금 다르니까. 


아마 다음의 오래된 문구가 이 미묘한 '무엇'에 대한 혜안을 주는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상(느낌)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반영한다고. 스크루지나 놀부의 심술이 얼굴에 드러나듯이, 인류 성현들의 온화함이 얼굴에 묻어나듯이.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제대로 살아야 한다. 심술부리지 않고, 타인을 시기 질투하지 말고, 폭력적이지도 않게. 타인을 배려하고, 흔히 말하는 꽃 같은 마음을 지니면서. 


아니, 꼭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매력이란 좋음과 나쁨으로만 구분되지는 않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자신의 삶을 매력적으로 가꾸는 것이다. 타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는, 나쁘지는 않은 그런 삶으로. 


그의 삶이 새겨준 분위기야말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함부로 따라 하거나 훔칠 수 없는 그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진짜 겉모습일 테니까.




문체는 인간이다. 지금 이 글이 주는 첫인상도 매력적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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