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움직이는섬 Oct 05. 2016

#10. 오늘도 물 먹은 취준생의 하루

물 먹는 거 무서워하지 마세요. 물도 좀 먹고 그래야 실력이 쭉쭉 늘어요.      


수영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던 강사님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너무 당연해서 조언으로 들리지 않겠지만, 수영과 취업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겐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옥같이 느껴진다. 발음에 신경 쓰시길, 정말 보석 같다는 뜻이니까. 서른한 살 취준생의 멘토랄까. 그래서 오늘은 물 먹은 취준생 얘기를 준비했다.      


비록 물 천지인 수영장이지만, 수영을 끝내고 나오면 심한 갈증에 시달려 역설적으로 내 모습이 미라 같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주제로 ‘물의 맛(1)’이라는 글도 썼었고. 그러던 어느 날, 수영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응?, 어째서 나 말고는 수영 끝나고 물 마시는 사람이 없지?, 다른 곳에는 정수기가 없을 텐데.     


이런 의문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회원들을 찾아다니며 ‘왜 수영 끝나고 물을 안 드세요?’라고 묻기에는 너무 뜬금없고 어색하니까. 단지 내 경험에 비춰 하나의 가설을 세울 수 있을 뿐. 그 가설은 이러하다. ‘수영하는 동안 수영장에 있는 물을 계속해서 마시니까.’ 수영을 잘하기 위한 강사님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는 분들이 많았던 거다. 나 역시 요즘에는 많은 양의 물을 마시고 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물 먹는 걸 피할 수는 없음을 깨달았기에. 물론 대한민국이 물 부족 국가라고는 하지만 일부러 수영장 물을 마시지는 않는다.      




모든 수영 초보들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관찰한 초보들은 물 먹는 걸 무서워한다.


나 역시 그렇다. 물 먹으면 안 된다는 어떤 본능이 항상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독을 했다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는 물을 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건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의 문제다. 수돗물이 바로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단 걸 머리로는 알아도, 정말 그대로 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처럼. 그런데 이건 단지 찝찝함의 문제지 무서움의 이유는 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다. 호흡해야 할 타이밍에 물이 입으로 들어온다는 것, 다시 말해 숨 쉬는 걸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법이든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며 호흡하는 타이밍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고래가 아니기에 등으로 물을 뿜으며 숨쉴 수는 없으니까. 제때 타이밍을 맞춰도 호흡에 실패할 때가 있다. 옆 라인에서 누군가 힘차게 접영이라고 하고 있으면, 그 여파로 수영장 물 표면에 파도가 생기는 경우이다. 숨 쉬기 위해 머리를 물 밖으로 내밀었음에도 그곳이 물 밖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형 도중에 숨 쉬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주둥이로 옆 라인에서 밀려온 파도가 들이닥치는 경우가 그렇다. 그게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타이밍이었다면... 휴, 그때는 내가 폐호흡을 하는 영장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때는 백수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 영장류지 식충(食蟲)이 아니니까.      


초보들은 대게 물을 먹으면 당황해서 하던 동작을 멈추곤 한다. 아니, 모든 초보들을 일반화할 수 없으니,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 같은 초보에게 의연한 대처를 기대하긴 어렵다. 사례가 들렸으니 기침을 하며 물을 토해내야 하고, 거기다 코에 물까지 들어갔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냥 하던 수영을 멈추고 눈물을 찔끔 흘릴 수밖에.     


그렇다고 수영을 잘하게 되면 물을 전혀 먹지 않을까? 대답은 ‘NO’이다. 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물을 먹는 횟수가 줄어들긴 하지만, 상급자도 수영 중에 입으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는 없다고, 단지 초보자와의 차이점은 입안에 들어오는 물을 의연하게 뱉어내거나 삼켜도 당황하지 않고 다음 호흡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익숙해지면 물 먹어도 멈추지 않고 수영을 계속해나갈 수 있다고. 그렇다, 수영 상급자라고 아가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초보 취준생의 삶에도 목마를 날은 없다. 따로 수분 보충을 안 해도 될 만큼 취업에서 물 먹는 건 빈번하니까. 첫 입사지원서를 제출했을 당시의 순진하지만 멍청했던 내가 생각난다. 이 정도 자기소개서라면 한 번에 합격하는 거 아냐?, 라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책상 앞의 인간. 첫 번째로 마신 고배는 역시나 씁쓸했다. 울리지 않는 휴대폰, 오지 않는 메일, 분명 내 지원서를 읽었다고 알람이 왔는데... 그때 먹은 물은 나를 당혹감에 빠뜨렸지만, 그럼에도 현실감각을 깨우기에 부족했던 것 같다. 연락이 왔어도 입사 안 하려고 했어, 내가 하고 싶은 직종이 아니거든, 이라며 방어기제를 발동시켰던 걸 보면.       


그러다 물을 먹는 횟수가 두 번, 세 번, 네 번... 점점 늘어갈 때마다 취업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경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자신의 현재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고, 그런 자기를 직면한다는 건 두렵고도 불안한 일임에 분명했으니까. 탈락을 맛볼 때마다 마음은 점점 위축되었다. 초보들이 수영하다 물을 먹으면 몸이 위축되듯이.         


‘물 먹는 거 무서워하지 마세요. 물도 좀 먹고 그래야 실력이 쭉쭉 늘어요.’라고 강사님은 말했다. 그렇다면 취업은? 취업도 물을 많이 먹으면 실력이 쭉쭉 늘어날까. 취업에 고배를 마실 때마다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부분을 발전시켜야 할지,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더 나은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물을 먹는 게 조금은 달라질까.      


잘 모르겠다. 수영과 취업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


수영이나 취업이나 비슷하지 뭐가 다르겠어, 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만적인 자기 위로일 것 같아 함부로 말하기가 어렵다. 수영을 오래 하면 입 안에 들어오는 물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계속되는 취업 실패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수영장에는 옆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지도해주는 코치가 있지만, 취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더구나 수영은 즐겁지만, 취업의 과정이 즐겁다고 말하기 좀 어렵기도 하고.      


어쨌든 취업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이대로라면 한동안 물을 좀 더 먹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일단 마음가짐이라도 다잡을 수밖에. 상급자도 물 먹는 건 마찬가지니, 그런 걸로 위축되지 말자고 말이다.      




그것마저 정 안되면 고래의 생태라도 따라 하자 제안하고 싶다. 아시다시피 고래는 바다에서 살고 있지만, 포유류기에 아가미가 없다. 그래서 물고기와 다르게 바다를 헤엄치거나 먹이를 먹을 때 실수로 바닷물을 삼켜버리기도 한단다. 그 짠 바닷물을 말이다. 아무리 고래라도 바닷물을 마시고 살 수는 없는 법, 잘못 마신 물을 처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래의 해결책은 마신 만큼 배출하는 것이다. 바닷물 속의 수분은 섭취하면서 염분은 배출하기 위해 농도 짙은 소변을 보는 것이다. 잘못 남겨진 것들을 흘려보내기.    


내가 제안하는 고래 흉내내기는 별거 아니다. 계속되는 낙방으로 힘들고, 자존감 떨어지고, 미래가 불안할 수 있다. 그때는 혼자 끙끙대지 말고, 친구들을 만나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켜길.


그리고 고래고래 목청껏 놀다가, 시원하게 오줌 한 방 갈기길. 그동안 먹었던 물이 다 빠져나가도록.




무려 10화 만에 재등장한 고래 이야기라니.

매거진의 이전글 #09. 아홉 번째 파도: 시련은 피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