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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섬 Sep 18. 2016

#01. 백수의 아침을 여는 단 세 자리

백수를 가장 백수답게 만들어주는 시간은 언제인가. 취업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하며,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간. 나에게는 하루에 두 차례 그 시간이 찾아온다. 오후 늦게 일어나 침대를 뒹굴뒹굴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어느새 그 상태로 2시간을 보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리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이다.


왜, 왜,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낭비한 거니….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고는 숨 쉰 것밖에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청하는 다짐이 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뿌듯함으로 꽉꽉 채운 하루를 보내리라! 물론, 이 다짐을 지킨다면 그건 백수가 아니다. 백수의 삶은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진정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다짐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야말로 백수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최후의 조각이 아니던가. 하지만 엄마는 항상 그 정체성을 깨부수고 싶어 한다. 엄마가 밉다….


내가 수영을 시작한 것도 이런 악순환을 끊고 백수의 정체성을 탈출하기 위함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경고가 내면에서 울렸고, ‘그 무언가’가 수영으로 결정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이 많을수록 일 처리가 늦어진다는 다년간 쌓은 노하우가 작동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수영복 검색 및 구매였다. 수영복을 사면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번은 나가겠지, 라는 생각은 아마도 내 인생 최의 판단이었던 것 같다.




왜 수영이었을까? 사실 반드시 수영이었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다만 취업 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을 뿐이다. 행위에 대한 타당한 이유는 때론 사후에 추가되기도 하는 법이다. 무언가를 심사숙고해서 행동하기에는 우리가 내려야 하는 판단과 결정이 너무나 빠르고 복잡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도보로 15분 거리에 실내수영장이 있었고, 비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53,000원이었으며, 등록일은 3일 후였다. 성인반은 다양한 시간으로 운영되었고, 나는 가능하면 너무 이르지 않은 느지막한 아침 시간에 등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든 조건이 나를 위해 준비된 듯 딱딱 맞아떨어졌고, 결전의 등록일이 다가왔다.


오전 11시쯤 수영장에 전화를 걸어 남은 자리를 확인한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조급함을 느꼈다. 여석이 세 자리 밖에, 그것도 오전 7시 타임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선택권은 없었다. 그저 남은 자리라도 확보하기 위해 한시 바삐 달려가 등록해야 할 뿐. 이미 주문한 수영복 세트를 환불할 수는 없었다. 택배 반송료 만큼 아까운 게 없으니까….


가까스로 등록은 마쳤지만, 의문이 샘솟았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수영장에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어딘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체 누가 그런 이른 시간부터 수영에 시간을 쓸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말을 뉴스에서 듣기는 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정말로 많았던 건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침부터 수영을 배우려 수고를 들이는 백수가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아마도 대부분 어르신들이겠지.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생각했던 것처럼 회원 대부분이 중장년층의 어른들, 그중에도 특히 어머님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신규회원 2명을 제외하고 젊은이들은 전멸이었다. 많다고 생각했단 나의 나이가 아이돌 가수급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른 아침을 수영으로 보내는 한가로운 젊은이라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보통은 백수이거나, 반대로 우리 모두가 친해져야 할 금수저일 가능성이 높다. 아쉽지만 수영장에서는 생김새로 그 사람이 백수인지 금수저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수영장에서는 모두가 헐벗고 있어서 사회적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외양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구직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직업을 찾기란 너무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른 출근 시간에 비해 빠르지도 않은 퇴근 시간이다. 아침을 만회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한국의 직장인에게는 성취하기 어려운 바람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심지어 야근수당도 없는 그 지루한 밤과의 싸움. 이런 사실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굳이 통계자료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취업준비를 조금만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재밌는 건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이다. 매일 야근에 시달리는 친구가 오히려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라며 그런 사회 분위기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시스템을 바꾸지 못한다면 고통스럽더라도 자신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 더 편하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이 자기 내면의 울분을 지워준다는 듯이. 감정의 마비는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동요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일명, 아파테이아(apatheia)?


이른 아침부터 수영을 다니면서 알게 된 것도 있다. 아직 어둑한 기운이 남아있는 오전 6시 경에도, 벌써 많은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오르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들 사이를 가로질러 수영장으로 향하는 날이면 나 자신에 대한 이중적인 판단이 교차한다. 내가 마치 사회의 잉여존재가 된 것 같은 부끄러움과 백수이기 때문에 그들에 비해 삶을 여유롭게 꾸릴 수 있다는 이상한 만족감의 교차, 그리고 사회로 편입되고 싶은 욕망과 그에 대한 거부라는 화해하기 어려운 모순된 욕망.


아마도 이런 모순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삶이 불만족스러울 때면 언제든지 두 욕망 중 하나가 튀어나올 거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끝없는 고민의 연속, 나는 오히려 이런 삶을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야, 라고 표현하고 싶다.  


헤엄치는 게 힘들다고 버둥거리던 손발을 멈추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듯이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를 멈추면 그 자리에 가라앉을 테니까.


백수의 아침을 새롭게 열어주는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으니, 앞으로 가기 위해서라도 손발을 열심히 저으며 더욱 고민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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