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직접 찾아가 중개인을 만나보았다
여행 매거진 BRICKS Trip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시칠리아는 지속되는 인구 감소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 왔다.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성수기라 불리는 짧은 여름이 지나면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일거리를 찾아 본토로 떠나기 때문이다.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와 일자리 부족 문제도 인구 감소에 한몫했다.
우리가 시칠리아에 도착한 2021년 10월 12일부터 섬은 이미 비수기에 접어든 느낌이었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당이나 영업점들은 문을 닫아버리고 대중교통도 중단되는 구간이 많았다. 관리되지 않은 빈집들이 늘어서 있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마치 유령 도시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지방 자치 단체는 이런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1유로 집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상징적인 의미의 1유로에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집을 판매하는 것이다. 처음에 신문에서 ‘1유로 집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를 접했을 때 광고 마케팅인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시칠리아는 외부인들과 주민들이 공존해 나가는 긍정적인 사례가 많아 한국 공영 방송에서도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진짜 1유로에 파는 집이 있는지, 외국인인 우리도 이탈리아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1유로 집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 여러 마을 중 우리가 방문한 곳은 시칠리아의 배꼽에 위치한 무쏘멜리Mussomeli였다. 이른 아침인 데다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더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마을 입구의 작은 바에서 몸을 녹이면서 부동산을 소개받을 요량이었다.
주인인 마르타Marta는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짙은 눈썹을 가진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이었다. 밀도 있는 거품에 입술을 파묻고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 모금 들이키자 서늘하게 식었던 온몸에 온기가 돌았다. 1유로 집을 사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감정이 어떤지 몰라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다행히 그녀는 낯선 동양인들에게 기꺼이 부동산 중개인을 소개시켜 주었다.
10여분 후 그녀의 친구이자 중개인인 소니아Sonia가 아무 거리낌 없이 인사를 건넸다. 조금의 의심도 없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무려 한 시간에 걸쳐 세 군데의 1유로 집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마을의 중심에 있는 집들 위주로 말이다. 실제로 활발하게 1유로 집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냈다.
Q. 왜 1유로에 집을 파는가?
경제활동이나 자연재해 등 다양한 이유들로 사람들이 떠나가면서 마을이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를 겪었다. 병원이나 관공서, 학교와 같은 필수 요소들이 줄어들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내가 나고 자란 이 마을이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1유로 집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되었다.
Q. 1유로라는 금액은 어떻게 책정된 것인가?
사실 1유로라는 금액은 상징적인 의미이며, 판매되는 금액은 지방 자치 단체에 기부된다.
Q. 무쏘멜리 이외에 다른 시칠리아의 도시들도 1유로집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는가?
무쏘멜리 이외에도 다양한 도시들이 1유로 집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최초의 시작은 약 10년 전 트라파니주의 살레미(Salemi)였지만 지금은 아우구스타(Augusta), 삼부카(Sambuca), 칼타니세타(Caltanissetta)를 비롯해 약 20개의 자치 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다. 시칠리아섬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본토 마을들도 시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곳이 여럿 있다. 입주민들에게 월세나 수리 비용을 지원해주는 자치 단체도 있기 때문에 여러 도시를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시간을 두고 여러 도시에 방문하고 매물을 직접 비교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Q. 1유로 집 구입 조건은 무엇인가?
1유로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구입 후 3년 안에 반드시 집을 고쳐서 실거주하거나 세컨드 하우스 혹은 상업적 용도로 등록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여러 가지 취득세, 소득세를 고려했을 때 평균 5,000유로(한화 약 675만 원)의 비용이 들고, 집을 수리하는 비용이 별도로 발생한다.
Q. 수리 비용은 대략 어느정도인가?
집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1제곱 미터 당 500~1,000유로의 비용이 발생한다.
Q.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매물을 미리 확인할 수 있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으며 현지에 직접 오시면 더 많은 매물을 직접 볼 수 있다.
Q. 1유로 집을 구매하는 외부인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마을에 새로 정착한 주민들과 관계가 좋다. 다양한 정착 프로그램과 교류 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를 배려하고 있다. 외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 우리 마을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
무쏘멜리에서 공용주방 ‘더 굿 키친(The Good Kitchen)’을 운영 중인 대니 매쿠빈(Danny McCubbin)은 1유로 집의 본질은 ‘저렴한 집’이 아니라 ‘새로운 삶’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에서의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이곳에서 주민들과 음식을 나누고,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로 1유로 집을 통해 새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자면 예술 공방을 만들거나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 주거나 친환경 사업 등을 일궈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은퇴 후의 삶을 위해 1유로 집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새로운 삶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덕분에 ‘무쏘멜리’에는 매일 ‘희망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글/사진 김혜지(이태리부부)
파리, 로마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기록하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며 삶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투브 채널 '이태리부부' 운영 중. 『로마로 가는 길』, 『이탈리아에 살고 있습니다』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