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Jun 18. 2021

제시 인생드라마 리뷰-로맨스가 필요해 2

미칠것 같은 사랑을 해본 적 있나요

0. 떡잎부터 달랐던 스튜디오 드래곤의 <로맨스가 필요해 2>. 로맨스가 필요해=로필2로 같은 개념인양 아이콘 화 되었지만 사실 로맨스가 필요해 드라마 시리즈는 1,2,3이 있다. 윤석현-주열매라는 질기고 질긴 사랑 구도와 정유미-이진욱의 연기력+미친 케미로 로맨스가 필요해2는 거의 넘사벽 시리즈가 되어버렸다. 10대 후반 교복입는 연기부터 30대 중반까지 10대 20대 30대 30년을 아우르는 연기가 가능한 이진욱 정유미의 페이스부터 (심지어 지금도 외모 박제) 소설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재경 지희 열매 여자 3인방의 대화는 HBO 전설의 드라마 섹스앤더 시티를 떠올리게 한다.


*스튜디오 드래곤 포트폴리오-http://www.studiodragon.net/front/kr/works/portfolio_view?idx=68&class1=​​


이 드라마가 방영된 2012년에는 사실 등장인물의 대사가 화면에 글씨로 나오거나 수위가 좀 있는 시나리오로 짜인 <로맨스가 필요해2>는 정말 색다른 드라마였고, 미친 스토리 전개력 미친 연기력 미친 캐스팅으로 (연기자 김예원도 여기서 엄청 잘했음! 스튜디오 드래곤은 확실히 주연 스타파워가 아닌 주조연을 아우르는 찰떡 캐스팅을 잘하는 것 같다. 동백꽃 필 무렵도 마찬가지) 수능이 끝났던 그당시 이지수, 그리고 그 이후 사는게 만만치 않을때마다 울궈먹고 또 울궈먹는 인생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ㅠㅠ 심지어 책도삼 당시 이 드라마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PMP로다운받아 보고 스마트폰 앱까지 생겼고 그 후 몇년동안 재방송을 했다.


당시 생소한 화면 이펙트였던 주인공 대사 글씨로 나타내기. 이후 동백꽃 필 무렵 등 드라마에서 꾸준히 발전+사용된 이펙트.


1. 전형적인 회피형 남자와 불안형 여자의 연애. 그들이 어떻게 이걸 16년 넘게 지속해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일반 인간의 감정에너지로는 버텨내지 못할 설렘과 감정에너지와 스트레스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생활을 잘해왔다는 것만으로도 거의 철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19살 아무것도 모르던 백지 그자체 제시가 이 드라마를 볼때, 23살 인생의 바닥에서 자존감의 바닥을 치면서 밤을 새며 정주행을 할때, 처음 이 드라마를 본 이후 근 10년 이 된 지금 다시 볼때 그 감상이 각자 다르다. 그래서 한 드라마, 한영화를 울궈먹는걸 좋아한다.


19살의 나는 저런 사랑을 하는 것을 꿈꾸며 성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23살 의 나는 나만 이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는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며 위안받으며 공감하며 투사하며 봤었다. 5월에만 결혼식을 3개를 간 나는 (이젠 언니들 결혼식도 아니고 친구나 동생 결혼식) 어쩌면 저렇게 절절하게 서로를 놓지 않는 연애를 30대 중반까지 했는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조금 더 거리를 두고 그들의 연애를 보니, 모두의 연애가 그렇듯 각자의 미숙함이 드러난 접점도 있었고 그들이 회피형과 불안형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됬다.



2.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는 드라마 스핀오프가 많지 않던 시절 책으로까지 나왔고 가을방학의 <가끔 미치도록 널 안고싶을 때가 있어>를 대표로 한 사운드 트랙도 인기를 끌었다. 지금에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 아로하가 유행하듯이 트렌디한 가수들이나 연기자가 부르는 사운드 트랙으로 드라마의 인기와 수익을 받쳐주는 모델이 판이하지만 그땐 이것도 새로운 시도로 느껴졌음! 10년 전 고등학생들은 엠피쓰리나 전자사전에 로맨스가 필요해2 사운드 트랙 mp3파일을다운받아 들었더랬다.


로맨스가 필요해 2는 사실 내가 5-7번을 보다시피 한 프렌즈와 실리콘 밸리 드라마처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모든 신과 분위기, 등장인물들의 감정선과 대사가 내 마음에 새겨졌다.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정유미의 쨍쨍한 목소리가, 김지석의 능글맞은 대사가 음성지원 비디오 지원이 된다.

다만 글로 보다보니 활자로 그들의 마음과 생각과 발언을 더 찬찬히 음미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는데 구절구절마다 내 심장을 때린다. 과거의 나, 또는 지금의 내가 공감하는 것이다. 아마 이 책이나 드라마를 인상깊게 본 모두는 그럴 거다.


 

“나 너 좋아해, 윤석현. 생각해보니까 난 한 번도 너를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만날 밀쳐내고 거리 두고, 도대체 진심이 뭔지 몰라서 힘든데..., 근데도 난 너 좋아해. 미친거지, 내가.
(...) 근데 너... 지금 거절해도 돼. 난 가짜는 싫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순간, 나는 간절히 원했다.
한 번만 사랑이 내 편이었으면. 오늘만이라도. 제발 오늘만이라도.

<로맨스가 필요해> 중




미칠 것 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모든 연애 칼럼과 자존감 서적이, 심리 상담 트렌드는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안정형만이 안정적인 연애를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러기가 얼마나 힘든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에서도 사랑이란 의존이 아닌 독립적인 두 개인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라 했지만, 그렇게 거듭나고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불안과 회피가, 시행착오와 서투름이, 나도 모르는 내 양가 감정을 거쳐야 한다. 누군가는 그 지난한 성장의 여정 중간에서 타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컴플렉스와 끝까지 머무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결국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외로움과 쓸쓸함, 자신의 궤적을 묵묵히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우리가 걸어온 그 길들은, 그 사람들과 주고 받았던 진심들은 다소 미숙했다해도 모두 정성과 소중함이 깃든 것들이었을 것이다. 당신을 미치게 했다가, 누구보다 행복하게 했던 그 사람과 지금 함께하고 있든 가슴에 묻었던 흘려 보냈든 그 결과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정에서 미숙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런 기억과 추억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수지와 이제훈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라 했던가. 우리 모두는 순간 불안형이었고, 회피형이었고, 주열매였고, 윤석현이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고, 징글징글한 사랑이었고, 그럼에도 놓지 못해 절절했던 사람이었다


사랑했었다 열매야.
그 순간 우리는 함께 깨달았다.

‘사랑한다’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미워한다’도 ‘싫어한다’도 아니라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말의 명백한 반대말은 ‘사랑했었다’ 라는 과거형이라는 것을.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했다.

 

3. 이 책과 드라마가 주는 울림은 결국 “성장” 일 것이다. 미칠 것 같은 사랑을 미칠것 같아하면서 나이 서른, 마흔을 넘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챙기지도 말라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에 열매와 석현이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까지 돌고 돌던 감정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성장한” 모습으로 서로와 함께 나아가기를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Y,M과 함께 홈파티를 하면서 “우리가 이젠 연애를 시험삼아 할 나이는 아니지”라는 이야기를 했다. 불과 몇년 전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위 언니오빠들은 경험이 남는 거라며 연애를 무조건 해보라 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서 지금의 인생의 문턱에서 그저 연애를 시작해서 새콤달콤한 감정만 충족하는 건 이제 할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세상에 함께 맞설 사람을 찾을 때라고, Y와M과 나는 셋 다 동의했다.


드라마를 포함한 미디어의 기능 중 하나는 나의 모습을 투영하는 객체를 제 3의 모습으로 거리두고 보게끔 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성장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공감을 통해 치유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 나만 이런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드라마는 일주일이라는 텀을 두고 시청자와 밀당하면 함께 울고 웃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10대 소녀 제시는 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했고, 20대 초중반의 제시는 드라마같은 사랑을 하면서 아파하고 공감했으며, 지금의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그당시의 나, 어쩌면 아직 나에게 조금 남아있는 조각과 거리를 두며 미숙했던 나를 안아주고 위로하되 이제는 좀 안정된, 성숙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랑을 대책없이 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제일 집중해야 하는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다  비록 계속 아프고 서투른 지점을 만날 지언정 그런 나 자신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여정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지지고 볶으며 결국 성장한 모습으로 과정과 결과를 모두 함께하면 좋겠지만, 정말 우리가 성숙해진다면 알게 될 것이다. 때로는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고 그 뜻을 존중하기 위해 손을 놓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을.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사람대로 감사한 사람이고 내 옆에 지금 있어주며 함께 나아가는 사람은 사람대로 감사한 사람이다.


<로맨스가 필요해> 남겨진 이야기 배우 이진욱 에필로그 중

우리에게는 항상 어떤 로맨스든 로맨스는 필요합니다.
더불어 이 로맨스도 같이 권해 드립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평생 지속되는 로맨스다.”
-오스카 와일드


돌이켜보면 내가 열매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은 내것도 아니고, 다른 남자의 것도 아니었던 순간이었다. 바로 이 순간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