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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29. 2024

그시절 우리가 의지했던 사수

어느새 만 8년 경력을 채워가면서 더이상 사수가 저에게 붙기보다는 누군가의 멘토와 사수를 하는 연차가 되었습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이제 좀있으면 신입직원이랑 나이차이난다고 사수도 못하게 될 연차네요. (너는 그냥 경력직 버디나 해라)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신입사원의 워라밸은 팀바팀도 사바사도 아닌 사수가 거의 200% 정도 결정을 합니다. 사회에 처음 나와서 얼타고 있을때, 아무리 팀원이나 주위사람들이 힘들어도 괜찮은 사수만 만나면 일도 제대로 배우고 소프트랜딩을 할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사수가 없거나 이상한 가스라이팅 하는 사수를 만나면 다른게다 괜찮아도 삶의 질이 거의 지하를 뚫어 내핵까지 다다라 퇴사를 고민을 하게 되죠. (책임 안지는 사수책임 도시괴담 들어보신분..?)


그땐 이사람 없으면 안될것 같았는데 사수가 부사수를 보통 한1년정도 봐주니까 좀 지나면 어느새 나도 용맹한 전사가 되어 치고들어오는 잔업과 여러 요청들을 무찌르는 사회인이 됩니다. 아무리 내가 잘 적응했다 하더라도 어쩌다 한번 사수를 복도에서 만나거나, 길가다 만나면 참 반갑습니다 (멘토도 해본 입장에서 내 멘티 어쩌다 만나면 나도 반가움).


아무리 그래봤자 회사사람이라지만 사수와 부사수는 글쎄요, 평생인연보다는 멀지만 직장동료보단 가까운 그런 특별한 시절인연인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서툴고 혈기 넘치던, 꿈은 많고 내공은 부족해 지금보다 더 많이 넘어지고 일어날때 제 옆을 든든히 지켜주셨던 사수분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참 사수 운이 많았던 사람이네요. 쓰다보니까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도 한데 여러분의 최고의 (또는 최악의) 사수 이야기를 댓글로 들려주세요!



1. 스타트업 광고회사의 C 차장님

뭐 그냥 체험형 인턴 이런거 빼고 이제까지 회사다운회사생활 계약직 경험부터 세보면 총 4번의 회사 경험이 있습니다. C 차장님은 제가 23살 처음으로 7개월 정도 계약직 광고회사 AE로 일하게 되었을 때 만났던 사수님입니다.

그때 제가 대학교 휴학하고 체험형 인턴 3개월하다 처음 입사해서 근무한 회사 경험인데 이제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풍파와 시련을 다겪은 찐 일잘러 중소기업의 차장님이 아기아기한 제시를 만나서 얼마나 어려보였을지와 어떻게 그렇게 한참 어려보이고 실수많은 아이에게 인내심 많은 자세로 차분하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는지 지금생각해봐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금 제가 한국나이 기준으로 31살이니까 딱 그때 차장님 나이정도 되는데 아마 저였다면 너무 현저한 내공 차에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디렉션을 부사수에게 주며 지랄을 몇번하고 내가 아직까지 사수할 짬이냐고 대표님한테 한두마디 하고도 남았을텐데 이분은 그런게 없어도 전혀 없었습니다. (천사신가요?) 


아시겠지만 사회생활을 초년생이 처음시작할때 부족한건 순수한 업무능력 그뿐이 아닙니다. (그건 당연히 못하는 거고...) 그 모든 부족함을 짬이라는 단어로 뭉개버리긴 좀 그렇고, 유관팀와 해외 고객 등 각각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와 사내 정치 알력다툼 사이에서 현명하게 회색분자로 존재하는법 그리고 거래처를 구워삶아 안되는것을 되게하는 능력 등등이 참 많은걸 결정하죠. 물론 업무능력 없이 그런 소프트스킬로만 먹고살수만은 없겠지만.


당시 제가 다녔던 회사는 중견기업 규모의 국내외로 이벤트 마케팅을 대행하는 회사가 스타트업처럼 자회사 개념으로 차린 이벤트마케팅/디지털마케팅 전문 부띠끄 에이전시였습니다.

구글 애널리틱스와 구글애즈, 믹스패널, 앰플리튜드가 처음으로 한국에 상륙하고 지금은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말이 생기고 클래스101/패캠 강의도 많지만 그때는 그런것도 없어서 구글 애즈영어 백서 보면서 혼자서 하고 에러생기면 직접 미국 구글 팀에 티켓 올려서 하던 그런 때였는데 이벤트 마케팅 PM 출신으로 시작해서 디지털 마케팅 스킬까지 바로 독학으로 익히신 차장님이 이제 생각해보면 참 괴물이다 싶네요. 아무튼 그런 건 제가 아무래도 빠른 대학생이었고 하니까 빨리 익혔는데, 회사생활 스킬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디지털 팀이었던 제가 10년 넘게 현장 행사대행만 해온 이벤트팀에 제가 아는 걸 설명하는 능력, 고객 미팅 따라가서 다다다 쏟아내지 않고 고객들이 원하는 언어와 단어로 어떻게 우리가 당신들을 도와주고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차분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능력,  두 부서 간에 은근한 알력다툼에 무해하고 중립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이야기하는 방법, 그리고 나보다 직급 높은 사람과 저보다 늦게들어왔지만 정규직으로 지내는 분들에게 어떤 커뮤니케이션 웨이로 이야기 해야 하는지, 하다못해 커피를 차장님이 두잔 사서 두손으로 들고 오시면 문을 끝까지 제가 잡아드린다거나 대표님이 적당히 야근 마치고 가라고 하면 눈치없이 끝까지 있어야하나 하고 끝까지 있던 시절에 차장님은 정말 친절하고 알아듣기 쉬운 방법으로 제가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가스라이팅과 본인의 가치관에 따른 개인적 의견 제외 상도라는 게 뭔지 알려주셨죠.


그 전날 야근을 거의 새벽까지 해서 좀 지각한 걸 옆팀 팀장님이 한소리하시면 덮어주시기도 하고, 가끔씩 외근이나 식사 자리에서 둘이서 있을때 슬쩍 식사나 커피를 사주시고 타이밍 맞게 힘든 건 없냐 케어도 해주셨고. 여러 중소중견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중간에 쉬실때 카페도 맡아서 경험해보신 찐 시니어였는데 한 3개월 정도 계셔주시다가 다시 학교에 가시겠다고 퇴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수가 없어진 제시는 혼자서 영어로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하고 팀장님과 둘이서 직접일하며 강한 계약직으로 거듭났습니다 (...)


이제까지 제가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 회사보다 더 큰 규모의 회사들에 입사도 했지만 그때 그 차장님만큼 일을 잘하시고 나이스한 분을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취준생일 때는 크고 유명한 회사에 일잘하는 사람이 모여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몸으로 익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고, 그 4개월동안 한 10년정도 중견중소를 다니면서 차장님이 몸으로 익힌 요렁과 일하는 기술을 정말 많이 전수받았습니다. 그땐 그게 귀한 건줄도 몰랐는데 그 이후 제가 입사한 회사들에서 엔트리레벨/주니어 레벨인데 주니어같지 않다, 빨리 적응한다라는 칭찬을 참 많이들었는데 돌아서 생각해보면 C 차장님이 그걸 다 만들어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퇴사 이후 그래도 생일이나 이럴때 한번씩 연락 드리다가 지금은 연락이 끊겼는데 어딜 가시던지 C 차장님은 좋은 결과를 거둘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인품이 좋고 일 잘하시는 사람이 잘 안되면 정말로 이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닐까요.



2. 글로벌 핀테크 스타트업의 O 마케팅 매니저님

저는 퇴사 후 싱가폴에서 인터네셔널 광고 컨퍼런스 student delegate를 하고, 국제대와 언론홍보 과목을 들으며 한 학기를 마쳤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경력을 좀더 살리고 싶어서 학교에서 했던 작업물과 사이드프로젝트와 직전 계약직 경력을 가지고 저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여러 스타트업과 광고회사에 저는 면접을 봤습니다. 당시 구글애즈와 앰플리튜드 등을 할수 있는건 희소성있는 스킬이었으나 열정제시의 혈기가 끓어 넘치고 솔직함이 하늘을 뚫던 시절이라 큰 회사와는 제 성향이 잘 안맞았고 주로 스타트업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던 기억이 나네요.


어찌저찌 좋은 평가를 인터뷰에서 받고 인터뷰 자리에서 제가 거기서 뭘할수 있는지와 회사 차원에서 앞으로 뭐가 필요할지 인터뷰어들과 머리를 싸매고 sincere 하게 고민했던 느낌이 참 좋았던 회사에서 글로벌 디지털 마케터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선배들이 창업했던 초기 핀테크 product 회사였는데, 지금은 100명이 넘고 수익도 잘 나고 있지만 그땐 막 시드투자와 시리즈A를 받아 초기멤버들이 회사의 기틀을 잡아가며 시행착오하던 시절이라 아마 지금 그회사를 다니시는 분들과 제 경험은 많이 다르실 겁니다.


아무튼 그땐 미국과 동남아 포함 5~6개국에 서비스하던 제품이었으나 총 직원이 30명이 안되서 일당백들이 코워킹 스페이스 제일 큰 사무실 빌려서 여러 팀원들이 같이 어울리며 일하던 때였는데, 그때 저를 채용했던 마케팅 전체 팀장님이 있었고, 그 아래 line으로 외국인 직원분들과 저를 함께 관리하는 매니저로 O 님이 계셨고 저의 사수가 되어주셨습니다. 어찌되었던 아직 entry level이어서 제가 마케팅 플랜 집행에서 실수가 나거나 했을때 팀장님께 잘못을 리포팅할때 옆에 같이 계셔주기도 하셨고, 제가 계약직 주제에 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너무 몰입해서 땅을 파고 있을때 한번씩 편의점에데리고 갈때나 커피를 살때 제 몫을 다 사주시고 유관팀의 다른 분들에게 저를 소개해주시는 등 참 대단하고 감사한 사수였습니다.


이분은 엔터테인먼트 연예기획 회사를 다니다가 스타트업 씬에 오신 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스타트업의 C 차장님보다는 저와 나이 차이가 적게 나고 3-5년 정도 딱 차이가 나는 사회 선배 사수가 한명 있다 보니까 제 직급에서 필요한 소프트 스킬을 익힐수 있었습니다. 스타트업과 초기 빌딩되는 디지털 혁신팀의 맹점은, 많은 일을 책임지고 해야 하지만 이것저것 다하다 보니 고생은 했는데 돌아보면 개인 경력과 strength 관리가 안되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마침 대리급에서 몇번 이직도 해보셨고 그저 네, 네 하는게 정답만은 아니라는 걸 아시는 O 매니저님이 중간에 서 계셔 주셨기에 업무 분장을 확실하게 했고 그걸 옆에서 보면서 그냥 많이 기여하고싶은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수 있었습니다. O 매니저님은 당시 제 포지션에서 회사 기존 인물들이 못보는 것을 봐달라고 했고 그런 포지셔닝을 바탕으로 제가 어떤 업무를 하는 것이 저 개인에게, 그리고 회사 차원에서 이득이 될지를 지혜롭게 갈라주셨습니다. 그게 나중에 대기업에 가서도 무조건 Yes 맨이 되서 그저 예쁨 받으면서 이용당하고 고생만하지않고 내 커리어는 내가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앞날을 헤쳐나가는데 큰 영향을 줬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서도 한번씩 인턴 분들 멘토링 등을 하게 될때 이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때 어떻게 해주셨지 등을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각자도생 사회가 되면서 사수해봤자 월급 안오른다 이런 이야기 요즘 좀씩 나오는거 같은데 ... 물론 사수나 멘토링을 도맡아하시는 분들이 회사에서 좀더 그 공적을 인정받고 보상받았으면 좋겠지만 그것과 다른 이야기로 누군가의 훌륭한 사수가 되어주는 것은 결코 전혀 의미가 없는 일도 아니고 나에게 도움이 안되는 일도 아닙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으로서 한번 더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고, 저같이 날뛰는 야생마 같은 아이를 그래도 사회에서 밥벌이하고 주위에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주기도 합니다.


본인도 초기 스타트업 급여에  본인도 넉넉하지 않고 앞날이 불안함에도 부사수의 앞날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저를 참 많이 인정해주고 아껴주던 O 매니저님은 제가 만났던 분 중에 제일 좋은 분 중 한분입니다. 그분에게 보살핌 그 자체를 받았던 8개월정도의 경험은 나중에 제가 멘토링을 한다거나 할때 제 기존 사수분들로부터 받은만큼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했고, 나중에 제 후배님들이 그리고 동생들이 사회에 나왔을때 내가 겪었던 부조리를 조금이라도 줄여주는 선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했고, 지금도 더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가는 구성원 중 한명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회사에서 O매니저님이 함께 다니시던 그 대리~과장 직급의 집단에 저를 데리고 다녀 주셨는데 그 분들이 모두 O매니저님을 좋아하셨기에 저를 받아주셨고 당시 아직 entry level이던 저에게 많은 조언도 해주었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연차라 그것들이 practical 한 레벨에서 요령이 생기게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 조언들을 바탕으로 25살짜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향후 3년 내의 변수들을 폭넓게 고민해보고, 저는 그 회사를 퇴사한 이후 싱가폴에 가고 그 이후에도 용기있게 외국계 대기업으로의 커리어의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O 매니저님은 그때 함께 일했던 외국인 직원분께도 C-level들에게도 좋은 평판과 신뢰를 고루 받던 분이었는데 결국 일을 너무 잘하는 순으로 퇴사하는 데가 회사라고 제가 퇴사하신 후에 그 회사를 나가서 다른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한번씩 연락드리는데 나중에 제가 받은 걸 보답 드릴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3. 외국계 대기업 신입공채 기장이었던 J

제인생의 마지막 사수였던 J 도 제가 만나봤던 제일 좋은 사람 중 한명입니다. 당시 초기 스타트업만 다녀봤던 저는 대기업 특유의 나이스에게 말하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고 돌려말하는 한국적인 화법의 사용이나 요령도 부족했고, 회사의 서로 다른 팀은 각자 다른 KPI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모든 것을 유연하게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같이 미친듯 일해서 깜짝 놀랄 결과를 내는 경험만 있다 보니 워킹맘이나, 뭐 꼭 회사 일과 퍼포먼스가 인생의 우선순위가 아닐 수 있는 동료들이 인간적으로 가져가야하는 가장으로서의 부담이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거나 일과 삶의 균형이 필요한 다양한 구성원과 일하는게 처음에 힘들었어서 실제로 보수적인 조직 내에서 초기에 제 인상도 Maverick 이다 보니 조직내 저에대한 호불호가 엄청 갈렸었습니다.


사실 J는 제 공식적인 사수는 아니었고, 제 공채 입사 동기의 사수였고 다른 팀이었습니다. 다만 공채 1기수 차이 이기도 하고, 유관팀으로 옆팀에 있었던 분이었는데 어찌 되었든 저도 수습 3개월때 그분의 케어를 받았고 수습이 끝나서 옆 팀으로 공식 발령을 받은 이후에도 많이 신경을 써 주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돌아서 생각해보면 어찌되었던 공채출신 신입사원이었을텐데 이렇게 일을 잘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잘했습니다. 회사에서 나오는 교육이 참 많은데 IT 회사 사람들은 그런게 참 힘듭니다. 일도 많은 곳인데 고객과 파트너와 회사 유관팀과 상사는 모두 나를 실적으로 쪼으고 뭐 하달라는 사람은 많은데 기술이 사람을 앞서 바뀌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쪼들리는데 그분은 교육과 실적과 인성 모든 면에서 앞서가셨습니다. 미국 대학과 경쟁사 출신 경력을 바탕으로 영어도 잘하셨고.


모든 크고 오래되고 보수적인 회사가 그렇듯이 그때 다녔던 회사도 아직 옛날 사고방식에 갇혀서 신입사원들을 밀레니얼세대 버릇없다고 가스라이팅 하는 분들도 계셨고 내가 할일도 아닌데 짬처리를 하시거나 무조건 요청사항을 때려박는 분들도 계셨고 메일과 슬랙에 전혀 답변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고 이게 나의 일인데 왜 새로운 일을 벌리냐고 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다고 경력직 출신 분들이 신입을 챙겨주는 것도아닙니다. 당시 제 회사는 업계 3위~5위에 포진하는 곳이라서 먹고살기힘든곳인지라 경력직분들도 그나마 먹고살만한 브랜드 끼고 있어야 누가 누굴 챙길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외국계 기업은 사수문화가 없고 각자도생하는 곳이라.. .그래서 첫 커리어 시작할때 외국계기업이 안좋다는 말도 있고 저도 어느정도 동감합니다. 중고신입아니었으면 저도 참 힘들었을거같고 지금처럼 그 근무 경험을 제 커리어의 디딤돌로 스스로 삼는 힘도 없었을거같습니다.)


그와중에 J 선배는 저와 회사의 중간 쿠션이 되어 주었습니다. 큰 회사는 한 개인을 생산성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일에서 의미를 찾기 힘든데 어찌 되었던 열심히 하고싶고 잘해보고 싶은 직장 선배가 중간에 있었고 그 사실이 적응과 꿈의 중간점을 타협해나가느라 힘든 제시에게 많은 위안과 지표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퇴사할때 그 회사에서 제가 계속해서 꿈을 꿀수 있게 해준 분이 선배였고 감사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때 선물을 드려도 제가 드려야 할텐데 그분이 먼저 고생했다고 다가오고 선물도 메시지도 주셔서 마지막까지 그 인성에 반했던 기억이 나네요.


회사 생활 중에서도 어쩌다 제가 너무 급진적으로 말하면 알아듣기 쉽게 따로 저와 그렇게 하면 저희팀이 많이 힘들어진다는 상황을 시간을 내어 설명해주시기도 하고 (회사를 다녀보면 알겠지만 따로 시간을 내어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은 천사의 징표입니다), 너무 갑자기 이니시에이티브를 드라이브를 하면 이런 큰 회사, 여러 조직이 얽혀있는 곳에서는 당황스러울 수 있다는 점과 도박하듯 밀어붙이기보다는 보다 세련되고 현명하게 큰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수 있게끔, 제 직급에서 어느정도의 책임을 지게끔 상황을 만들어가는게 맞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모든게 비굴과 권위, 회사 연공 서열에의 복종이 아닌 논리와 이해로 타 팀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제가 제 생각이 짧았다고 인정하고 더 나은 협업 자세를 모색해 나가는 데 받침점이 되어주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가 조금씩 변하면서 다른 유관팀원분들과 더 잘 지낼수 있게 되었고 한 1년에서 1년반 정도 지나자 좋은 평가를 여러모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늘 좋은 결과는 스스로가 직접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각각의 turning point에는 지금 당신의 태도가 터닝해야한다고 알려주는, 그리고 지도해주는 귀인이 있습니다. 제가 외국계기업의 다른 분들과 성향이 달랐던 처음시기에 적응이 힘들때도 주위 다른 사람들이 J 선배를 좋아해서 다같이 키친에 앉아있을때 같이 간식먹자고 불러주시기도 하고, 아무도 프로젝트를 안하려는 신입사원이 뭘 하고싶다고 하면 본인이 아는 네트워크의 다른 차장님 팀장님들을 모아서 TF 미팅도 소집하고 같이 Progress도 지켜봐 주셨죠.


지금 회사가 힘들다 힘들다 해도 세번째 회사 다닐때 생각해보면 일을 배울수있는 구조도 아니었고 좋은 어른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어른도 있어 착취도 있었고 이제생각해보면 제가 할 필요 없던 일도 많았는데 그 열악한 곳에서 J 선배는 조직에서 제공해주지 못하는 많은 comfort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회사의 자원인 건데... 한번씩 식사도 사주시고 늘 밝은 모습으로 여러 유관 팀원분들과 팀장님 전무님들에게 신뢰를 사던 J 선배는 제가 퇴사할 시점에 비슷하게 미국계 다른 IT 기업의 세일즈로 이직했다가 마케팅으로 포지션을 변경하셨는데 역시 이래서 세일즈 이바닥이 너무 착하시고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다 나가게 되는 구조인가 싶어 슬프기도 합니다.
 


마무리

좋은 사람 좋은 사수는 그렇게 그사람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신입사원 시절 돌아 생각해보면 고삐 풀린 망아지 그 자체였는데 그분들 덕분에 지금 사람이 되서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제가 받은 만큼 제 후배님들한테 돌려주려고 늘 노력했다고는 하는데 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하하.


오늘도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고생하시는 부사수님들과 부사수들로부터 욕을 먹든 존경을 받든 어찌저찌 사수로서 고군분투 하고 있는 대리 과장님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이게 다 뭔가 싶어도, 사수-부사수 생활은 생각보다 회사의 많은 것들을 바꾸기도 하고,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각 이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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