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May 21. 2024

최근의 대화

오랜만에 캐주얼한 글

앞만보고 쉼없이 달리다 보면 서로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함께 짚어주는 사람과의 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유익한 사람과의 대화는 신뢰할수 있는 내 밖의 시각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해 메타인지를 하는 장이며, 그러한 메타인지는 자기방어를 겸손히 무너뜨린 채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과 반성을 하게 하고, 또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라고 하면 잊고있던 내 삶에 대한 만족과 인정을 되새기게끔 한다. 욕망에만 충실한 세상 속 깊은 식견으로 파고드는 사람들과의 최근 귀중한 대화에서 나온 것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본다.



1. 노마딩,유연근무제가 없애는 "단절의 경험"

제대로 쉬지 못한게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근 몇년간 내가 쉬어야해서 쉬었던 적이 있었나…. 사실 이렇게 사는데 너무 익숙해져서 오랜만에 일주일 넘게 자리를 비운 한달 전 휴가를 가기 전까지는 지쳐있는지도, 내가 "완전한 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지 몇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했다. 지인 결혼식을 후루룩 소화하고 이제 내 휴간데, 내가 이렇게 쉬어본게 얼마만이지?하는 생경한 느낌. 세보니까 진짜 한 2019년인가 2020년인가가 마지막이더라.


디지털 노마딩을 근무의 형태로 삼고있는 B와 요새 서로 잠을 못잔다는 이야기를 했다. 계속해서 뭔가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 쉼과 일이 합쳐져서 수면, 여행(=쉼)의 상태에도 뭔가를 계속 해야 할것 같은. 그니까 이래서 워케이션도 자주 가면 안좋다. 정말 다 내려놓고 가질 못하니까. (사실 난 워케이션이 아니고 휴가를 갔지만 사람들이 계속 전화를 해서 워케이션이 되버린거지만 어쨌든 여러모로 단절과 분리가 참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안하면 정말 휴가를 하나도 못가니까 일단 랩톱을 안고 가긴 가는데 결국 다시 독기에 가득 찬 시간을 어찌 되었던 휴가 중에 끼워 넣게 된다. 근데 그렇다고 자리에 내가 없어서 일이 안될걸 훤히 알고 계속 전화와 메시지가 오는데 모른척하고 있는것만도 그것도 못할짓이기도 하고.. 이건도대체 어떻게... ㅠㅠ


감사하게도 이번 휴가는 내가 정말 지쳐 보이는게 주위에서 보였는지 우리회사의 팀원뿐 아니라 타팀원분들, 심지어 고객과 파트너사분들도 내 휴가를 지켜주시고 연락을 최소한으로 해주셨다. 감사합니다. 이래서 인류 역사상 이제까지 이어져 온 출퇴근으로 이루어진 근무습관도 부조리도 있겠지만 사실 다 그렇게 긴 세월 이어져 온 이유도 있다. 어찌되었든 퇴근하면 일은 끝이고 쉬니까. B와 나는 앞으로 계속 일과 삶이 합치된 Gray area가 가득한 삶을 살겠지만 그래도 우리도 사람인지라 완전한 분리도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2. 아웃소싱할수 있는건 하자

살아보겠다고 7-8시쯤 퇴근해서 한두시간 운동을 하고 다시 집을 와서 회사일을 하고 새벽에 집안일을 했다. 할게 뭔가 계속 있는 삶. 이런 걸 하면서 애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워킹맘은 도대체 어떤 삶을 .... (말잇못)  독립하고 전세집을 꾸리고 나서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게 내 인생의 제 2의 일이 됬다. 바쁘니까 집안이 어지러워지는데 내가  할일을 계속해서못하고 있다는 느낌과 behind the schedule 하고 있다는 촉박감과 일단 집이 더러워서 망가진 상태에서 집에서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멘탈은 극악의 vicious cycle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시간이 좀 나서 하루 내내 옷정리하거나 청소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고싶은것도 해야하는 것도 많은, 시간대비 수지타산을 따지는 예민한 상태의 나는 그것도 싫었다. 하루종일 옷장정리나 화장실청소를 하느니 이시간에 아웃풋이 분명한 일을 해야할것같고, 이거하느라 하루정도 못놀러가고 하다보니 집안일은 웬지 시간낭비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시간을 써도 아깝고 예민해지고 긴장을 덜기가 힘들었다.


집안 살림 다른 사람 손에 맡기는거 정말 싫어하는데 삶의 여러 부분에서 굳이 사서 스트레스 받는 나를 보며 J는 청소연구소 앱이나 다른 걸로 클리닝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했다. 어차피 내가 다 할수 없는 일들이라면 그중의 일부는 아웃소싱 할수 있는 건 좀 아웃소싱 하라고. 직장에서 하는 일은 아웃소싱 못하지 않느냐. 할수 있는 task는 가격이 합리적인 선이라면 그 task라도 아웃소싱을 해서 전반적인 to-do 리스트의 완성도를 높이라고.


생각해보니 내 시급과 일급을 돌아보면 휴가내고 대청소(실제로 이런적도 있다) 하는것보다 사람을 쓰는게 경제적으로도 더 효율적이긴했다. 체력과 정신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새벽에 이악물고 피곤한 몸 이끌고 되지도 않는 청소하고 다음날 더 피곤하게 일어나는 건 더이상 못하겠다싶었다. 아무리 좋은호텔에서 쉬고 와도 집안이 쓰레기통이면 여행의 의미가 없다. 여행의 진짜 의미는 거지같은 현실을 탈출하는 일탈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설렘을 여행지에서 가져와 나의 삶에 불어 넣어, 전보다 다른 고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거지같은 집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놀러다니고, 나의 삶의 근간이 되는 집을 방치할수는 없었다.


돌봄노동의 위탁이 아닌 완전한 내 삶의 책임을 내가 다 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안된다면 한계를 인정하고 누려보는 것도 방법이겠지, 라는 생각 (사실상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그것밖에 없긴했다). 한달에 한번 클리닝 서비스 쓴다고 해서 내가 설거지나 빨래같은 daily chore를 아예 안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결국 한달에 한번씩은 청소연구소를 쓰게되었는데 그로인해 드디어 집안일의 균형이 잡아졌다. 


회사일이 정말 밀리거나 부모님 댁을 돌아보느라 주말 양일을 쓰거나 몸이 아프거나 했을때 한달에 한번 정도 클리닝 서비스를 이용해 주면 스트레스도 덜받고, 집에서 완전히 쉴수 있었고, 또는 아낀 시간으로 공부를 하거나, 주말 중 하루는 나를 위해 온전히 레저 등에 쓰는게 가능해 졌다. 청소연구소 창업해주신 연현주 대표님은 카카오와 다음, 엔씨소프트 출신의 창업자이신데 역시 아파본 사람만이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정말 바빠본 사람만이 얼마나 집이 거지꼴이되는지도 아나보다. IT인의 말도안되는 워라밸을 구원해주는 이런 서비스를 창업해주셔서 압도적 감사를 보냅니다.



3. 알잘딱깔센, 이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작년과 올해 미친듯이 빠릿한 삶을 살다 보니까 종종 짜증이 났다. (특히 작년) 

천성이 성마르고 급한 나는 여유로움을 유지하고 갈고닦는데 아무래도 평생의 숙제를 지고 가는 사람인가 보다.


운전하다보면 본인의 기질이 나온다고들 한다. 수많은 사회화와 교육으로 길들여져 본인도 잊고있었던 본성이 여기서 나오는데, 도로 운전의 우발적인 변수에 반작용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이성을 통한 습관적인 반응보다 기질적고 본능적인 무의식적 반응이 일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아닐까 싶다.


같은 맥락에서 업무 환경에서도 우발적인 돌발 상황이 생겼을때 내부의 추동이 강한 나는 종종 기질적인 반응이 일차적으로 일어난다.

계속해서 말이 바뀌는 상대 거래처의 담당자 말에 제안서를 고치기를 수차례, 내가 이걸 이렇게까지 해줄일인가? 라는 못난질문을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아 왜이렇게 일을 알잘딱깔센 하게 못하지. 내 부사수도 아니고 내가 나보다 경력 많은 다른회사 사람한테 이 숫자를 되도록이면  언제쯤 확인해달라고 내가 일일히 이야기를 해야하나?  진짜 내가 이래서 누누히 성격 좀 까다롭더라도 손끝 여문 사람이 그저 무르고 속도감도 깔끔함도 없는 사람보다 낫다고 백만번 말하지 않았나 난 왜 이런 힘든 사람들하고만 일해야되지...  


 이러다가 왜 살지, 까지 가는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류들은 해봤자 짜증만나지  나에게 그어떤 도움도 주질 않는다. 다행히 경험을 통해 이런 질문이 의미가 없다라는걸 깨달은 나는 요즘 알잘딱깔센,의 폭력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참 힘들던 사회 초년생 시절 이리 저리 구르며 사회속 그 미묘한 기준점들을 캐치하고 그 기준을 아슬아슬하게 줄타며 딱 센스있는 결과물을 내기까지, 적절한 description과 대화로서 논리적으로 나 자신을 갈고닦아 나가지 못함에 대해서 느꼈던 그 어려움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그때 바쁘니까 알아서 좀 해오라던 과장님, 차장님들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설명해주는, 프로젝트를 부드럽게 완성하기 위한 성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보는 요즘이다. 무조건 열심히 살아라고 강요하는 문화가 폭력적이듯이, 왜 이런 기본적인걸 못하느냐고 터뜨리는 소통도 폭력적일지도 모르니까. 만약에 상대 측의 섬세함이 부족한 일처리로 뭔갈 못하게 되었으면 그대로 못하게 두거나, 정 이끌어 가야한다면 문제 해결을 위해 감정을 빼고 개선점을 이야기하면 된다. 내 입장을 설명해줄 수는 있겠지만 굳이 나의 억울함을 타인에게 전가할 필요는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더 많이 헤어지기를, 그리고 더 많이 만나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