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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Feb 11. 2024

우리가 더 많이 헤어지기를, 그리고 더 많이 만나기를

2024년 2월 11일, 흑유재에서 드림

지금은 오후 19 시 24분 연휴의 세번째 날 밤, 흑유재입니다. 조용히 집중하려 할때마다 고소한 향의 커피와 따듯한 쌍화 뱅쇼를 마실수 있는 곳인데 연휴라서 사람은 많고 쌍화차 재료는 떨어졌다고 하네요. 왼손 무지 인대 부상은 악화되었고요. 그래 이래야 내 연휴지… 하지만 모처럼 남들 쉴때 저도 쉴 수 있고 좋아하는 따듯한 공간에서 깊게 숨쉴수 있음에 감사해보려고 합니다. 원래는 지금 호이안에서 3일 일하기 시리즈 다음 회차를 적어야 하는데 꼭 이렇게 뭔가 할게 있을 때 다른 글이 잘나옵니다.


그래서 호이안은 잠시 미뤄놓고, 요즘 좀 크게 느꼈던 인간관계 유효기간 관련으로 먼저 글을 씁니다.

https://youtu.be/-6bIvajKGd0?feature=shared

출처- 유튜브 미키피디아

구글 코리아의 전 GM이자 현재는 프리랜싱과 제가 전에 일했던 센트비에서 고문 역할도 담당해주시는 미키 님의 유튜브 채널을 종종 봅니다. 주로 경제적 자유나, 미국 주식이나 커리어 관련으로 보는데 특이하게 알고리즘에 인간관계 관련 글이 뜨더라고요. 이건 아마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 요새 주 관심사를 읽어낸 딥러닝의 승리거나 제 보이스를 수집해서 광고를 하거나 둘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2019년, 제가 아직 해방촌에 살때 아래와 같은 글을 썼습니다.

https://brunch.co.kr/@jessietheace/184


세상사 제맘대로 되는건 많이 없었지만 제가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만큼은 있는 힘껏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어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 변화가 많고, 항상 스스로를 혁신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됬죠. 그 분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잘되고 있고, 만약 현재 일시적으로 minor setback 을 경험하더라고 결국 이겨내고 잘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젠 저만 좀 잘되면 될것같네요. 어느날 갑자기 훌쩍 떠나더니 세계 30위권 안에 드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모여있는대학원에 가거나, 계속 포닥으로 근무를 하거나, 국내에서 외국계 회사를 다니다가 어느날 미국으로 건너가 잘 자리잡은 엔지니어 분들도 계시고, 다시 한국에서 가족이나 등등의 이유로 들어와서 사는 분들도 있는데 이렇게 시야가 넓은 분을 한둘씩 더 만날때마다 긍정적인 자극도 많이받고 무엇보다 좋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멋진 삶을 꿈꾸는 건 누구나 하고싶습니다. 문제는 그 외의 것들입니다. 돈은 어떻게 해결할건지, 갱년기에 접어드는 부모님과의 바운더리를 잘 설정하고 거기에 너무영향받지 않되 케어하며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확보하는 법, 비자, 계속해서 높은 레벨로 올라가면서 내가 자격지심을 가지지 않는법, 열심히 살되 즐거움을 잃지 않고 부지런을 지켜내는 것, 교수님 사이의 정치 단에 서 나의 포지션 같은 그런 지지부진 하나도 멋지지 않고 꿈을 좇고싶지 내가 이런거 하려고 열심히 산거 아닌데? 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내가 원하는 삶을 쟁취해나가는 진정한 단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벽들에 부딪혀 제가 너무 힘들고 고민이 많을때 긍정과 한단계 높은 resillience를가진 분들과 교류하며 참 많이 도움 받았습니다. 서로 정보도 주고 받았지만 그런 것들에 주춤하지 않고 현실과 이상의 밸런스를 잡으며 각자 인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퇴색하지 않도록 지켰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살다보면 뭐 옛날 단일민족같이 꼭 붙어있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예전 저 2019년 브런치 글을 쓸때 옆팀 팀장님께서 “A팀이 3년을 못간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제가 8년 넘게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습니다. 일단 A팀은 A급 인재들로 이루어지는데 이 사람들은 10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 성실하게 했고 자기계발도 했고 따로 시간내서 공부도 했고 결혼도 했고 연애도 했고 가족도 돌봤고 본인 건강관리도 하고 재태크도 하고 때되면 세차도 하고 차 수리도 맡겼던, 그와중에 여행갈거 가고 한국과 외국에서 네트워킹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회사의 리듬에 끌려가지 않고, “튀는게 싫고 여기서 더 바쁜게 싫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팀워크를 이루고 어찌저찌 일을 되게“ 해왔던, 본인의 앞길을 슬기롭게 만들어왔던 사람들은 1년을 10년처럼 살고 매순간 발전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그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승진을 시키거나 딴걸 시키거나 매 시간을 쪼개서 최선을 다해사는 개인이 본인이 이것 보다 더 잘할 수 있겠다 판단되면 기회를 만들어서 다른 데로 갑니다. 제가 본 모든 난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난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은 각자 갈 길이 있고, 나아가는 속도와 방향은 모두 다릅니다. 그렇다보니 내가 너무 빠르거나, 좀 늦으면 거기서 힘들수가 있는데 이게 다 자연스러운 거라는 생각을하니까 저는 좀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속도랑 방향 좀 다르다고 해서 안나아갈수는 없잖습니까. 모든 자녀는, 평생 부모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도 정말틀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착오적인 말도 아니고 정말 틀린 말. 모든 생명체의 아기는, 보살핌을 받다가, 독립된 생명체로 거듭나, 자신의 초원을 달려나가고 날아가고 또는 물속을 헤엄칩니다. 평생 부모의 자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태어났지만, 자식의 역할만 하지 않습니다. 사회인이 되고,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다시 부모가 됩니다. 계속해서 역동하는 생명체에게 과거의 역할만을 견지할 수 없듯, 친구와 내 주위 어울리는 사람들을 고정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랑 헤어지는 게 큰일같고 힘들던 시절, 내가 내 안의 줏대와 기준을 만들어가며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던 시절에는 이런 게 힘들었습니다. 최근에도 모처럼 만난 대학교 동창과 사회에서 다시 만나 친해졌는데 어떤이유에선지 그 분과 연락이 끊기면서 많이 속상했었는데, 생각해보면 나 역시도 내가 숨쉬고 나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매분 매초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대 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땐 또 커리어적 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identity가 명확하기보다는 흐릿한 그러데이션처럼 펼쳐져나가고 방황하던 시기다 보니 -그리고 끝없는 패기와 체력이 받쳐주다 보니- 수많은 생각과 부딪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갑자기 친해지고, 갑자기 미워지고, 불같이 살면서 저라는 사람의 재목이 강철이 달구어지듯 단단해져 30대에는 제가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알게 되었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니 난 여기에 있었고, 단단한 심지로 더욱 에너지를 태워 나아가면, 고작 20대 10년 열심히 살아서 이만큼이나 이뤘는데. 30대 때 더 현명하고 열심히 담백하게 달려나가면 난 어디까지 갈수 있을까, 기대가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갑자기 저와 연락이 끊긴 그 친구가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혹여라도 내가 마음상하게 한게 있으면 미안하다는 메시지는 남겼고, 그 분에게 정말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정이 없더라도 연락좀 안해도어떻습니까. 본인이 자기 인생에서 저와 인터랙션 할 시간보다 더 중요한, 본인에게 더 우선순위가 높은 것에 몰두해야 한다면 그게 맞습니다. 그친구가 어딜 가든 잘 되길바랍니다. 그리고 그 친구도 제가 잘 되길 바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돌고돌아 드디어 다시 미키피디아 유튜브 이야기를 해보자면, 배우 하석진 님은 옛날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게 되고 현재 나의 생각,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touching한 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다시 딱히만나게 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요새 좀 그렇다고 느낍니다. 세상을 내가 다 구원할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스스로 길을찾아 나가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을 굳이 슬퍼할 필요도 없고, 자연스러운 거고, 전환 과정에 있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도 됩니다. (물론 앞으로, 소통을 줄여나가게 될모임이나 친구가 있다면, 좀더 다정하게 그동안 즐거웠고 난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해줄 수있겠죠. 그들은 그런 다정하고 예의있는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까요.)


뭐 누구는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 이런 말 하는데 그것도 저는 솔직히 옛날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가 뭐 한 30년 전처럼, 고등학교 나오면 뭐 한두명 외지 나가서 살고, 나머지는 결국 동네에서 살면서 그 지역의 자영업 등을 하면서 동네의 돌고 도는 경제 안에 들어 가는 시대도 아니고, 각자 자기 인생 열심히 살아나가고 가정에서 충실해야지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밤새 술만마시면 와이프는 얼마나 속이 터지겠어요. 명절이 사라지고 내가 선택 한 서클 안에 들어가 그들과 원하는 삶의 색채를 이야기 하는 시대입니다. 가족이 보험이 되는 농경사회가 아니라 우린 진짜 보험을 들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요. 옛날에 내가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고 여러명 우르르 환경에 의해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점점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면 거기에 충실해야지 옛 인연을 굳이 꼭 다 챙겨서 끌고가야하고 서로다른 사람이되어가는데 영양가없는 이야기 만나서 하고 그럴 필요없습니다. 그냥 그 순간, 좋은추억을 만들었고 서로에게 다시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나눴고, 어디서든 그들이잘 살길 바래주는것으로 충분합니다.


저에겐 20살에 대학교 때 만나서 정말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뭉가라는친구가 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하고, 현재는 한국 연구원에 서 일을 하고 있는데, 네덜란드에 있을 때도 몇달에 한 번 씩은 연락하고, 그친구가 한국에 왔을때 1년에 한번 씩은 보고, 그랬었습니다. 그런 뭉가가 한국에 돌아왔을때 아 이젠 뭉가랑 자주 만나겠지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예전처럼 몰려다니고 다시 만나고 이렇지 않았습니다. 저도 해외출장가고, 뭉가도 연구지 파견가고, 결국1년에 1번정도 만났는데 그 1번이 너무 재밌고 각자 서로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친구로서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세부 Task는 모르더라도, 아 이 친구가 얼마만큼 깊어졌구나, 어떤속도로 나아가고 있구나는 느껴집니다.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이루고, 1년에 1번을 만나든 0번을 만나든 우리는 서로가 밑바닥일때 어느날 갑자기 전화해서 몇시간씩 통화하고, 서로를 위해 뿌리 내리고 있죠. 늘 발전하는 그녀에게 좋은 영향을 베풀고 그녀가 나를 친구로서 계속 여기어 주도록, 더더욱 더 부끄럽지 않고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30대의 우정은 이런 게 아닐까요.

반대로 제가 맨날 같이 다니고 그랬으면 이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뭉가랑 지금만나서 뭔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뭉가는 연구 이야기 하고 저는 고객사 이야기 하고 각자의 세계와 관심사가 그렇게 다른데 같이 있어봤자 발전하는 이야기가 안나옵니다. 뭐 모르니까 위로도 안되고. 그 시간에 각자 주위 직장 사람, 업계 사람이랑 힘껏 일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멀어지는게 아니라 같은 위치에서 다시 만나기 위해, 다시 만나면 나눌 이야깃거리들을 쌓아나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더 많이 그러쥐는 게 아니라 더 크게 내려놓고 비워낼수록 더 과감해집니다. 꼬마 딸과 아들의 엄마라는 역햘을, 내 가장 친한 단짝 친구들과 이뤘던 그 든든한 친구 모임을, 한국에서 몇년간 순탄하든. 순탄하지 않았든 자리잡아 놓았던 일자리를 내려놓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역할이 수명을 다하든 다하지 않았든 사람은 원래 가지고 있는 걸 내려놓는것을 힘들어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불필요한 지방인데도 열랑을 몸에서 빼내 다이어트 하는 것이 힘들고, 유독한 습관인데도 그 습관이 없으면내가 정말 비어버릴 까봐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정말 바닥까지도 가보고, 많이 잃어도 봤는데, 빈껍데기같은 마음을 힘겹게 붙잡아도 봤는데, 좀 비어있는 상태로 있어도 괜찮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저는 이전의 브런치로 유명해졌던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저 자신을 내려놓고 갑자기 IT로 점프하고 갑자기 큰회사도 가보고 거기서애써만들어 놓은것 다 뺏기고 다른회사로 이직도 해봤는데, 전환은 고통스런 과정이긴 한데 때론 그전환이 꼭 필요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변하려면 내 안의 것들을 비워놓고 빼내야지만 결국 새로운 것들이 들어옵니다. 예전의잡기로 계속 직업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은 본인의 커리어 수명을 깎아먹거나 다하는 과정이지만 계속해서 새롭게 내 안의것을 빼내고 채워나가는 사람은 더욱더 확장하고 연장해나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많이 헤어져도 좋고, 헤어짐을 고해도 좋습니다. 속도나 방향이 좀 다르더라도 힘껏 나아가 봐야죠.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느냐 마느냐 둘 중 하나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솔직하게 욕망해나가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투명해지고 또 그렇게 살아내다 보면 또 만납니다.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주는 것의 가치는, 나아감 없이 죽치고 앉아 영양가 없는 시간만 때우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변하는 세상에 끊임없이 감응하며, 그에 따른 모습으로 긍정적인 모습을 지켜내는 것에 있습니다. ‘변화함’으로써 끊임없이 최선을 다해주는 당신을, 더욱 멋진 모습의 나로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연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길을 가는 한해를 삽시다.


2024/02, 흑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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