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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생일자를 위한 편지

by Jessy

삶을 지탱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보기에 거창하지 않다. 찰나이자, 동시에 잔잔하게 우리의 하루에 속 고루 펴져 존재한다.

아침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일출이라던지, 집 앞 작은 카페에서 8시 오픈을 위해 매일 7시 반 유리를 닦는 사장님의 정갈한 성실이라던지, 어느날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서 dm이 와 있어서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그냥 그런 것들.


많은 일을 해내야하는 삶을 지속하려면 순간을 음미하는 힘이 강해야한다. 하정은 지금 내 삶의 형태가 지속 가능하느냐고 물었고, 역설적으로 내 인생의 어떤 때보다 해야할 일이 많은 상태인 나는 살아온 그 어떤 시점보다도 지금 삶의 지속에 대해 자신이 있다. 할 일이 적어지도록 방어할수 있어서라거나, 소득이 높아져서라거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좋아져서가 아니다. 주어진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그 안에 머무르는 법을 이제 막 익히기 시작했기 때문에.


글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은 문체가 닮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체계가 닮아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서로 다른 환경, 업, 공간에 있어도 내가 받아들이는 경험이 같은것이리라고.


절제된 단어와 정돈된 문장으로 구성한 오늘과 같은 글은 글쓰기 수업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형식이지만 한계는 명확히 있다. 그 내용의 개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다. 글로써 마음에 가닿고 싶어, 보통 때 문체의 스타일에 많이 의지한다. 글이 장황할지언정 문체의 찰떡같음이 있다면 임팩트가 있기때문에, 그 내용과 경험, 나의 심리가 독자에게 어느정도 가닿는다.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가 글을 쓰는 스타일이 참 비슷한 사람을 맞닥뜨린 어떤 날이 아직 내 머릿 속에 생생하다. 오늘의 담백한 글은 작가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 작가를 잘 아는사람이 아니라면 사실 글 뒤에 있는 개념을 이해하거나 행간 사이 마음의 결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느날 내가 맞닥뜨렸던 어제 생일자는 오늘의 글로서도 충분히 무언가를 전달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연락은 안한지 좀 되었지만 나 못지 않게 많은 일을 해내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도 당신도, 이 글을 어쩌다 마주친 모든 사람이 잠깐만이라도 할게 너무 많음에서 오는 은은한 두통에서 조금의 틈새를 마련하길 바래 본다. 순간이나마 음미하고, 나 자신에게 틈을 주어 의식적으로 숨을 쉬길. 다 지나 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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