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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한 미아 Aug 04. 2021

04. 이제 진짜 안녕... 연애 졸업이야

이별 통보 후 일주일 뒤, 마지막 인사

"일주일간 잘 지냈어?"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시작됐다.



 D-7

그가 이별을 통보한 날 저녁.

헤어질  때는 헤어지더라도 제대로 얘기는 한 번 하자고 내가 연락했고,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데 한 번 더 기회를 줄 수 없냐고 물었고,

그는 어렵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고, 일주일 후 만날 약속을 잡았다.


.

.

그 일주일 사이에 참 많은 감정이 오갔다

'그도 나처럼 힘들어서 마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같은 헛된 희망을 품기도 하며

내 평생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연애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재회를 기대했다.


그리고 많이 아팠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프다'라는 말이 진짜라는 걸 처음 알았다.

뭘 먹어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별 다이어트가 최고라더니, 며칠 뒤 건강검진에서 확인해보니 사흘 동안 3kg가 빠져버렸다)


.

.


그가 밉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그 감정은 오히려 나를 향했다.

나를 지배한 건 죄책감 그리고 미안함과 고마움.


그의 신중하고 고민 많은 성격에

헤어지자는 말을 하기까지 수십 수백번 고민하고, 나만큼 아팠겠지.

오랬동안

그래서 더이상 그를 잡을 수 없었다.


.

.


D-1

마지막으로 만나기 전날 밤

막상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서 얘기를 못할 것 같아 편지를 썼다.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한 것 보다는 해야할 것을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지난 시간에 대한 고마움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 커플통장을 정리해서 현금을 인출하고,

나에게 있던 그의 노트북 등 물건을 주섬주섬 챙기고,

그를 위한 작은 선물을 하나 샀다.






D-Day

그의 집 앞 근처 공원.

나를 위한 따뜻한 커피와 그를 위한 아이스 커피를 샀다.

이윽고 나타난 그는 굳은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구나.'

그래서 그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무거운 분위기에서 인사하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밝고 명랑하게 얘기했다.


"일주일간 잘 지냈어?"

우리의 마지막 인사가 시작됐다.


그와 헤어지던 날. 하늘과 구름은 왜 예쁘고 난리..





공원을 돌며 한 주간의 근황을 나누고, 벤치에 앉아서 대화를 이어갔다.


"언제부터 헤어질 생각을 했어?" 나는 물었고,

"일 년 정도 됐어"라고 그는 답했다.


"응...? 일 년이나...? 왜 힘든 걸 말을 안 했어?" 놀라서 나는 물었고

"그게 너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어"라고 그는 답했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자긴 괜찮다며 웃어 넘기고,

갈등상황 자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그는

작년 여름 스트레스와 화를 꾹꾹 참다 갑자기 퇴사를 했고,

작년 하반기 내내 취직준비 하면서 일을 쉬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단다.

(나는 노는 김에 더 놀라고 했지만, 그는 쉬는 자체로 불안했나보다.)


지난 5~6년간 아무렇지 않았던 나의 말들이

그때부터 가끔씩 '안 괜찮아지기 시작'했단다.

그러면서 자기 혼자 애쓰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상황에서 결혼 얘기까지 나오니 모든 것이 버거웠겠거니... 싶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나도 노력한다고 했는데 너에 비하면 부족했다.

네가 얘기를 안 한 게 아니라 내가 말을 못 하게 만들었겠지... 미안해.

그래도 서로가 노력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7년이나 만났겠어"

라고 얘기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다.


나는 "나는 네 덕분에 많은 것을 참고 이해하는 것을 배웠어. 고마워"라고 말했고,

그는 "나는 참던 것을 말할 수 있게 됐어. 고마워"라고 답했다.


울컥하는 마음을 누르며 나는 최대한 밝게 대화를 이어갔다.

"건강하게 잘 지내. 운동도 하고. 밥도 잘 챙겨 먹고.

말을 제대로 못할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얘기는 편지로 썼어.

버릴 때 버리더라도 편지는 꼭 읽고 버려.

그 안에 돈도 있으니까 아무 데나 막 버리지 말고" 라며

농담처럼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했다.


내가 건네는 노트북, 커플통장을 정산한 돈과 상품권들을 보며

그는 자기는 이런 거 생각도 안 하고 나왔는데,

뭘 이런 걸 챙겨왔냐, 노트북은 그냥 갖고 쓰지 그랬냐며 머쓱하게 얘기했다.

"그래도 이왕 정리하는 거 깔끔하게 해야지"


커플통장을 정리한 돈을 넣은 봉투에는

'그동안 나를 위해서 많이 썼으니 이제는 너를 위해서 많이 쓰고,

가족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필요한 것도 사'라고 남겼다.

진심으로 그가 자기를 잘 챙기는 사람이길 바랐다.

그가 읽었을지는 모르지만... ㅎㅎ...



그리고 마지막 선물을 전했다.

해바라기 두 송이가 있는 작은 꽃다발.

"졸업 선물이야. 그동안 수고했어"

그리고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며칠 뒤 나 자신을 위해서 해바라기 꽃다발을 선물했다. #내돈내산




걸어가며 나는

"7년이나 만난 의리가 있지. 제대로 된 인사 없이 헤어지긴 아쉽잖아, 의리 없이~"

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도 "그렇네, 의리 없을 뻔했네"라며 희미하게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늘 나를 배웅해주던 버스정류장까지 마지막으로 데려다달라고 했다.

버스를 함께 기다려주는 그를 보며 먼저 들어가라고 말했고,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앞으로 진짜 못 볼 수도 있는데,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걸까'



마지막으로 한 번 포옹하고 그를 보내주는데 둘 다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았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경까지 벗고 눈물을 닦는 뒷모습을 보며, 숨죽여서 나도 통곡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너무나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난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은.. '그 때라도 한 번 더 잡았어야 했나..?'



하지만... 그렇게 보내준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의 사랑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를 위해, 나도 이별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의 인연은 거기까지였고,

정말 아주 만약에 다시 만난다고 하면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지,

과거의 우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 없이 잘 살아가보기 위해 애쓰는 삶을 시작했다.

혼자서 분명 잘 살았는데, 7년 만에 혼자가 되니 낯설었다.


(계속 이어져요)




그와 헤어지고 하염없이 걷던 길. 해는 화창한데 비가 쏟아지던 혼란한 날씨.


마음이 힘들 때 나는 걸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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