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는 대화 끝에 행복주택은 들어가지 않기로 했고,
대신 행복주택과 무관하게 우리 둘만 놓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서로의 경제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진작에 얘기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늘 결혼하고 싶어 했던 그는 내 기대보다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회생활 한 지 3~4년 정도 됐고,
나보다 연봉도 높고, 몇 달 전에 퇴직금도 받았고,
취미생활도 없고 술담배도 안 하는 사람이고(돈 쓰는 데가 없고),
자취생인 나와 다르게 집에서 출퇴근하던 사람인데
내가 모아놓은 돈의 1/4정도밖에 모아놓지 않았다.
왜 이것밖에 모으지 못했냐는 질문에 그는 어물쩡 우물쭈물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내 예상에는 집에 줬을 것 같은데, 그는 끝까지 얘기하지 않았다.
"오케이. 과거는 묻지 않겠다. 앞으로 차근차근 모아보자."
나는 이렇게 얘기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글쎄... 주식이나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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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늘 얘기했고,
집 구하기 힘들면 지금 내 자취방에서 시작해도 괜찮다고 늘 말해왔다.
내가 실망스러웠던 것은 결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명확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모습에 순간 화가 났다.
생각할 수록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한참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에게
"늘 결혼하자고 하던 네가 이렇게 준비가 안 된 모습을 보니 네가 진짜로 나와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지 모르겠다"
"데이트할 때도 늘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나한테 원하는 것도 없다"
"우리가 오래 만나서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진짜로 나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은 건지 잘 생각해봐라"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결혼은 (자유영혼인 나 자신 때문에) 늘 두렵고, 걱정되는 것이었고,
예비 시댁의 말할 수 없는 그 사정들은 늘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내게는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했던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는
그가 나에게 더 확실한 의지를 표현해주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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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들의 답은 세 달 후,
헤어지던 날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