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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네가 돈을 못 모아서 화가 난 게 아니야

by 태평한 미아

결국 우리는 대화 끝에 행복주택은 들어가지 않기로 했고,

대신 행복주택과 무관하게 우리 둘만 놓고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해보기로 했다.


그제서야 서로의 경제상황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진작에 얘기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늘 결혼하고 싶어 했던 그는 내 기대보다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회생활 한 지 3~4년 정도 됐고,

나보다 연봉도 높고, 몇 달 전에 퇴직금도 받았고,

취미생활도 없고 술담배도 안 하는 사람이고(돈 쓰는 데가 없고),

자취생인 나와 다르게 집에서 출퇴근하던 사람인데

내가 모아놓은 돈의 1/4정도밖에 모아놓지 않았다.


왜 이것밖에 모으지 못했냐는 질문에 그는 어물쩡 우물쭈물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했다.

내 예상에는 집에 줬을 것 같은데, 그는 끝까지 얘기하지 않았다.


"오케이. 과거는 묻지 않겠다. 앞으로 차근차근 모아보자."

나는 이렇게 얘기했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글쎄... 주식이나 해볼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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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만 해도 함께 행복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상이몽



결혼에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돈을 많이 모으지 못한 것에 화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아파트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고 늘 얘기했고,

집 구하기 힘들면 지금 내 자취방에서 시작해도 괜찮다고 늘 말해왔다.


내가 실망스러웠던 것은 결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명확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모습에 순간 화가 났다.

생각할 수록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한참 생각을 정리한 나는 그에게

"늘 결혼하자고 하던 네가 이렇게 준비가 안 된 모습을 보니 네가 진짜로 나와의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는지 모르겠다"


"데이트할 때도 늘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나한테 원하는 것도 없다"


"우리가 오래 만나서 당연히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진짜로 나를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은 건지 잘 생각해봐라"

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결혼은 (자유영혼인 나 자신 때문에) 늘 두렵고, 걱정되는 것이었고,

예비 시댁의 말할 수 없는 그 사정들은 늘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그의 사랑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내게는 어렵고 부담스럽기만 했던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는

그가 나에게 더 확실한 의지를 표현해주길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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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들의 답은 세 달 후,

헤어지던 날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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