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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한 미아 Jul 31. 2019

사는 게 불편하다는 엄마

나이드는 서글픔이라는 말은 너무 감상적이다

2016년 가수 양희은이 악동뮤지션과 함께 부른 ‘엄마가 딸에게’ 무대를 봤을 때 소리 없이 통곡했다. 당시 영국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취직이 돼 서울에 또다시 혼자 나와 살아야 했고,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미묘했기 때문이려나.     


20대 초반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기 시작했을 때는 무서운 것도 없었고, 뭐든 다 내 힘으로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이 주는 도움이 내 삶의 영역에서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겼다.


그러나 영국에 다녀온 후, 1년 반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내 근간을 이루는 것들­나 자신, 가족, 친구, 사랑, 종교 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고, 그만큼 소중해졌다. 예전에는 가지를 마구 뻗어나가려 애썼는데, 지금은 뿌리가 굳건해야 내가 바로 서고 건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한국에 돌아왔을 때 부모님은 내게 이전과는 다른 존재였다. 다시 만난 부모님은 너무나 많이 늙어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많이 아팠고, 쇠약해졌다. 그리고 훨씬 소중한 존재였다.




‘엄마가 딸에게’ 후렴부의 가사도 감동적이지만 첫 시작 가사에 마음이 울렸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우리는 때로 엄마가 나보다 어렸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소녀였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다. 언제나 엄마는 엄마였고, 앞으로도 엄마일 테니까.     

 

어느날 엄마랑 만두를 만들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내가 앞으로 20년은 살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예전 같으면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가볍게 넘겼겠지만, 이제는 그 말의 진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게 무슨 말이냐고 대꾸했지만, 엄마는 거듭 앞으로 20년만 더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만큼 엄마의 건강이 안 좋아지긴 했다.      


엄마를 보면서 나이들어가는 서글픔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자꾸 뭔가를 잊고,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어렵기만 하고, 길을 잘 못 찾는 엄마는 사는 게 너무 불편하단다. 힘들다거나 괴로운 게 아니고 그냥 불편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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