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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Feb 03. 2022

26화_세상에 이런 운동 부상도 있습니다

몸의 부상이 마음의 부상이 되지 않길



일주일 동안 정말 지독하게 아팠다. 22살 때 결핵에 걸려 피로와 무력감으로 아무것도 못하고 두 달을 지낸 이후,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으슬으슬 몸이 춥고 떨렸고 여기저기가 욱신거렸다. 특히 어지럽고 메스꺼워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하루에 겨우 한 끼를 먹었는데 그 마저도 다 토했다. 몸에 힘이 단 한 톨도 없어서 눕고 또 누워있었다. 모든 생활 루틴이 무너지고, 일상이 마비되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생명 유지와 관련한 최소한의 것만 겨우 해주며 죄책감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꾸준히 달리며 건강을 관리하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아팠던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원인은 달리기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다. 한 달 전부터 새벽 달리기 습관을 가지려고 주 5일을 달렸다. 아프기 직전 일요일엔 크고 작은 얼음 조각들이 떠 있는 한강을 바라보며 10Km를 달렸다. 겨울 달리기는 시원하고 상쾌했고, 이제 10Km는 마음의 부담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다. 달린 후엔 남편을 배려하고 아이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실내 동물원에 다녀왔다. 높은 곳에 있는 동물들을 보고 싶다는 두 아이를 들어 올렸다 내렸다 했더니 무릎과 종아리 뼈가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집에 가서 쉬면 괜찮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리고 월요일 새벽, 몸이 좋지 않았지만 달리기 루틴을 유지하기 위해 3Km를 달렸고, 결국 단단히 탈이 나 버렸다.






아침엔 가벼운 몸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운 느낌이 심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첫째 어린이집이 코로나 때문에 휴원을 해서 두 아이를 가정보육을 해야 했다. 아픈 몸으로 두 아이를 온전히 돌볼 수가 없어서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오후 2시쯤, 구세주 남편이 죽을 사들고 집에 왔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컨디션이 더 나빠져있었다. 메스꺼움이 심해져서 화장실로 달려가 몇 숟가락 떠먹은 죽과 마신 물을 다 토했다. 몸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뒤늦게 인지하고 내과에 갔지만 체온이 38.4도라서 코로나 검사 후 재방문해달라는 말을 들었다. 몸의 고통에 코로나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졌다.  




화요일 아침, 벽을 붙잡고 겨우 일어나 둘째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첫째와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검사 결과를 기다릴 수가 없어 자가 키트로 코로나 음성을 확인하고 오후에 근처 내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선생님, 어제부터 근육통도 심하고 너무 어지럽고 메스꺼워요. 설사도 하고요."

"과도한 운동으로 몸에 케톤이 많이 쌓인 게 원인으로 보여요."

"케톤이 뭔가요?"

"우리 몸이 포도당이랑 글리코겐까지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나면 지방을 분해시켜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요. 이때 부산물인 케톤이 만들어지거든요. 케톤이 몸에 쌓이면 피곤, 두통, 어지럼증 등을 느낄 수 있어요. 2시간 정도 수액 맞으면 몸이 훨씬 빨리 회복될 거예요."




달리기 때문에 아킬레스건 부상, 근육 부상, 무릎 부상, 정강이 부상 등 외과적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내과적 부상을 입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거리를 달리고 난 후 몇 번 어지러움을 느끼고 토한 적이 있긴 했었다. 그때는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은 괜찮아서 체력이 강해지는 성장통으로 생각했다. 내 몸의 한계까지 도전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건 '무리'했다는 증거였고, '쉼'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신호였다. 어리석었던 과거를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간절히 수액을 맞고 싶었지만 주사 맞는 동안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 의사는 안타까워하며 진통소염제와 지사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리고 물을 자주 마시라고 당부했다.   




"엄마, 으앙."

수요일 아침에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울음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첫째가 아침에 먹은 딸기를 다 토한 채 울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힘들다고 하길래 기운이 조금 없나 보다 했는데, 이 정도로 아픈 줄은 몰랐다. 우는 아이를 달래서 소아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더니 노로바이러스(토하는 증상이 있는 장염) 진단을 받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나도 아픈데 아이까지 아프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먹기만 하면 토하면서도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첫째를 달리고 돌보느라 나는 회복할 짬이 없었다. 그날 오후, 나라도 기운을 내야 할 것 같아서 첫째를 데리고 내과에 가서 1시간 만에 초스피드로 수액을 맞았다.  




아픈지 5일째.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계속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느낌이 없어지지 않아서 다시 내과를 찾았다. 의사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며 혈액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검사 결과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가 모두 정상 이하였고, 간 수치는 높아져 있었다. 의사는 빈혈이 의심되지만, 혹시나 골수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으니 3차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며 진료의뢰서를 써줬다. 그래서 지난주 수요일 가까운 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에 가서 혈액 검사를 받았고, 하루 두 번 빈혈약을 먹고 있다. 그 와중에 의사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혈소판 수치가 낮으면 몸 곳곳에 산소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운동할 때 숨이 많이 차고 빨리 에너지가 떨어져요. 혈소판 수치가 12로 정상이 되면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예요." "와, 정말요?" 의사는 내 눈이 반짝이는 걸 알아봤을 것이다.   




이번 부상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첫 번째는 '운동 후 쉼표'를 찍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이다. 새벽 달리기를 이틀에 한 번 했다면, 10Km를 달리고 한두 시간이라도 쉬었다면, 적어도 월요일 새벽이라도 달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크게 아프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 몸의 능력을 과신한 결과 일상을 지탱하는 건강 수레바퀴가 망가져버렸다. 일주일은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다음 일주일은 컨디션을 회복하느라 시간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번째는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일로 공부해보니 리기로 겪을 수 있는 부상의 종류가 무척 다양했다. 무릎 부상, 발과 발목 부상, 다리 부상, 복부 및 허리 부상 외에 두통, 방광염, 혈뇨(피오줌), 운동성 간 장애도 있었다. 드물지만 돌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상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러너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러너는 부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고, 컨디션과 달리는 환경에 따라 운동 횟수와 강도를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  




세 번째는 몸에 이상을 느끼면 '일찍 치료'를 받는 게 좋다는 것이다. 첫날 코로나 검사 후 바로 진료를 받고, 수액을 맞고, 혈액 검사까지 진행했으면 이삼일만 앓고 나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늦은 대처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나처럼 달리고 난 후 어지러움이나 메스꺼움을 느끼는 경우 일단 물을 많이 마시고, 빨리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고 필요하면 수액도 맞으면 좋겠다.    




네 번째는 몸의 부상이 마음의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마음 챙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기와 근력 운동으로 꾸준히 체력을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운동으로 부상을 입으니 내가 너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로 느껴졌다. 몸이 조금씩 낫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원하는 일을 해낼 수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잠식했다. 다시 일어서는 게 너무 힘겨웠다. 달리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은 <적정한 삶>에서 '체력과 정신력은 같은 배터리를 쓴다. 만약 나의 멘털이 약해져 있다면 그땐 다른 무엇보다 피지컬을 회복해야 할 때다.'라고 말한다. 부상을 당하게 되면 상한 몸과 무너지는 마음 둘 다를 다독여 일으켜 세워야 한다.






여전히 몸에 기운이 없고 어지러웠던 어느 날 저녁, 첫째가 군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해서 유모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밖으로 나갔다. 서늘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셨다. 몸 상태가 엉망인데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나약해졌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달릴 때의 상쾌한 느낌을, 공중에 몸이 붕 뜨는 가벼움을, 땀을 흘리고 난 후의 개운함을. 그리고 즐겁게 달려온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은 달리기 이야기 또한 생각났다. 다시 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가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운동을 하다 보면 누구나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의 부상이 마음의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강해지기 위해 수많은 시간 노력했기 때문에, 전보다 내가 강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상을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많이 아프고 힘들 땐 잠깐 '일시 정지'를 누르고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힘들어하는 내 몸과 마음을 다독이다 보면 회복의 계단에 발을 디딜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이뤘다. 실패 속에서 답을 찾고, 시행착오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달리다 보면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넘어졌다고 이제까지 이룬 것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상처가 아물면 더 단단한 몸과 마음의 근육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오롯이 수용하며 다음 걸음을 내딛고 있다. 걷기부터 시작해 이틀에 한 번 1Km씩 거리를 늘리며 달린다. 무리하지 않고 일, 가정, 건강, 자아실현, 공헌균형 있고 조화롭게 가꿔가는 삶. 그것이 내가 진짜 바라는 삶이다.  

 


주춧돌부터 다시 괸다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달리는 거리를 늘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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