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나는 아가리 퇴사어터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매일매일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그것도 입으로만. 막상 다음 일터가 정해지지 않은 이상은, 어찌해서든 밥사먹을 돈이 있으려거든 버텨야 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워라벨이 좋은 회사였다. 하지만, 저녁 6시를 기다리는 동안의 나는 시체였다. 영혼은 없고 육신은 시키는 일을 수동적으로 해내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 기계는 어떠한 지시사항에도 토를 달아서는 안되고, 묵묵히 할당된 양의 업무를 처리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나는 회사의 핵심인재가 되기 위해 항상 나를 단속했다. 상사의 결정이라면 설사 내가 지지를 하지 않더라도, 그에 필요한 업무 지원은 반드시 해내자.
그렇게 나를 몰아세운 대가는 달콤했다. 나는 나를 팔아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여행도 다녔으니까. 그래도 내가 나를 먹여 살린다는 어느 정도의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나였지만, 나는 회사에서의 자아(기계인간)와 퇴근 후의 자아(자유인간)를 못 만나게 하려 애썼다. 기계인간이 자유인간을 본다면 현타가 올 거고, 자유인간이 본인을 위해 희생하는 기계인간을 본다면, 그 자유의지와 행동 (대부분은 소비이겠으나)에 부담이 될 터였다. 게다가 퇴근 후 자아는 소비의 기회를 통해 숨 쉬게 하였으므로, 이는 기회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끝도 없었으며 지금까지 영위하는 소비에는 심지어 별다른 자극이 되어주지도 못했다. 허만 있고, 어쩌면 실은 없었다. 허술한 나의 자유인간은 이내 곧 기계인간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기계인간의 자아가 나를 잠식하자 나는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나는 나를 잘 단속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기계가 될 수 없었다. 나를 낮추고 굽히는 동안 슬펐던 나의 마음이 이제는 무시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은연중에 쌓인 스트레스는 내 몸에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예민을 자처하는 나지만, 결코 나에 대해서는 지독한 무시를 하는 것. 이는 곧 자기 학대였다.
마음에서 보내는 신호를 이제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충동적 결정이기보다는, 퇴사에 대해서 아직은 양극단의 감정들이 서로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고, 심판인 나는 판정승을 한편에 선언해야 했다.
퇴사를 하자는 나의 마음에 용기를 내어 손을 들어주었다. 어떻게 해서든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으로 버텨보자한 나에게는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이제는 그 마음을 물려야 한다. 여태껏 관철한 나의 마음은 이제 지금을 기점으로 물러나 줬으면 한다. 양쪽의 마음에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정말 공감 능력이라고는 1도 없는 상사의 목전에서. 이왕 이렇게 될 거 그동안의 불만들, 잘못됐던 점들을 다 쏟아내고 싶었고, 내가 이렇게 된 건 당신의 탓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어 저녁에 대본을 작성하기도 했지만, 결코 그 말은 꺼낼 수 없었다.
화나는 일에, 눈물부터 맺히는 나로서는 그저 담담히 말을 이어간 것에 만족했다.
홀가분 하지만서도 앞으로의 밥벌이 걱정에 두려웠다. 마음이 양쪽으로 아렸다. 마치 하루동일 힐을 신다 고생한 발이 힐을 벗었을 때, 발이 편해지면서도 그동안 구두 속에 갇혀 일그러진 채 있었던 그 아림이 뒤늦게 터져 나오는 것 마냥. 퉁퉁부은 마음이 이래저래 불안하고 아리고 힘들었다. 이 통증이 지나고 나면, 발가락들이 제자리를 찾고 편해지듯 내 마음도 좋아질 거다.
하지만, 이제 힐 위에 서있었던 것만큼 각선미를 뽐내기도, 키를 키우지도 못할 거다.
하지만 힐에서 내려온 나는 진짜고, 그로 써도 가치가 있음을 믿기로 했다. 너는 힐 없이 누군가를 만나러 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회사가 전쟁터면 사회는 지옥이야."라는 말로 회사 속 전쟁에 맞은 총알에 아파하지 말자는 속셈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을 거다. 힐에서 내려온 나의 발이 엄지는 돌아갔고, 발꿈치는 까졌고 넷째 발가락에는 물집도 잡힌듯하다.
나는 내 발을 씻어주고, 어루만져주며 똑바로 서는 법을 배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