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쿤 Sep 30. 2016

그만.

나는 지금 카페에 가는 길이야.




내리던 비가 그쳐서


오늘까지만 울 거라는 다짐을 했어.

     

     




나갈 때마다 이리저리 비추어보던 거울을 외면한 채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지 않고서


모자 하나 눌러쓰고 문 앞에 서있기를 몇 번...






마침내 며칠 동안 나가지 않던 현관을 지나


나의 발걸음은 우리가 함께 갈 것을 약속했던 공원에 가는 길이야


     




길을 걷다 문득 바닥에 고인 물이 흐르는 곳에


눈길이 갔어.


노란 은행 나뭇잎이 떠내려가는데 마치


니모들이 줄 지어 헤엄쳐 내려가는 것 같더라.

     



그래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널 잊을 수 있는데,

밖에 나오길 참 잘한 것 같아.

     





길을 계속 걷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어.


길을 걸으며 듣는 것도 좋지만, 카페에서 여유롭게 즐기면서


흥얼거리고 싶은 노래야.



     

그래 이런 우연찮은 것에서도 널 잊을 수 있는데,

밖에 나오길 참 잘한 것 같아.

     





비가 갠 후 비를 감싸 안은 흙에서 풍겨오는 내음새가 난 좋아.


무언가 형용할 수 없어도 그 포근한 냄새가 좋아.


그래서 숨을 한 번 크게 쉬었는데, 덩달아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것만 같아.



     

그래 이런 일상적인 것에서도 널 잊을 수 있는데,

밖에 나오길 참 잘한 것 같아.





     

너와 자주 갔었던 카페를 마주할 순 없더라도


인근의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너를 상상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계속해서 길을 걸었어.


너무 좋아 지금 이 순간이.


네가 더 이상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지금 카페에 가고 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진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