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써놓았던 글인데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이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많은데, 이해하고 느끼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 때, 그 문제가 풀 수 없는 문제, 답이 없는 문제인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풀어보면, 심리적인 문제의 원인은 90% 이상이 뇌의 소프트 웨어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만들어진 뇌의 배선이라고 할까요? 우리의 행동, 생각, 느낌을 결정하는 뇌의 소프트웨어와 세상 간의 상호작용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심리적인 문제가 하드웨어인 뇌에 이상이 있어서 생기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뇌종양이나 발달장애 등의 문제가 심리적인 문제와 비교하면 흔한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증상까지 비슷한 경우는 더 적습니다.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는 대부분이 인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로지 비의식적 처리에만 국한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부 우울증, 무기력증, 불안장애 같은 정동장애들은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문제가 하드웨어적인(뇌) 과부하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하고, 타인을 바꾸고 싶어 하죠.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무력감과 고통만 줍니다. 행복해지거나, 최소한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풀어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인데 풀 수 없으니 인생 자체가 벽에 가로막힌 느낌이 들기도 하죠.
예를 들면, 사이가 안 좋아진 부부가 있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죠. 그래서 상대방을 바꾸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하죠. 물론 각자의 입장을 들어 보면 바꾸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변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고, 또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껴지니까요. 여기서 풀 수 없는 문제는 상대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바꾼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바꾸기 힘듭니다.
대표적인 풀 수 없는 문제는 과거,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 잃어버린 것, 지금 당장 가지지 못한 것 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는 아이를 강제하고, 연인은 서로를 바꾸려고 합니다.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공평한 세상에 불만을 터트리죠. 사실 일부러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기도 하고, 틀린 것도 아니고 범죄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면 절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문제만 생각하면 인생이 가로막혀 버린 느낌이 들고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것은 풀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탓하고 다른 사람들과 세상, 혹은 자신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잠깐 속은 풀릴 수도 있습니다. 덜 모자라 보일 수도 있고, 정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 하지만 절대로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희생자가 될 뿐이죠.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면 그 스트레스는 인생을 좀먹습니다. 문제의 중요성에 따라, 개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위의 부부 이야기를 마 저하면, 이들은 서로를 바꾸려고 하니 자꾸 충돌이 생깁니다. 둘 모두 자신이 맞다고 생각해서 양보는 없습니다. 양보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보다는 '내가 이걸 했으니까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해'식의 거래가 됩니다. 거래에 사랑은 없습니다. 결국 스트레스만 더 쌓입니다.
스트레스는 점점 삶의 다른 영역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불만이 계속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다 보니 즐거움도 느끼기 힘들고 인생에 대한 회의감도 들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과 인관 관계에도 이상이 생깁니다. 감정, 생각, 행동의 관리를 도와주던 기존의 삶의 패턴에 균열이 생기면서 안정이 깨져버립니다. 즉, 결핍을 해결해줄 다른 수단이 필요하죠.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면 바람을 피거나, 술이나 도박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점점 쌓여갑니다.
다른 풀 수 없는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불공평함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물론 세상은 불공평한 게 맞고, 과거에 받은 불합리한 대우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 모두 사실인 경우가 많죠. 그런데 그 불공평함에 집중하면 절대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불공평함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금수저와 흙수저, 타고난 신체 등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집중하는 것은 나를 더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놓치게 만들며, 결국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없는 사람으로 만들 뿐입니다.
풀 수 없는 문제는 포기해야 합니다.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면 이상한데, 풀 수 없는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 쏟는 것을 그만두고, 정말 풀어야 하는 풀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포커싱을 바꾸는 거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시간과 긍정적이고, 열린 사고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풀 수 있는 문제는 주로 성장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외면하고 있던 옳은 일들입니다.
위의 부부는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관계를 다시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상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연애 초기의 경험을 떠올리며 무엇 때문에 자신들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지, 서로의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생각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과 비교를 하면 깨닫게 될 겁니다. 그들이 이제 더 이상 서로에게 매력 있던 과거의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이야기를 나눠서 과거에 그리고 최근에는 어떤 면에서 서로에게 매력을 느꼈는지, 사랑을 느꼈는지 알고(상대방이 자신의 어떤 부분에서 매력을 느끼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고, 거기서부터 관계를 더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이 부부가 해결해야 하는 진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만약 상실로 오랫동안 괴로움을 느끼고 그것이 인생에 지장을 주고 있다면, 상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상대와 함께했던 좋은 경험들과 배울 수 있었던 것들에 감사하고 추억한다면, 그리고 나도 그런 좋은 경험들을 다른 이들에게 주고자 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풀 수 없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우리 뇌가 그 문제를 지금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나 도전을 피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약해서,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이 문제를 회피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뇌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혹은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하게 될지 예측하기 힘든 일은 피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고 할까요. 나도 모르게 풀 수 없는 문제를 인생의 두려움을 피하는 용도로 쓸 수 있는 거죠. 알아차리지 못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무의식적인 현상이니 자신을 탓할 수는 없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알아차리고 바꿔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1. 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면, 무의식적인 핑계로 사용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2. 먼저 차분히 지금 인생을 위해서 진짜 필요한 일, 옳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것을 하고 있지 않다면? 풀 수 없는 문제로 인해서 계속 미뤄지고 있다면? 무의식에 휘둘리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무의식은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는데 도사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사실을 보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전진을 하려고 하는지 후퇴하려고 하는지는 본인만이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한 친구는 '대학원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대학원에 가는 게 좋을까' 이런 고민으로 2년을 보냈습니다. 대학원 문제는 그 친구에게 답이 없는 문제였습니다. 사실 풀기 싫은 문제였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 친구는 자신이 미래에 대한 부담으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해에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풀 수 없는 문제를 자신이 핑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그 문제에서 벗어나기 한결 쉬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친구처럼 말이죠.
사실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착하는 것은 답도 없고 아무런 이득도 없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를 머리로 아는 것과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전혀 다르니까요. 경험이 없으면 머릿속에 배선이 생기지 않습니다. 배선이 없으면 활용도 못합니다.
가능성이 없는 상황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바꾸는 것은 정말 중요한 기술입니다. 처음에는 풀 수없는 문제를 포기하고 풀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안 해봐서 힘들기도 하고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지금 심리적으로 고생하고 있다면 어떤 풀 수 없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지 한번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