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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혜령 변호사 Dec 08. 2021

[읽고있습니다]"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김영민, 정치적 동물의 길(2021)

제목에 글자 수 제한이 있군. 

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정치적 동물의 길" 


초반부까지는, 종전 책보다 냉소가 깊은 듯하면서도, 정치를 냉소하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동물의 길을 설파하기 위해 저자 특유의 화법과 말놀이를 더 자주 사용한다는 느낌. 이를테면, 다음 문단의 '권(權)'자 말놀이. 




"많은 이들이 권력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권력은 자주, 그것도 너무 자주 혐오할 만하다. 그러나 권력이 세상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혐오하는 것은 삶 자체를 혐오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 말한다. "난 권위도 싫고 권력도 싫고 권자도 싫고 권세도 싫고 권력욕도 싫고 권력자도 싫어. 나는 그 '권'자 들어가는 것들은 다 싫어. 사람은 다 평등해. 서로를 사랑해야 해." 이 얼마나 아름답고 달콤한 말인가. 달콤한 나머지 이빨이 썩을 것 같다. 아마 그는 권능도 싫고 권한도 싫고 권한대행도 싫을 것이다. 그뿐인가. 어쩌면 권익도 싫고 권리도 싫고 권리장전도 싫고 권고도 싫고 권고사직도 당연히 싫고 권선징악도 싫고 권장 사항도 싫고 권역외상센터도 싫을지 모른다. 


권력이 싫다는 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권태로운 말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권력이 없는 세상이 도래할 것도 아니고, 지금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질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평소에 권력에 치열하게 저항하며 사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오히려 현재 권력 없는 사람을 영원히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저토록 아름다운 말을 반복하다가는 지력이 권태기에 빠질 위험이 있다. 권력이 싫다는 말만 가지고는 현 권력자를 혐오하는 것인지,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싶다는 말인지, 그것도 아니면 권력 자체를 냉소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권력을 냉소할 수 있는 것도 권력이다. 권력이라는 엄청난 상대를 두고 차갑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어떤 권력을 발휘한 결과다. 권력이 진짜 없는 사람은 권력에 대해 냉소하기도 어렵다. 권력이 없다는 것은 당장 어떤 것을 도모하기도 어려운 힘겨운 상태라는 말인데, 어떻게 권력을 냉소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들은 최저선의 삶을 영위해나가는 것도 힘겹기 때문에 권력을 냉소하기보다는 권력을 갈망하기 쉽다. 일정한 권력이 있으면서 권력에 대해 냉소를 퍼붓는 일은 자신을 애써 약자로 위치시키는 행위에 가깝다."


- 김영민,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54-56쪽  '욕망과 목표가 있을 때 권력은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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