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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Sep 25. 2016

내가 대학원을 나와 군대에 간 이유

누구를 위한 삶인가

1년 전, 난 대학원에서 자퇴했다.


대학도 아닌데 별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자퇴는 늦은 입대를 의미했다. 주변에서는 많이들 궁금해했다. 사실 몇몇 대학원생들은 이유는 묻지도 않았다. 몇몇 대학원생들은, 아니 사실 다수는 대리만족하거나 부러워했다. 위로였을까? 뭐 그럴 수도 있다. 암튼 사람들이 궁금해할 때마다 간략한 설명을 하긴 했지만, 사실 대학원을 나온 이유를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여섯달을 다니는 동안 네달간 고민했고,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혹시 잘못 판단 것은 아닐 수시로 갈등하며 두려워했다. 암튼 난 장학금까지 포기하며 대학원을 뛰쳐나왔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구닌인데도.


고통은 늘 원인에 대해 묻는다. 반면 쾌락은 제자리에 머물러 뒤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점점 더 섬세해진다.
-F. W. 니체-


솔직히 말하면, 대학원을 나와야겠다는 고민은 고통에서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의 공대 대학원생처럼 많이 바빴고, 자유가 거의 없이 연구실에서 사는 생활을 했다. 남들이 다 버티는 이런 생활이지만 나는 버틸 수 없었고, 바꾸고 싶었다. 처음엔 그게 전부였다. 그러다 여러가지 일들로 이런 희망이 사라졌을때, 난 조금씩 섬세해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을까?' '이게 나와 맞는 길일까?' '이게 정말 가 있는 일일까?'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걸까?'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았다.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는 것일 수 있고,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는 것일 수 있으며, 이제껏 전문연구요원이 아닌 군복무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모른체하고 몇년(혹은 그렇게 몇십년) 참기에는 남은 내 삶이 너무 시시하고 불쌍했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으로 돌아갔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꿈꿨는지, 혹시 너무 이른 시기에 앞날마저 다 정해버린 것은 아닌지, 혹시 여태 해온 것 때문에 과거의 꿈을 내려놓지 못한 것은 아닐지, 최근엔 내가 무슨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보람찼는지... 휩쓸려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적 나의 추상적인 결정과 그로 인해 형성된 주위 환경으부터. 내 앞에 그려지는 삶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 빨리 달려 못보고 있었지만, 잘못된 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건 나를 위한 삶이 아니었다.


가치 있거나, 성장하거나, 그 자체로 즐겁거나.


나는 이 세가지 기준으로 할 일을 결정해왔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은 그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즐겁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가치가 있거나, 나중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 발전이 되어야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학원은 공부보단 연구를 하는, 즉 지식을 습득하기보단 창출해내는 과정이었는데, 창출해낼 지식이 그닥 중요하거나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수많은 연구가 있고, 혹시 아직 논문이 안된 부분이 있다면 그 빈틈을 찾아서 채워넣는, 그러니까 논문을 위한 논문을 쓰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도 물론 관련 지식을 익히게 되고, 연구를 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하는 발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련 지식에 회의적이었고, 연구자가 되겠다는 꿈이 없었던 나에게, 배울 것은 없었다(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다른 분야의 연구자를 꿈꾸기도 하지만).


결국 이 일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시간낭비로만 느껴졌다. 또,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연구요원 제도로 병역를 이행하면 스물아홉. 주어진 일에 따라가다가 그때서야 하고싶은 일을 시작하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깝기는 했지만 더 늦기 전에 결단이 필요했고, 나는 21개월간 나라를 지키고 나서 온전히 나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입대 전까지 마음 한켠에서 그려왔던 창업의 길을 맛보기 위해 한 스타트업의 인턴을 시작했다. 아, 그리고 이때부터 책을 찾기 시작했다.


※ 어디까지나 '반년만에 대학원에서 낙오한' 제가 생각한 저의 분야의 대학원에 대한 얘기입니다. 모든 대학원생들 리스펙트.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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