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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Nov 06. 2020

사실, 우리 아빠가 오리지널 힙스터

My Dad, an original hipster



‘아저씨 패션’이라고 누가 하였는가, 한때 ‘알딱깔센(알아서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패션을 뽐내던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의 그 시절 패션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딸려 나오는 추억은 덤이다.





깔 맞춤과 숏 팬츠


1982년, 결혼을 앞둔 남자는 혼자 여행을 떠났다. 종로 5가 등산 장비 골목에서 꽤 비싼 값을 주고 산 새 가방을 메고 미놀타 카메라와 레이벤 선글라스를 챙겼다. 모자와 양말에 빨간색으로 포인트 컬러를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길목에서 그는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허리에 손을 올린 자신 있는 포즈를 취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 앞이라 표정은 굳었다. 아무래도 활짝 웃는 건 영 어색했을 것이다. 어떤 다짐을 가지고 도시로 돌아온 남자는 가정을 꾸렸다. 이후 결심대로 그는 기꺼이 그리고 철저히 가족을 위해 살았다.


여전히 182cm의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는 아버지의 사진 속 키는 184cm다. 아들인 나는 얼굴 생김생김이 닮은 것은 물론, 연필처럼 긴 다리도 그대로 물려받았다. 종종 얇은 다리에 불평하곤 했는데, 매우 튼튼해진 아버지의 허벅지를 보니 나 역시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생각된다. 내년 여름부터는 사진 속 아버지처럼 당당하게 다리를 드러내고 사진을 찍어 봐야겠다.


(신기호 / 〈GQ〉 디지털 에디터)




편견 없는 색깔 활용법


나는 약간 마른 체형의 남자를 좋아한다. 아빠는 마르고 ‘옷발’을 잘 받는 몸을 가지고 있다. 마르고 팔, 다리가 긴 아빠를 좋아하면서 취향이 그렇게 된 건지, 원래 그런 취향이라 아빠의 체형이 좋아 보이는지 순서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 아빠의 매력 포인트는 뭘 걸쳐도 태가 난다는 것이다. 나는아빠의 작은 눈을 그대로 닮았다. 어쩌다 보니 아빠처럼 나도 알이 큰 안경을 껴서 작은 눈을 커버하고 있다.


위 사진은 엄마와 단풍 구경을 하러 간 날, 산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빠는 진한 핑크색 피케 셔츠에 데님 모자를 쓰고 목에는 초록색 반다나를 귀엽게 묶어 포인트를 줬다. 보색 대비 따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색을 활용한 것에 비하면 카메라를 바라보는 표정은 영 어색하기만 하다. 어딜 가든 아빠는 설명을 정말 많이 해줬다. 어린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물론, 전혀 관심도 없는 이야기까지. 그때는 아빠의 ‘투머치토크’가 지루할 때가 많았는데 요즘은 종종 그리워진다. 아빠가 우리 가족만을 위해 준비한 ‘알쓸신잡’이.


(백수빈/홍보대행사 ‘포도랩’ 운영)





데이트를 위한 클래식 아웃도어 룩


데님 팬츠를 입고 위에는 가벼운 아우터를 걸쳤다. 등산 스틱과 백팩, 등산화까지 산을 오르기 위한 준비가 착실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이 가는 건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바지 위에 덧신어 멋을 낸 것, 그리고 갑작스러운 페도라. 고개를 숙여서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옆의 여인에게 멋있어 보이고픈 포즈가 아닐까? 1970년대 당시 친구들과 다 함께 등산하던 이 풋풋한 남녀는 사귀는 사이였고, 결혼했으며, 나의 아빠, 엄마가 되었다.


나는 아빠와 같은 모양의 부처님 귀를 가지고 있다. 좋은 귀를 가졌으니, 잘 될 거라는 얘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아빠는 큰아들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에 똘똘 뭉쳐 모든 일에 두 팔 걷고 먼저 나서서 행동하는 대한민국 장남 스타일이다. 솔선수범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분명 배울 것도 많지만, 때로 엄마와 세 딸이 덩달아 고생할 때도 있었다. 사진 속,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아빠에게, 옆의 여인을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또 그동안 정말 잘 해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손동주/ 포토그래퍼)





그 시절 ‘꾸안꾸’


베이직한 단가라 반소매 티셔츠에 블랙 와이드 슬랙스를 입었다. 해가 지면 추워질 날씨를 대비해 손에는 데님 셔츠를 들었다. 자세히 보면 얇은 금테 안경과 금시계를 착용하고 있으며, 가슴팍까지 내려오는 긴 목걸이도 맸다. 얼굴이 작고 키가 큰 아빠는 몸의 비율이 마치 서양인 같다.


웬 병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가 했더니, 나와 함께 놀러 간 대구의 놀이공원이다. 앨범의 같은 페이지에서 어린이용 놀이기구에 몸을 욱여넣고도 편안한 표정의 아빠 사진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빠는 뭐든 티를 내지 않고 잘 참는다. 또 아빠는 섬세한 관찰력과 유머를 가졌다. 관심이 가는 걸 끈질기게 들여다본 다음, 그걸 바탕으로 알아낸 것을 재미있게 해석할 줄 안다. 외동딸인 나는 아빠의 성격을 닮았다. 학창 시절엔 그 특징을 활용해 선생님 성대모사도 곧잘 했다. 남의 삶을 잘 들여다보는 습관을 지니고 있어서 지금도 친구들의 고민 상담에 공감이나 감정 이입을 잘한다. 주변 사람에게 위로와 웃음을 줄 수 있는 건 내가 아빠를 닮아서다.


(박민경/ 대학교 교직원)





유행은 돌고 돈다


사진 속 아버지의 패션은 지금 봐도 꽤 근사하다. 셔츠 위 니트를 겹쳐 입은 것이나, 레귤러 핏의 멋스러운 진청바지에 로퍼를 신은 것이 편안해 보이면서도 멋있다. 사진 속 아빠 나이가 된 지금의 내가 즐겨 입는 스타일이다. 어머니 촬영한 독사진에는 혼자 카메라 앞에 선 게 부끄럽다는 아빠의 어색한 표정이 그대로 담겨있는데, 어쩐지 자꾸 꺼내 보게 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와 단둘이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 기억이 난다. 전날 저녁에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설악산에 도착한 다음, 오색약수터 숙소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다섯 시부터 14시간이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이후 아버지와 세 번 정도 더 설악산에 다녀왔다. 얼마 전에도 같이 산에 갔었는데, 하산하다 내가 바위에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아버지가 내 배낭까지 다 들쳐 매고 다 큰 아들을 부축해가며 세 시간도 넘는 길을 걸어와야 했다. 어느덧 사진 속 아버지보다 내가 더 나이가 많아졌다. 30대 초반의 저 모습처럼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술도 꼭 줄이시고.


(유귀선/ 가죽 공방 겸 카페 ‘Poner Coffee’ 운영)





언제나 자유로운 아빠의 패션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아빠는 20대를 무대에 바쳤다. 그는 옷차림이나 취향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시대에 자란 사람답지 않게 매사에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결혼하면서 연극을 그만두고 회사에 다닐 때도 빨간색 컬러 팬츠나 노란색 나이키 코르테즈를 신고 사무실에 출근할 정도였다고 한다. 내가 중학생일 때, 아빠 차에는 ‘쿤타 인 뉴올리언스’ 앨범이 있었고, 2020년도인 오늘은 오버올을 입고 색소폰을 불러 다닌다.


초등학생이던 나와 아빠가 할아버지 댁에 다녀온 기억이 난다. 아빠가 튼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조수석의 내가 춤을 췄고 운전대를 잡은 아빠도 몸을 흔들었다. 그때 들은 디스코 음악은 지금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로 남았다. 통통 튀면서도 평화로운 이 음악이야말로 가장 아빠다운 음악이 아닐까.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취향과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빠가 들려주던 음악, 골라준 옷, 그리고 사고방식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주동일/ 기자)





자칭 테니스 퀸의 룩


테니스 라켓과 공을 느슨히 쥐고 네트에 걸쳐 선 사진 속 엄마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개를 비스듬히 돌리고 혀를 살짝 문, 카메라를 바라보는 포즈가 묘하게 당당하다. 손에 쥔 라켓은 엄마의 이모부가 쓰던 걸 물려받은 것인데 이런 고급 양 날개 라켓을 가진 학생은 유일했기에 애정이 각별했다고 한다. 갓 스무 살 엄마는 테니스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는 세트 느낌의 테니스 룩에 또렷한 원색의 벙거지와 청록색 전자시계를 매치했다.


아쉽게도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테니스 동아리 활동은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 체육 전공자인 동아리 회장과 칠 때는 꽤 괜찮던 실력이 원정 경기에서 들통이 난 것이다. 한 번의 패배는 엄마의 테니스에 대한 애정마저 꺾어 버렸다. 키가 195cm나 되던 동아리 회장이 강의실 앞에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고백하는 바람에 동아리도 더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엄마는 선 자리에서 테니스를 잘 친다고 말한 남자와 결혼했다.


(조서형/ 볼드저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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