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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드저널 Dec 21. 2020

우리 아빠는 힙스터

해가 갈수록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 그 이유가 비단 나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빠로 불리며 내가 희미해져갈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열광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리고 고민했다. 비비드한 원색 컬러의 오버핏 룩을 20대처럼 입어도 괜찮을까? 온라인 편집숍 29cm를 통해 취향을 갖는 즐거움을 전파하는 전우성 브랜드 디렉터와 나눈 멋진 아버지, 힙한 아버지에 관하여.




29cm에서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디렉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
딱 하나로 규정하긴 쉽지 않아요. 보통은 브랜드를 정의하고 그 가치, 나아가야 할 방향, 차별화된 이미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에 알리는 일을 해요. 이를테면 소비자에게 브랜드에 대한 첫인상을 창출하고, 그걸 시작으로 열성 팬으로 이끄는 일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인상적인 기억이나 사건을 만들고 기획해요.


한 인터뷰에서 “얼추 아는 100명보다 열광하는 한 명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열성 팬 한 명의 힘은 아주 커요. 자발적인 홍보 대사 역할을 하잖아요. 저도 프라이탁을 좋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거 좋아. 한번 써봐. 이 브랜드가 말이야...” 하면서 알리게 되거든요. 업계에서 통용되는 말 중 “좋은 브랜딩은 마케팅이 불필요하다”는 게 있어요. 모두가 그냥 알게 하려면 TV로 광고하면 됩니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좋아하게끔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문에 좀 더 차별화된 것, 고객과 소통하는 크고 작은 이벤트를 꾸준히 해나가야 해요.


그동안 브랜딩한 작업 중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네이버에서 근무할 때 ‘나눔 글꼴 에코’를 배포했어요. 이 폰트를 쓰면 잉크가 절약돼요. 그냥은 잘 안 보이는데 크게 인쇄해서 보면 글자에 미세한 구멍들이 있어요. 그만큼 잉크를 30% 정도 절약할 수 있죠. 그걸 적용한 한글 문서 서식을 자기소개서 등에 쓰고 있어요. 이 회사에 와서 29cm 애플리케이션을 막 론칭했을 때는 ‘미니쿠퍼 증정 이벤트’, ‘1000만 원 증정 이벤트’를 했어요. 그야말로 화제였죠. 29cm 브랜드 인지도가 확 올라가고 앱 다운로드가 급증했으니까요.

또 스타일쉐어에서 진행한 ‘#너다움을 응원해’ 캠페인은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한 사진을 찍어 올린 고객을 대상으로 화보 촬영을 해주고 상금도 주는 이벤트였어요. 1만 건 정도의 게시물이 올라왔어요. 외모나 체형에 상관없이 누구나 당당하게 자신만의 패션을 뽐내보자는 맥락으로 큰 이슈가 되었죠. 개개인의 감성을 터치한 캠페인이어서 주목받았다고 생각해요.


현재 근무하는 29cm에서는 소비자에게 “당신은 뭘 좋아하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을 본인에게 던져본다면요?
취향은 시간에 따라 바뀌어요. 몇 달 전에 옷 정리를 했어요. 옛날 옷들을 보니 몸에 달라붙는 슬림핏 옷이 많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유행했잖아요. 열심히 입었어요. 요즘은 오버핏으로 크게 입고 있어요. 아무래도 패션은 유행을 안 탈 수 없지만 ‘남과 달랐으면 좋겠다’는 포인트는 있어요. 유행과 같이 가되 그 안에서도 다르게, 그게 제 취향일 수 있겠네요.


신기하네요. 사실 나이가 들면 취향을 갖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보통 나이가 들면 포기하는 게 많아져요. 일단 미혼과 기혼이 다르죠. 미혼은 어필할 대상이 있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게 굉장히 많아요. 기혼은 내가 뭘 해도 곁에 아내가 있으니 그게 좀 풀어지죠. 제 생각에 아이의 유무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체형의 변화가 있겠죠. 살이 찌고 배가 나오고. 옛날 옷이 안 맞기 시작하면서 많이 내려놓더라고요. 저는 다행히 몸무게는 20대와 큰 차이가 없어요. 어떤 집단에 속하느냐도 중요하겠죠. 전형적인 아저씨들만 있는 회사에 다녔다면 저도 비슷했을 거예요. 지금 회사는 젊은 친구들이 많고, 자연스레 그들의 생각과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내 스타일을 더 찾고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거나 주목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가장 대표적인 건 프라이탁입니다. 저는 프라이탁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유럽 여행을 가면 꼭 사 오곤 했어요. 그래픽 디자이너인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만들었고 물에 젖지 않는 트럭의 타프, 안전벨트, 폐자전거의 고무 튜브 등으로 가방을 제작했다는 게 당시 정말 신선했어요. 이 브랜드 스토리 덕분에 푹 빠졌죠. 흔히 “프라이탁 드는 사람”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용자에 대한 이미지까지 소비자에게 잘 전해지는 브랜드가 바로 프라이탁입니다. 저는 실제로 마르쿠스 프라이탁을 만나 사인을 받았을 정도로 열성 팬입니다.


브랜드 디렉터 입장에서 멋진 아버지, 힙한 아버지를 브랜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렵네요. 몇 가지 생각할 게 있어요. 누구에게 멋진 아버지일 것인가? 내 아내에게, 혹은 우리 아이에게, 아니면 내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아버지가 될 것인지를 먼저 정해야겠죠. 그리고 어떻게 멋진 아버지인지도 중요해요. 자상할 것인지, 금전적으로 풍족하게 해줄 것인지, 감정적 유대 관계가 깊을 것인지, 혹은 아이가 “다른 아버지들이랑 같이 있을 때 우리 아버지가 제일 멋져 보였으면 좋겠어!” 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아이가 무엇을 멋지다고 생각하는지도 고려해야겠죠. ‘어떤 사람에게 멋진 아버지가 될지’는 타깃 설정이고, ‘어떤 멋진 아버지가 될 것인지’는 브랜드 이미지나 포지셔닝을 고민하는 거고요.


구체적이고 마케팅적인 접근인데요?
간단한 질문을 업무적으로 접근했네요.(웃음) 아이는 아버지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은데, 계속 놀자고 조르는 아버지는 멋진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멋진 아버지’로 느끼게 할 대상을 설정하고, 그 대상이 뭘 좋아하고 뭐가 부족한지 파악해야 해요. 단어는 ‘멋진 아버지’지만 그 대상이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의미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렵죠. 멋진 아버지 되기가.(웃음)


충분히 멋진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옷장이나 서재를 보면 곳곳에 취향이 묻어나네요.
옷장 안의 옷들은 제가 선택한 거니까 제 취향이 100% 담겨 있어요. 서재만큼은 제 취향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죠.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첫째가 한 살이었어요. 당시 집에는 저와 아내의 취향이 더 많았어요. 매트가 깔리고 인디언 텐트, 자전거, 장난감 등이 쌓이면서 우리의 공간이 점차 사라지더라고요. 마지막 딱 하나, 서재만큼은 내 공간으로 지키고 싶었어요. 지금 서재는 정글 같아요. 초록색 커튼에 초록색 조명, 조화도 놓고 액자도 동물을 모티브로 한 것이 많아요. 딱 제 취향이죠. 이 집에서 제 공간은 이게 전부예요. 한 3평 되려나?(웃음)



일이 패션이나 취향에도 반영되나요?
그럼요. 아무래도 29cm에 근무하면서 최신 브랜드를 남들보다 먼저 접하잖아요. “이런 브랜드가 있구나”, “이 브랜드는 이런 걸 추구하는구나” 하며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트렌드를 먼저 접한다는 게 커요. 일반 대기업,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회사원이었으면 지금과는 좀 다르게 살았을 거예요.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원래 좋아했어요. 성향이죠. 게다가 미혼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어필해야 했고요. (웃음)


전우성 디렉터가 바라보는 1020 패션, 3040 패션의 차이가 궁금해요.
패션은 나이로 선을 그으면 안 돼요. 사실 나이로 선을 긋는 건 언론이나 마케팅에서 말하기 좋아서 그런 거예요. ‘20대가 선호하는 브랜드’, ‘요즘 밀레니얼은 이런 걸 원한다’ 하면 마케팅, 세일즈, 데이터화하기에 좋거든요. 하지만 이제 그 경계는 많이 무너졌어요. 코스나 자라도 특정 연령대를 겨냥했겠죠. 근데 20대뿐만 아니라 40 대도 거기서 옷을 사요. 저는 50대가 되어도 코스 매장에 갈 거예요. 나이에 상관없이 직접 방문해 입어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경험인데요.


아버지의 패션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듯해요.
정확한 통계 수치까지는 모르겠지만 제 주변을 봐도 패셔너블한 아버지가 많아요. ‘패션마저 놓으면 나 진짜 아저씨가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심리 같아요. 일하고 돌아와서 아이랑 놀아주고, 외모 가꾸고, 운동해 체형 관리까지 다 하기는 사실 어렵거든요. 현실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본인에게 어울리는 ‘멋’을 찾아가는 거죠. 영화배우 김기방처럼 본인의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매치하면 얼마든지 패셔너블한 아버지가 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옷을 좋아하고 트렌디한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아저씨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볼 땐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포기하는 거죠. 시간 없고 살도 찌고, 맞는 게 없어서 편한 옷만 찾는 케이스. 사실 이건 핑계입니다.(웃음) 두 번째는 예전의 패션을 못 놓는 경우예요. 과거 그 시절에 머물러 있어요. 예전에는 멋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다수 여기에 포함돼요.



그럼 패셔너블하고 힙한 아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야 해요. 매달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옷, 액세서리, 신발들이 출시돼요. 보기에 ‘나랑 잘 어울리겠다’, ‘예쁘다’ 하는 게 있으면 한 번씩 시도해보세요. 구입하지 않아도 돼요. 매장에서 입어보세요. 저도 오버핏 옷, 어글리 슈즈를 처음 착용할 때 많이 주저했어요. 한번 입어보니까 편하고 요즘 트렌드에 맞아서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몇 벌이나 샀어요. 남의 눈은 의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나이가 되면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게 득보다 실이 많다는 걸 알아요. 그걸 깨기가 참 어려운데, 패션이나 스타일로 극복하고 시도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더라고요. 이런 시도가 주변에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고 본인 만족으로 이어지면 계속 자신을 가꾸게 되죠.


결혼하고 취향을 잃었다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취향까지 잃으면 어떡합니까? 꽉 잡고 있어야죠. 그마저도 잃으면 난 뭐가 되나요?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이 아닌 본인의 삶을 살길 바라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아빠 사진을 보고 ‘우리 아버지 진짜 힙스터였네!’ 생각한다면 얼마나 뿌듯할까요?


‘아버지의 힙함’은 어디에서 올까요?
멋진 아버지와 힙한 아버지는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에요. 제 생각에는 ‘아이를 늘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멋진 아버지입니다. 맛있는 것과 장난감을 사주고 같이 놀아주는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결국은 아이가 즐거워야 해요. 힙한 아버지는 그것 플러스 스타일리시함까지 갖춘 사람이죠. 와, 정말 어렵네요.(웃음)


당신은 힙한 아버지인가요?
아뇨, 멋진 아버지에 스타일리시함이 더해져야 하는데 저는 둘 다 부족합니다.


연예인이나 셀럽 중 ‘힙한 아버지는 이 사람이다’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떠올려본다면?
글쎄요, 연예인 가족이 TV에서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잖아요. 무엇보다 아이의 만족이 중요하니까요. 아이가 계속 웃을 수 있게 하는 사람이 진짜 멋진 아버지니까. 근데 스타일리시함까지 갖춘 힙한 아버지? 사실 불가능한 이야기예요. 아마 이 세상에 없을걸요?(웃음)


데이비드 베컴이나 추성훈 정도면 어떤가요?
글쎄요. 그건 아이들, 추성훈의 경우는 추사랑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우문현답이네요. 많은 아버지가 가족의 선물, 특히 자녀의 옷을 선물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혹시 자신만의 팁이 있다면?
아이의 취향이 내 취향과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됩니다. 백화점 가면 예쁜 옷이 많거든요. 내 취향으로 ‘우리 아이가 입으면 예쁘겠다’ 하는 옷이 있어요. 근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원색적이고 촌스러운 걸 좋아해요. 실제로 우리 딸은 공주나 왕관이 반짝반짝 그려진 옷, 원피스를 좋아하죠. 근데 과연 내가 보기에 예쁜 옷이 우리 아이한테 맞는 선물일까요? 선물은 받은 사람이 봤을 때 예뻐야 합니다. 나한테는 별로여도 상대방이 좋아하면 그걸 사주는 게 맞더라고요.


아내의 선물은요?
사실 부부 사이에는 직접 물어봐서 갖고 싶은 걸 선물하는 게 제일 합리적이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주세요. 아내도 제가 저만의 서재를 만들고 좋아하는 옷, 신발을 쇼핑하는 데 눈치 주지 않아요. 물론 저도 허락된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사는 거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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