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평소에는 음악을 들을 때면 오페라 아리아든 재즈든 가리지 않고 아무렇게나 가볍게 틀어두고, 들리는 대로 내버려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가끔 지나치게 예민해지거나 한쪽으로만 생각이 치닫게 되면 묵직한 교향곡이나 협주곡으로 마음을 누르고 싶어집니다. 플레이리스트에서 교향곡을 찾다가, 문득 이 곡은 어떨까 하며 충동적으로 틀게 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2악장. 호로비츠의 연주입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오늘은 이 곡에 마음을 의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홉 살 때, 제게 피아노가 생겼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그때부터 저는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는 바보 같은 믿음을 꽤 오래 간직하고 있었어요. 당시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나는 피아노를 잘 치는 아이로 통했고, 악보도 곧잘 외웠기 때문이었을까요. 제 손은 특히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는데 그래서 어른들은 피아노를 잘 치는 손을 가졌으니 좋겠다고들 했습니다.(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사실은 그렇진 않죠. 손끝이 뭉툭하고 힘이 있는 손가락이 피아노를 치기에 더 좋으니까요. 제 손가락은 그때도 지금도 너무 가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이 좋았습니다. 피아노가 내는 맑은 소리, 음악이라는 어떤 것이 좋았던 것이죠. 그래봐야 제 재능은 평범했을 테지만, 어린아이의 망상을 주변 어른들 아무도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제 피아노는 따뜻한 갈색으로, 둥글고 매끈했고, 오롯이 제 것이라 생각하기에는 너무 커다랬고, 나무 냄새가 났습니다. 처음 피아노가 저희 집 거실에 놓이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시끄러운 피아노 학원이 아닌 조용한 우리 집 거실에 제 피아노 소리가 멍하게 울리자 그 소리가 지나치게 크다고 느껴져 덜컥 겁이 났습니다. 건반이 무거워서 손가락이 금방 피곤해졌고요. 피아노는 제가 친정집을 떠나고 결혼을 해 다른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된 뒤에도, 언제나 그 집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엄마는 피아노를 버리려 했습니다. 너무 무겁고 크고 이제 치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친정에 가면 몇십 분이라도 꼭 피아노를 치곤 했는데, 엄마는 그런 제 습관도 언젠가는 없어질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피아노를 버리자는 엄마의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사실 겁에 질렸습니다.
'정말 버리게 되면 어떻게 하지, 내 피아노는 내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며, 내가 덮개를 열고 빨간 천을 벗긴 뒤, 건반을 두드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조율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서 반음 정도는 낮아진 소리. 그 소리에 익숙해져서 한때 절대음감이었던 제 귀는 반음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건반의 가장 높은 자리 어딘가에는 제가 실수로 그어버린 검은색 볼펜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차가운 흰색 건반은 이제 슬쩍 따뜻한 노란색을 품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건반을 많이 누르고 어떤 건반은 거의 누르지 않았는지, 피아노는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피아노의 소리를 들으려 귀 기울였던 순간들을 아직 조금도 잊지 않았습니다. 두 옥타브 높은 솔을 누를 때마다 쇳소리가 나서 결국 조율을 했는데,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저는 그 자리를 건드릴 때면 조금 긴장하곤 했었지요. 그리고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어린 시절 습관 그대로 '도' 자리를 찾으려고 피아노의 배꼽, 열쇠구멍을 들여다봅니다.
낡은 피아노일 뿐입니다. 저에게만 특별한.
결국 많은 돈을 들여 피아노를 제 집으로 옮겼습니다. 때마침 피아노를 들일 여유 공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도 했고요. 주변 사람들은 제 피아노를 중고로 처분하는 비용보다 더 큰 비용을 지불한 것을 두고 어리석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피아노가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저는 아득히 기뻤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물론 텔레비전도 보고, 장난감이랑, 책이랑 갖고 놀 것들도 아주 많아.
가끔은 엄마랑 놀이터에도 가고, 어쩌다가는 외식도 해.
그럴 때에는 정말 신이 나지.
하지만 그러고 나면 난 다시 혼자가 돼.
그래도 난 행복해. 정말 정말 행복해.
왜냐하면 나한테는 특별한 친구가 있거든.
그 애 이름은 알도야.
알도는 나만의 친구야. 나만의 비밀이고.
같이 있으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고, 가끔 나를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주는 존재. 이런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솔직히 털어놓기엔 부끄럽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존재. 나의 알도, 나의 피아노.
선생님, 저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십 년쯤 전 일이지요. 그날 저녁 모임에서 선생님께서 이런 말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게 싫어. 대신 철학가 00와 친구처럼 지내. 그 사람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떻게 나와 생각이 그리 같은지 말이야. 혼자 걷고 있을 때도 그 사람이랑 마음속으로 대화를 한다니까."
철학가 00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 이 세상 사람도 아니었으며 교과서에나 나오는 엄청나게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음악가로 치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아, 그렇구나" 웃으며 대답하면서도 저는 선생님이 어딘가 조금 이상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머릿속으로 혼자 이미 죽어버린 철학가와 대화를 나눈다니요. 계속 저런 생각에 빠져 계시면 안 될 텐데 하고 걱정도 했었습니다.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 생기면 알도는 언제난 날 찾아와 줄 거야.
저번에 걔네들이 날 괴롭혔을 때처럼.
알도는 날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가 줘.
알도 하고 같이 있으면 난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알도 얘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어.
내 말을 믿기는커녕 비웃기나 할 테니까.
하지만 선생님과 다시는 만날 일이 없어진 지금에야, 저는 선생님께 정중한 사과의 편지를 띄웁니다. 저는 비좁은 생각과 옹졸한 마음으로 선생님을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붙잡고 의지할 수 있는, 가끔 자신을 근사한 곳으로 데려가줄 어떤 대상이 누구에게든 필요한 법입니다. 특히 살아내기가 힘든 순간에는. 그리고 붙잡고 의지하는 대상이 이 세상에 없는 철학가이든 토끼 인형이든 피아노이든 아무 쓸모도 없는 것 같은 예술이든, 그걸 비웃을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의 마지막은, 그날은 전하지 못한 저의 대답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 철학가 같은 존재가 저에게도 있어요. 그건 바로 저의 피아노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S님께
최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