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자꾸 이래라 저래라 말을 한다면? 내가 내린 결정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면? 알아서 하고 있는데 감 나와라 배 나와라 재촉을 한다면? 나의 시간과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락날락 침범한다면? 공통점은 ‘간섭’이다. 간섭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관심이고 이유가 있고 도움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침해고 잔소리고 도움도 안 된다. 가장 쉬운 예로, 사춘기 자녀와 부모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갈등은 ‘간섭’에서 비롯된다. 인생에서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청소년 자녀와 옳고 맞는 길을 고집하는 부모의 책임감이 엇갈리는 지점이 간섭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의도나 생각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한 자녀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고 상처가 된다. 재미난 점은, 구십이 넘은 나의 어머니와 육십이 넘은 내가 부딪히는 이유도 간섭 때문이다. 옷차림이 단정치 못하다, 차분하게 운전하지 못한다, 돈을 아껴써라 등 어머니의 잔소리가 짜증이 나는 것은 ‘지적’ 때문이다. 내 옷, 자동차, 돈은 내가 알아서 하고 있는데 참견을 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간섭이 싫은 공통의 이유는 상대방의 간섭이 부당하다고 느끼져서 이다.
양이는 간섭을 아주 싫어한다. 반려묘로서 모든 것이 공짜로 제공되는 환경에 살고 있으면 보살피는 집사의 간섭이나 참견쯤 은 감수하는 것이 당연한데 염치가 없다. 양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마도 간섭이라고 할 것 같다. 서로의 웰비잉을 위해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 몇 가지를 수칙으로 정해 놓고 있다. 우선 자기 몸을 만지는 것에 기겁을 한다. 귀여워서, 털이 엉켜서, 비듬이 많아서(양이는 비듬 여왕이다) 만지는 것을 위협이라 여기니 기분이 상한다. 오로지 자기가 내킬 때만 머리 쓰다듬기를 허용하는 깍쟁이 양이의 몸사리기를 사생활 보호라고 존중한다. 양이는 먹을 때 참견하는 것도 싫어한다. 잘 먹나 쳐다보거나 더 주려고 다가가면 입맛이 달아난 냥 도망가 버린다. 양이의 소중한 식사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수칙 두번째이다. 고양이들에게는 자리 싸움이 흔하다. 고양이들 싸움이 붙는 이유는 자기의 영역 확보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데, 그만큼 여긴 내 자리라고 찜 해놓은 공간 침해를 싫어한다. 집안 몇 군데 양이가 찜해 놓은 공간에 우연히 물건을 올려 놓거나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양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기다린다. 양이가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자기만의 공간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참견을 많이 하는 관계는 아무래도 가까운 가족인 것 같다. 허물없는 배우자, 형제, 자매관계는 허물이 없다는 이유에서 서로 참견을 많이 하는걸까? 참견은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이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미치길 바라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좋겠고, 잠도 적당히 자고, 일도 열심히 하고 가정일도 도와주고,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돈은 아끼고(반대로 잘 쓰고) 등등 배우자에 대한 조언 리스트는 끝이 없다. 배우자의 의식주에 플러스 직장과 취미, 라이프 스타일도 나의 영향력아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남편은 젊은 시절의 나를 잔소리 여왕, 도덕 교과서로 추억한다. 옷차림새, 아이들 양육방식, 식사 매너, 대인관계 등 결혼 생활 전반에 걸쳐 잔소리 여왕이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자존심 강하고 독립적으로 성장한 자신한테 배우자의 조언이나 참견은 아무리 진정성있게 보여도 간섭이고 싫기만 했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존엄성을 짓밟고 무시하는 못된 행동이었다고 한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것은, 눈치껏 남편의 성향과 욕구를 존중해 준다고 참고 살았는데 간섭 여왕이었다니. 같이 사는 세월이 흐르며 서로 깨닫게 된 것은, 아내의 간섭이 더 잘 되라는 격려이자 응원이었고 남편의 불만과 짜증은 자기를 좀더 믿어 달라는 호소였다는 점이다. 가까운 사람사이에서는 서로에 대한 바람과 기대, 소망들이 간섭이란 예쁘지 않은 모습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다.
간섭은 왜 그렇게 기분 나쁜 걸까? 누군가 나의 원함, 권리, 습관, 취향, 프라이버시, 라이프스타일, 가치관, 목표 등을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의 어머니는 평생 딸의 옷차림을 맘에 들어 하지 않기에 내가 걸치는 옷들에 대한 부정적인 코멘트 날리는 것이 일상인 분이다. 어머니의 생각엔 꽃무늬, 하늘하늘, 블링블링한 여성스러운 옷이 정답인데 시커멓고 멋대가리 없는 옷을 입고 다니는 딸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옷이 거지 같다(진짜 거지스타일도 있긴 하다), 포대자루 같다, 그렇게 입으면 사람들이 깔본다 등의 쓴소리는, 옷에 대한 나의 자부심과 취향에 금이 가게 한다. 어머니가 원하고 맞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지 않는 딸에게 그런 옷을 입히고 싶은 간절함과 부모로서의 파워를 발휘하고 싶은 욕구이다.
두번째로 간섭이 싫은 이유는 상대방의 편견과 판단 때문이다. 내가 틀렸기 때문에 알려주고 고쳐주어야 한다는 상대방의 믿음은 나로 하여금 부당함과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잔소리에 화가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분홍색 블라우스는 정답이고 검은색 바지 정장은 틀렸다며 지적하는 판단 때문이었다. 딸의 잘못된 스타일을 고쳐 주어야 한다는 어머니 고집의 본질이 딸이 예쁘고 멋지길 바라는 바램이기에 싫지만 미안하기도 했었다. 간섭이 기분 나쁜 또하나의 이유는, 나의 상황, 속사정, 고민을 모른 채 일방통행으로 제시되는 조언과 충고이기 때문이다. 나도 알고 있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있는데 마치 왜 모르냐는 식으로 가르치려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와 마음에도 불구하고 사려깊지 못한 간섭은 불쾌한 일이다. 가까운 사람이 나를 못 믿는다는 것, 나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는 양이에게 집사로서 섭섭하다. 집사가 자기를 생각해서 하는 행동인데 차단해버리니, 미련없이 나도 포기하는 습관이 생겼다. 양이처럼 간섭을 차단하는 좋은 방법은 무시하는 것이다. 대놓고 무시하면 싸움이 되니, 무시 안 하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잔소리에 얼굴을 붉히지 않은 채 웃는 얼굴로, 아 네 알겠습니다 말하면서 속으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금방 잊어버리는 것이다. 배우자의 잔소리에도 편안한 표정으로 아 명심하겠습니다 말하면서 속으론 접수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도의 존중을 보여주면 된다. 간섭을 무조건 차단하고 대항하라는 뜻도 아니고 그것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뜻은 더욱 아니다. 관계를 해치지 않고 서로 간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간섭과 간섭에서 오는 불쾌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직장에서의 간섭은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가족이나 친구와는 다른 이해관계와 예의를 요구하기 때문에 좀더 지혜로워야 한다. 부당한 간섭, 사생활 침해, 공간 침범 등에 대해서는 정중히 간섭 중단을 부탁하는 것이다. 이 때 나 중심 화법(I statement)이 효과적이다. 나 중심 화법은 간단한 공식으로서,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느낀다’ 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하니 내가 ----이렇다’고 말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내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인격과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솔직한 느낌을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말을 자꾸 끊고 간섭하는 상대방에게, ‘제가 말할 때 자꾸 끊기면 말할 마음이 사라집니다.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주길 바랍니다’ 이다. 부당한 간섭을 정중히 차단하면 서로 간에도 적절한 경계가 생기게 된다. 경계란 나와 상대방 사이에 함께 하는 영역도 있지만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영역을 두는 것으로서, 서로가 윈윈하는 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양이한테 간섭쟁이가 되지 않는 이유는, 양이에게 간섭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계는 그것이 어렵다. 간섭에 반발하면 관계가 어그러지고, 간섭을 묵인하면 괴롭기 때문이다. 내가 간섭하기도 하지만, 간섭을 받기도 한다. 얽히고 복잡한 간섭 사이클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간섭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앞서 간섭을 차단하거나 무시하라고 했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결단이나 변화로 되는 일이 아니고 상대방에게도 달렸기에 어려운 일이다. 서로가 적절한 경계를 만들면서 함께 하는 것/각자 알아서 하는 것, 공동의 책임/나만의 책임, 공동의 권리/나만의 권리를 지혜롭게 합의하고 존중하는 것, 간섭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